<선재 업고 튀어> 메인포스터

<선재 업고 튀어> 메인포스터 ⓒ tvN

 
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아래 <선업튀>)가 시청자들을 사로잡으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최고 시청률 4.8%(닐슨코리아 유료가구 플랫폼)을 기록하며 6주 연속 지상파 포함 전 채널 동 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발표한 5월 TV-OTT 드라마 화제성 조사 결과 또한 2주 연속 1위에 올랐다.

삶의 의지를 놓아버린 순간, 자신을 살린 아티스트 류선재(변우석 분)를 구하기 위한 팬 임솔(김혜윤 분)의 애절한 고군분투에 안방극장이 달궈졌다.

<선업튀>의 가장 큰 인기 요인은 톡톡 튀는 임솔의 캐릭터다. 한없이 해맑다가도,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용감해지고 뒤틀린 운명을 바꾸기 위해 타임 슬립까지 마다하지 않는 그의 모습이 신선하다는 반응이다. 그는 남성 캐릭터의 보호를 받는 대신 "내가 너를 지켜줄게"라고 약속한다.

그러나 뭐든 뛰어넘을 것 같은 임솔에게도 한계는 있었다. 바로 장애와 여성 범죄다. 극적 서사를 위한 장벽이지만, 걸림돌이라 치부하기엔 현실과 맞닿은 고민이다.
 
휠체어를 탄 여주인공은 없다
 
 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의 한 장면

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의 한 장면 ⓒ tvN

 
솔은 선재를 지키기 위해 타임슬립을 반복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과거로 돌아갈 때마다 임솔은 자신이 겪었던 불행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면, 현재 시점에 화상 흉터가 있는 엄마의 손에서 흉터를 없애주는 식이다. 과거로 돌아간 솔은 집에 갑작스럽게 불이 났던 날을 떠올리고, 이를 막아냄으로써 운명을 바꿨다. 다시 말끔해진 엄마의 손을 붙잡고 솔은 환하게 웃는다. 이처럼 솔에게는 되돌리고 싶은 것들이 있다. '장애'도 그중 하나다.

솔은 열아홉 살에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된다. 성인이 된 솔은 여전히 당차지만, 장애로 인해 많은 제약을 받는다. 가고 싶은 회사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면접조차 보지 못하고, 함박눈이 내리는 날에 한강대교를 건너다가 전동 휠체어가 멈춰 꼼짝달싹 못하는 처지가 된다. 처음 다리를 다쳤을 때 "죽게 내버려두지, 왜 살렸냐"는 솔의 절망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타임슬립을 통해 과거를 바꾼 솔은 교통사고를 막고 장애도 얻지 않는다. 그때부터 <선업튀>의 서사가 시작된다. 솔은 선재와 사랑에 빠지고, 대학에 들어가 MT를 즐기며,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한다. 면접조차 보지 못했던 회사에 입사해 차를 운전할 수 있는 직장인이 되기도 한다. 휠체어를 타던 솔은 행인과 끊임없이 부딪히고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존재였지만, 이제 솔은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을 아련하게 쳐다볼 수 있는 비장애인으로 바뀌었다.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얻게 된 주인공이 타임슬립을 통해 사고를 막고, 비장애인이 되어 사랑과 꿈을 되찾는다. 이러한 <선업튀>의 서사가 뜻하는 건 결국 '장애'의 무력함과 역경, 그리고 '비장애'의 행복과 일상으로 보인다. 즉, 장애라는 결함을 삭제하지 않으면 솔은 로맨스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셈이다. 그의 사랑 역시 장애라는 요소를 삭제하고 '온전한' 신체를 갖고 있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드라마와 다르다. 우리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고 누구나 장애를 갖게 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도 장애를 가진 채 살아가고, 사랑하는 이들이 있다. 이를 주인공이 넘어야 하는 어려움이나, 극 중 주인공들의 사랑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 것은 아닌지 반문하게 된다. 왜 휠체어를 탄 임솔은 로맨스의 주인공이 될 수 없을까. 솔은 휠체어를, 자신의 장애를 떼고 나서야 로맨스 단계로 향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임솔의 운명

또한 매번 타임슬립을 반복한다고 해도 임솔에겐 바꿀 수 없는 운명이 있다. 그건 연쇄살인마의 표적이 되는 것이다. 첫 번째 과거에선 도망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장애를 얻게 되고, 두 번째 과거에선 트라우마에 시달려 선재와 사이가 멀어진다. 다시 타임슬립해 마주한 세 번째 과거 또한 연쇄살인마에 의해 선재가 살해될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연쇄살인마 앞에서 솔은 무력한 여성이다. 그가 느끼는 공포와 무력함은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택시 운전사인 그가 자신을 천천히 따라올 때 솔의 숨은 점점 벅차오르고, 눈동자는 확장된다. 드라마는 솔이 납치 당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벗어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극 중에서 솔이 느끼는 공포는 현실의 여성들에게도 일상적인 일이다. 평범하게 일상을 보내다가도, 늦은 밤 골목길을 건널 때 불안해하고 범죄 현장이 연상될 때 괴로워하는 모습은 현실 속 피해 여성들의 모습과 고스란히 닮아 있다.

아쉬운 건 묘사 방식이다. 드라마 속 카메라의 시점은 솔을 피해자로서 대상화한 것에 가깝다. 시청자로 하여금 그의 상황을 함께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목격하게 만드는 것이다. 시청자는 솔의 공포에 함께 이입하지 않고 관람하게 된다. 과거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주인공 지선우(김희애 분)가 박인규(이학주 분)로부터 폭행 당하는 장면에서, 카메라가 주인공을 폭행하는 가해자의 시점을 그대로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는 방식으로 연출하며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물론 <선업튀>와 <부부의 세계> 연출 방식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피해자를 대상화하여 시청자가 관조하도록 연출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부분이 있다.

이는 피해자에게 공감하고 문제의식을 갖게 하기보단, 일시적인 감각적 반응을 일으키기 쉽다. 시청자에게 몰입감을 주기 위해 여성 캐릭터가 느끼는 공포심을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과연 최선일까. 게다가 '피해자'에서 벗어나려는 솔의 시도는 번번히 실패한다. 타임슬립을 해도 다시 연쇄살인마에게 사고를 당하고, 이젠 그를 돕기 위한 주변 사람들마저 다치기 시작한다. 결국 12화에서 솔은 선재를 살리기 위해 홀로 연쇄살인마에게 향한다.
 
 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의 한 장면

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의 한 장면 ⓒ tvN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이야"

솔이 겪는 비극적 운명은 선재와의 사랑을 애틋하게 만든다. 위기에 처한 솔을 매번 구해내는 것 또한 선재이기 때문이다. 솔의 운명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그런 솔을 지키려는 선재의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드라마는 여러 번 강조해서 보여주려 한다. 그러나 여성 시청자로서 매회 연쇄살인마에게 쫓기고 납치 당하고 두려워하는 솔을 지켜보는 것은 쉽지 않다. 그가 느끼는 공포는 현실 여성의 공포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과거를 바꾼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솔이 타임슬립을 통해 어두운 과거를 바꿀 때마다 예상치 못한 불행이 튀어나온다. 가끔은 일이 더 심각하게 꼬이기도 한다. 모든 행복을 거머쥐려는 솔에게 오빠가 읊조린 말이 달라붙는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이야." 드라마로서 <선업튀>의 방향성과 맞아떨어지는 대사다.

행복과 일상을 얻기 위해 장애를 없애야 하는 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연쇄살인마를 마주해야만 하는 솔.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게 느껴지는 <선업튀>의 기회비용이다. 결국 임솔은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될까. 적어도 그가 얻어내는 것이 사랑뿐만은 아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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