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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대본 완성 후 모의 형사 재판을 진행하는 모습
▲ 모의 형사 재판을 진행하는 모습 재판 대본 완성 후 모의 형사 재판을 진행하는 모습
ⓒ 백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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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 윌리엄 싱어에게 징역 6년을 선고하고, 그가 편취한 금액 전액을 벌금으로 선고한다."

충남 부여여고 1학년 통합사회 시간에 이뤄진 모의 재판에서 판사가 내린 선고이다. 학생들은 1학기 동안 책 <공정하다는 착각>을 탐구 도서로 선정하여 읽고 모의 재판을 진행하였다. 윌리엄 싱어(William Rick Singer)는 책 서론에서 소개된, 입시브로커로 입시비리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을 말한다. 

이 일을 위해 일주일에 한 번, 장(chapter)별 쪼개 읽기를 시작하고 읽은 내용에 대한 나눔의 시간을 통해 이해도를 높여 나갔다. 독서를 마칠 즈음, 또 다른 작업에 들어갔다. 검사 측과 변호사 측, 이렇게 두 팀으로 나누어 재판 대본을 짜고, 그 일을 마친 후 두 대본을 하나로 통합하여 범죄자 윌리엄 싱어를 재판정에 세웠다.

모의 재판이 열린 날, 학생들은 증인으로 SAT(미국 대학입학 자격시험)를 도입한 코넌트 하버드대 총장을 소환하기도 했고, 저자인 마이클 샌델을 참고인 자격으로 법정에 세우기도 했다. 재판정에서 서기와 경찰의 작은 실수로 폭소를 터트리는 반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법정은 준비된 것만큼의 날선 공방으로 지켜보는 배심원들의 몰입도를 높여갔다.

최종 진술에서 변호사측은 피고 윌리엄 싱어의 범죄 행위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몰기에는 능력주의의 변질된 현실이 너무 가혹하고, 여기서 버텨내야 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너무 안타깝다는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모의재판을 끝낸 후 참여 소감을 나누는 시간이 돌아왔다. 어떤 학생들은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눈을 키우는 소중한 기회였다"고 말하기도 하고, "최종 대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양측의 입장을 헤아려 보는 기회가 되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또 다른 학생은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세습되는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보다 나은 현실적 대안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내기도 했다.  

1940년대 하버드에 도입된 SAT는 상류층의 세습적 엘리트주의를 개선하고자 하는 고민에서 사용되었다. 하지만 그 틀의 왜곡된 사용이 승자와 패자로 갈라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장하고, 미친듯한 경쟁을 부추기는 것에 대해 학생들 대부분이 격하게 공감하였다. 하지만 학생들의 생각은 여기서 머물지 않았다. 이런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코넌트와 같은 실행력 있는 학자와 방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는 것이었다.

학기 초보다 생각이 한 뼘 더 자란 학생들을 지켜보며 학생들의 이런 바람이 이뤄지는 날이 속히 오길 함께 응원해 본다.  
 
배심원들이 재판 진행 과정을 보면서 정리한 내용과 소감문
▲ 배심원들의 재판 정리지 배심원들이 재판 진행 과정을 보면서 정리한 내용과 소감문
ⓒ 백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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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교육, #모의재판, #주제탐구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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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키일대학(Christian-Albrechts-Universitat zu Kiel)에서 경제학 디플롬 학위(Diplom,석사) 취득 후 시골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2021년, 독일 교육과 생활의 경험을 담은, 독일 부모는 조급함이 없다(이비락,2021)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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