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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선택제는 스웨덴의 교육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학교 선택제는 스웨덴의 교육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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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스웨덴에서는 미래에 크게 영향을 미칠 교육개혁들이 이뤄졌다.

그 하나는 사민당 정부에 의한 교육의 지방자치단체(지자체)로의 이양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교육은 국가 차원의 업무였지만 1990~91년 개혁으로 290개의 지자체로 이양되고 이와 함께 교직원도 지방공무원이 되었다. 이 개혁으로 인해 중앙정부는 교육법과 교육과정 등을 통해 교육의 목표와 방향을 제시하고 지자체는 교직원, 학교시설, 예산 등을 활용하여 국가차원의 교육과정에 따라 교육을 하며 교육목표를 달성하는 지방분권적 역할 분담이 이뤄진 것이다.

다른 하나는 1991년 선거에서 정권을 획득한 보수·우파 정부가 1992년에 전격적으로 도입한 학교선택제(school choice)다. 전자가 교육은 학생, 학부모, 교직원 등 교육주체에 가까운 지자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민주주의 원칙에 의한 개혁이라면 후자는 선택의 자유를 크게 하기 위한 전형적인 우파 이념에 의한 개혁이다.

학교선택제가 가져온 지각변동

학교선택제 도입은 스웨덴 교육에 엄청난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당시만 해도 공립학교만 있었던 스웨덴에 학교선택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하여 누구든 일정 요건만 갖추면 학교를 설립할 수 있게 했다. 기업, 재단, 조합, 개인 등이 학교를 설립했고 이렇게 설립된 학교는 지자체의 간섭을 크게 받지 않는다고 해서 자율학교(fristående skola, 미국의 Charter school과 유사)라 불렸다. 이런 자율학교가 학생들이 집중해 있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2018/19년 현재 자율학교에 다니는 학생 수는 전체 학생 수의 약 20%에 달하며 학교급별로는 유아학교(어린이집과 유치원)의 경우 20%, 기초학교(초, 중학교)의 경우 15%, 고등학교의 경우는 27% 학생이 자율학교 소속이다.

대다수 자율학교(90%)는 한 학교 형태지만 일부 소수는 수십 개의 학교를 거느린 기업형 자율학교다. 기업이 학교시장에 뛰어들면서 수십 개의 자율학교를 소유하는 주식회사가 되었고 이윤을 남겨 주주에게 배당하기까지 한다. 즉,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교육에 이윤을 남겨 주주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학교선택제는 이와 같이 교육에 시장을 끌어들여 경쟁을 유발시킨 제도다.

자율학교는 유아학교(어린이집과 유치원), 기초학교(초, 중학교), 고등학교 등 모든 차원에서 설립 가능하고 공립학교와 똑같이 국가교육과정에 따라 교육을 해야 하며 세금으로 운영된다. 즉, 부모로부터 수업료나 학교운영비 등을 받아서는 안 된다.

기초학교의 경우 일부 자율학교는 수학, 영어, 체육 또는 교수학습방법 등을 특화한다고 표방하기도 하지만 공립학교와의 차이가 미미하다. 18개의 프로그램(6개는 대학준비프로그램, 12개는 직업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 고등학교의 경우, 공립고등학교보다 더욱 소수의 대학준비프로그램 또는 직업프로그램에 집중하여 특화 또는 특성화한 자율고등학교가 있다.

자율학교는 일종의 엘리트 학교인가? 그렇지 않다. 선택제로 인하여 학생들이 몰려드는 인기 있는 자율학교가 있다. 물론 공립학교에도 인기 있는 학교가 있다. 모든 학교가 똑같은 조건에서 경쟁을 통해 학생들을 유치하려고 한다. 특히 대도시의 고등학교 급에서는 입학 경쟁이 아주 치열한 공립학교와 자율학교가 있다. 학부모와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자율학교의 탄생으로 한 지자체 내에서 공립학교와 자율학교, 나아가 지자체 경계를 넘어서도 학교를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학교선택제가 가져온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교육 격차(성적 차이)에 의한 '분리현상(segregation)'이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를 선택하게 되니 동기부여가 잘 된 학생들은 공립학교와 자율학교에 관계없이 일부 학교에 모여들어 학교의 평균 학력이 높은 반면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다른 학교에 남게 되어 평균 학력이 낮아 학교 간의 교육격차가 커지는 분리현상이 생기게 된 것이다.

분리현상은 자율학교 때문이라기보다는 학교선택제 자체에 더 큰 원인이 있으며 학교선택제가 도입되기 전에도 있었다. 이때는 주로 주거지역의 분리현상(boendesegregation) 때문에 생긴 교육격차다. 즉, 한국의 강남 같이 상위계층이 사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 사이의 교육격차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교육격차가 작았던 스웨덴에서 학교선택제로 인해 가중된 교육격차에 의한 분리현상은 큰 도전이 되었다. 스웨덴 정부연구조사위원회의 보고서나 다른 많은 연구보고서 그리고 심지어 OECD의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까지 스웨덴 학교는 지난 수십 년간 학생, 학교 및 지자체 간의 교육격차가 커져왔다고 분석하며 학교선택제가 그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교육격차에 따른 분리현상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그 원인이 논의되고 있다. 하나는 학생들의 사회경제적 배경이며 다른 하나는 학생들의 출생국가 또는 이민배경이다.

사회경제적 배경이 좋은 학생들이 다수인 학교와 그렇지 못한 학생들이 다수인 학교, 또 완전히 스웨덴 부모 배경의 학생이 다수인 학교와 중도입국 학생 또는 양부모가 외국에서 태어나 이민한 부모의 학생이 다수인 학교로 분리되는 현상이 뚜렷해졌고 이러한 분리현상이 학생들의 교육결과에 영향을 미치며 학생, 학교 및 지자체 간 교육격차가 커졌다는 것이다.

교육격차에 대한 강한 문제제기는 반대로 배경이 다양한 학생들이 섞여 공부하며 학교 간 교육격차가 작은 교육체제가 바람직하고 좋다는 데 대다수가 동의하는 데 기인한다. 즉,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이 학교에서 만나 서로 협력하고 이해하면서 공부할 때 좋은 교육이 되고 그런 학교에서 자란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할 때 그 사회는 계층 간 갈등이 적은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교육의 사회적 역할이며 좌우 이념을 떠나 모든 정당들이 동의해왔다. 교육에서 평등철학이 아주 강하게 작용하고 있고 이런 배경에서 스웨덴에는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걷어가는 한국의 특목고 같은 엘리트학교 제도가 없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더욱 평등한 학교를 위한 세 가지 제안

스웨덴 학교의 교육격차를 줄이기 위하여 지난 2년간 활동해온 정부연구조사위원회는 지난 4월 27일 '더욱 평등한 학교–줄어든 학교분리현상과 더 좋은 교육재원 배분'이란 연구조사 결과를 교육부에 제출했다. 위원회의 제안을 3가지로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위원회는 학교선택제에서 학생선발제도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학교선택제는 지금과 같이 계속 유지하며 만약 학부모/학생이 특정 학교를 선택하지 않으면 현재와 같이 가장 가까운 공립학교에 배치한다. 어느 한 학교에 학생들이 정원 이상으로 선택했을 때 이제까지는 '줄 선 기간'이나 초등학교와 같은 소속의 유아학교에 다닌 것에 우선권을 주었는데 위원회는 이 조건들의 폐지를 제안했다.

대신 형제 및 등거리 우선과 다양한 사회적 배경의 학생 혼합을 가능하게 하는 할당제 그리고 추첨 방식을 제안했다. 또한 국가교육청과 지자체가 다양한 배경의 학생 혼합을 가능하게 할 수 있도록 학생선발에 관여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줄 선 기간 제도를 폐지한 것은 일부 학부모가 자녀가 태어나자마자 인기 있는 학교에 줄을 서는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다.

이에 대하여 자율학교전국협의회(Friskolornas riksförbund)와 보수당(M), 기독교민주당(KD), 스웨덴민주당(SD) 등 우파 정당들은 위원회의 이 제안이 교육격차에 의한 분리현상 개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사실상 학교선택제를 폐지하는 것과 같다며 크게 반대했다. 이들은 '부모의 선택 대신 정치인이나 관료가 학교를 배당한다고 분리현상이 해결되느냐', '스웨덴 학교는 어느 학생이 어느 학교에 다니는 것이 문제(즉, 학교선택제)가 아니라 질 낮은 학교가 너무 많은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둘째, 위원회는 학교에 배분되는 교육재정의 개선을 제안했다. 공립학교와 자율학교는 책임부터 다른 것을 지적했다. 예를 들어 공립학교는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학생, 자율학교에서 다시 돌아오는 학생, 이민학생·중도입국학생, 자율학교가 받아주지 않는 일부 장애학생 등 모든 학생의 자리를 준비해야 하므로 정원수만 받아들이는 자율학교보다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립학교가 더 많은 재원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서도 자율학교전국협의회와 우파정당들은 지금도 그런 목적으로 공립학교는 더 많은 예산을 청구할 수 있는데 아예 차등 배분하는 것은 자율학교의 예산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자율학교의 예산을 줄여 어떻게 교육격차와 분리현상을 줄일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아가 학교분리현상의 가장 직접적 원인이 주거지역의 분리 때문인데 이 문제에 대해선 아무런 개선책도 없이 학생선발에서 등거리 원칙을 강조하면 학교분리현상은 심화될 것이라며 위원회의 제안을 비판했다.

셋째, 위원회는 현재 중앙 정부 차원과 290개의 지자체가 교육을 전담하는 교육의 지방분권화와 역할분담에 문제를 제기하며 그 중간인 21개의 광역시·도(regioner)에 교육행정기관 설치를 제안했다. 국가교육청이 광역시·도에 하부 기관을 신설하여, 이 차원에서 지자체 간 교육협력을 가능하게 하고 국가와 지자체 사이의 가교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국가교육청의 이 새로운 중간 조직은 유초중등 교육과 대학과의 연계를 통해 교육의 질을 높이고 교육결과가 좋지 않은 학교들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서도 위 비판가들은 교육 관료조직을 더 꾸려낸다고 교육격차가 해소되고 분리현상이 적어지느냐며 냉소적이었다.

위에 언급한 3가지 제안 외에도 위원회는 특별 분야에 예산을 주며 사업을 하게 하는 특별교부금 제도를 완전히 폐지하고 교육부문 예산으로 전용하는 제안과 교육에서의 국가의 역할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국가의 더 큰 역할에 대해선 앞으로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스웨덴 정책결정과정의 관점에서 보면 현 위원회 제안은 위원회 설치와 연구조사 활동 다음에 오는 것으로 이 위원회 제안 다음 단계로는 위원회 제안을 각계각층에 의견을 묻는 의견수렴 제도가 있다.

정부는 이 의견수렴 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정부안을 만들어 의회에 제출하여 의회의 승인을 받아 기존의 법을 개정하거나 새로운 법을 제정하게 된다. 현 위원회가 설치되고 연구조사를 통해 보고서까지 제출하는 데 2년이 걸렸는데 앞으로 의회의 승인까지는 1년이 더 남았다. 이와 같이 스웨덴의 정책결정 과정은 정부연구조사위원회 제도와 의견수렴 제도를 거치면서 긴 시간이 걸리지만 탄탄한 민주주의 원칙에 의거하여 이뤄지며 이런 정책결정과정 덕택에 이념, 정당, 사회단체 사이의 많은 정치적 갈등이 해소된다고 할 수 있다.

위원회의 보고서를 받은 사민당 교육부 장관은 '학교선택제는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여 성공하는 것보다 어느 학교에 다니느냐에 따라 삶의 기회가 달라지게 설계되어있다', '학부모들은 자녀가 좋은 학교에 다니기를 원하지만 동시에 통합된 사회에서 자라기를 원한다', '여러 배경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만나지 않으면 나중에 사회 전체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는 원론적이지만 위원회의 결론과 일치하는 견해를 밝히며 각계각층의 의견을 듣고 정부안을 만들겠다고 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자율학교전국협의회와 보수당, 기독교민주당, 스웨덴민주당 등 우파정당들은 위원회의 제안은 교육격차와 분리현상을 줄여 교육평등을 가져오지도 않으며 학교선택제를 사실상 폐지하는 제안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반면에 사민당보다 좌측에 있는 좌익당(V)은 아예 학교선택제를 폐지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현 사민당-환경당 연합정권의 지원당인 자유당(L)은 위원회의 제안에 대체로 찬성하고 있으며 중앙당(C)은 의견수렴 경과를 보고 당의 견해를 발표하겠다고 했다.

지난 40년 동안 시행해온 학교선택제에 교육평등의 이름으로 제재를 가하는 것은 교육 권력이 정보력이 강한 학부모로부터 지자체와 국가 행정기관으로 옮겨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스웨덴 교육에서 가장 갈등 수위가 높은 학교선택제와 교육평등에 대한 투쟁이며 이 투쟁은 이념, 정당, 공공기관과 자율학교 사이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다. 현 사민당 주도 정권이 앞으로 학교선택제를 어떻게 개혁하여 교육평등을 이룰 것인지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 황선준님은 스톡홀름대 정치학 박사입니다. 경남교육연구정보원·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 원장으로 일했습니다.


태그:#스웨덴, #학교, #학교선택제,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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