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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로 한국정부를 상대로 국가배상소송을 진행중인 응우옌티탄씨(총상 후 살아남음)와 삼촌인 응우옌득쩌이씨가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해외파병실의 베트남전쟁 전시관을 관람한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로 한국정부를 상대로 국가배상소송을 진행중인 응우옌티탄씨(총상 후 살아남음)와 삼촌인 응우옌득쩌이씨가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해외파병실의 베트남전쟁 전시관을 관람한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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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기자회견과 국가배상소송과 더불어, 11일 서울 용산구 백범로 서울시공익활동공간에서 퐁니퐁넛 학살 피해자와 함께하는 좌담회가 열렸다. 좌담회는 이날 오후 3시 30분부터 6시까지 대략 2시간 30분 가량 진행됐다. 법정에서의 증언과 그 날 점심 전후로 있던 용산 전쟁기념박물관 관람으로 한국에서의 일정으로 많이 지쳤을테지만, 응우옌티탄씨(학살 당시 8세)와 응우옌득쩌이씨(학살 당시 28세)는 시민들과의 좌담회에서 열정적으로 발언을 했다.   

글쓴이는 피해자분들과의 용산전쟁기념관 탐방을 같이 하지는 않았지만, 오후에 있던 좌담회에 참가하여 발언을 듣고 질의응답 시간을 함께 했다. 글쓴이는 지난 9일 기자회견에도 참가했었지만, 이번 좌담회 때가 그 때보다 더 감정적으로 와닿았다. 특히나 퐁니퐁넛 학살 당시 가족 5명을 잃은 응우옌티탄씨가 슬픔에 차 자신이 경험한 학살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글쓴이 또한 본의 아니게 눈물을 흘렸다.

시민들과 함께하는 좌담회에서 응우옌티탄씨와 응우옌득쩌이씨가 전하고자 한 것은 분명하다. 퐁니퐁넛 학살 피해자와 목격자가 한국 사회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이 무었인지 얘기해보고자 한다.

응우옌티탄씨의 증언... "학살 사건이 낸 상처 탓에 목소리 내고 싶었다"
 
이번 한국일정 중 사실상 마지막 일정인 좌담회에서 응우옌티탄씨가 자신이 겪었던 학살의 기억과 증언의 기억 그리고 활동 참여과정에서 겪었던 생각의 변화에 대해 증언했다.
▲ 좌담회에서 증언을 하고 있는 웅우옌티탄씨 이번 한국일정 중 사실상 마지막 일정인 좌담회에서 응우옌티탄씨가 자신이 겪었던 학살의 기억과 증언의 기억 그리고 활동 참여과정에서 겪었던 생각의 변화에 대해 증언했다.
ⓒ 김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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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응우옌티탄씨는 1968년 2월 12일 한국군이 자행한 퐁니퐁넛 학살의 피해자다. 학살 피해자인 탄씨는 학살을 경험한 이후부터 오랜시간 동안 한국인들을 무서운 존재로 생각했었다고 한다. 적어도 2001년까지만 해도 한국의 남성들을 보면 너무 무서웠었다고 이번 좌담회에서 고백했다. 그만큼 학살의 공포가 컸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러나 위령비를 찾는 한국인들을 만나고, 구수정 박사의 제안에 따라 한국에 와서 증인으로 발언 및 활동을 하면서, 한국 사람들 중에는 무차별 학살을 자행했던 무서운 군인들과 다른 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이 너무 무서워 얼굴을 마주하고 보기가 힘들었을 만큼 트라우마가 컸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탄씨가 한국에 와서 증언을 하게 된 것은 자신이 겪었던 아픔을 가해자인 한국 정부가 인정하고,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서다. 좌담회에서 탄씨가 했던 발언이다.

"제가 목소리를 내고 싶었던 이유는 학살 사건이 저한테 깊은 상처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그 학살로 인해서 제 가족을 잃었고, 지금까지도 그 아픈 상처를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탄씨가 주장하는 것은 분명하다. 퐁니퐁넛 학살은 한국 군인들에 의해 자행됐고, 그 학살로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피해자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해자인 한국 정부가 베트남 전쟁 시기 저지른 이 학살에 대해 피해자에게 제대로 사죄하고 인정해야한다는 것이 탄씨가 현재 원하는 일이다.

학살현장 목격자 주민... "내가 목격한 민간인 학살, 한국 정부가 인정해야"
 
이번 한국일정 중 마지막 일정인 좌담회에서 응우옌득쩌이씨가 자신이 직접 목격한 학살과 그 현장 수습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좌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는 웅우옌득쩌이씨 이번 한국일정 중 마지막 일정인 좌담회에서 응우옌득쩌이씨가 자신이 직접 목격한 학살과 그 현장 수습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김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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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과 더불어 이번 좌담회에도 응우옌티탄씨의 삼촌인 응우옌득쩌이씨도 발언했다. 쩌이씨는 학살 당시 남베트남군으로 복무했었고, 학살 현장을 망원경으로 지켜보았으며, 미군과 남베트남군 민병대원 그리고 주민들과 더불어 시신을 수습하고 피해자를 구출하는 작업에 직접 참여했던 인물이다.  

탄씨와는 달리 쩌이씨는 이번에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증언을 했다. 특히나 학살현장의 목격자라는 점에서 적잖은 국내 언론으로부터 주목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학살 당시 탄씨는 무전기를 통해 학살이 자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달받았는데, 그가 무전기를 통해 들은 내용은 "한국군이 퐁니퐁넛 마을에서 주민들을 학살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고 한다.

퐁니퐁넛 학살의 목격자로써, 이번에 한국에 와서 증언을 한 쩌이씨가 원하는 것은 "나 자신이 목격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한국정부가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아래는 좌담회에서 쩌이씨가 증언한 내용중 일부다.

"퐁니퐁넛 마을에 있던 한국 군인들이 총을 난사하고, 집들을 불에 태우고, 주민들을 집 앞으로 몰아넣은 뒤 집단 사살을 했습니다. (중략) 시체 더미를 마을 근처에서 발견했고, 집 안에서 죽었던 시체와 집 밖 연못에서 죽었던 사람들까지 총 12구가 있었는데, 집 안에서 죽었던 사람들 시체는 거의 다 불에 탄 상태였습니다."

학살 부정하는 이들에게 하고픈 말 묻자... "스스로 되돌아보라"

좌담회에서 있던 질의응답 시간에 글쓴이는 질문을 했다. 질문의 주된 내용은 한국군 민간인 학살에 대해 부정하는 집단과 인터넷에 존재하는 네티즌들에 대한 것이었다. 사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 민간인 학살을 부정하는 입장을 내놓는 곳은 단순히 고엽제전우회와 같은 참전용사 단체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나무위키를 비롯, 일부 온라인 사이트에서도 한국군 민간인 학살을 전면 부정하고 있다.

물론 학살을 부정하는 측의 입장이 학살을 인정해야 한다는 측의 입장보다 여론 면에서 밀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을 단순히 무시할 수만은 없다. 나무위키 같은 경우 수많은 이들이 손쉽게 정보를 찾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인터넷 상에서 미치는 영향도 결코 적지 않다.

이러한 부분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글쓴이는 응우옌티탄씨와 응우옌득쩌이씨에게 한국 사회에서 학살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이들에 대해 질문을 했다. 이들이 학살을 부정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말은 분명하다. 아래는 좌담회에서 글쓴이가 응우옌득쩌이씨로부터 직접 들은 답변이다. 

"그들이 다시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학살의 사실을 살펴보고, 학살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해보라는 말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다음은 응우옌티탄씨로부터 직접 들은 답변이다.

"제가 만약에 제 증언 내용을 부정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라!' 제가 베트남에서 한국까지 찾아온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없는 일을 있는 일로 어떻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저 스스로 말입니다. 그래서 다시 그들이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들은 박정희 정부가 베트남에 파병을 해서 많은 이들에게 태권도도 가르치고, 건설 사업 및 민간인들을 돕는 사업을 했다고 얘기한다. 물론 이러한 일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박정희 정부가 미국의 요청보다는 다소 자발적으로 명분이 적은 베트남 전쟁에 돈을 벌기 위해 병력과 인력을 파병 및 파견 했다는 점, 한국 경제성장의 과정 속에는 미국이 일으킨 전쟁으로 죽은 베트남 민중의 피와 가난했던 한국인들의 피가 성장의 자양분이 됐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좌담회 전에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을 방문했던 쩌이씨는 "박물관에 있는 대민사업 관련 내용의 경우, 적어도 나 자신은 남베트남 정부에서 일하면서 한국군이 그러한 일을 자신의 지역과 동네에서 벌이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물론 지역마다 다를 수는 있으나, 다른 한편으론 한국의 베트남 대민사업이 얼만큼 영향력이 있엇는지 또한 제대로 따져봐야 할 것이다.

8월 11일 좌담회를 끝으로, 응우옌티탄씨와 응우옌득쩌이씨는 12일 베트남으로 돌아간다(관련 기사: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로 가족 잃은 피해자... 그가 바란 것). 

마지막으로 민간인 학살 부정론에 대해 하나 더 첨언하고 싶다. 2000년대 들어 진상조사를 거친 국민보도연맹 학살이나 여순사건, 제주 4.3 사건 등도 과거에는 학살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들이 많았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고 본다. 1980년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광주에서 벌인 국가 폭력도 한때는 국내에 제대로 보도조차 어렵지 않았는가.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도 오랜 시간 동안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직시하는 게 필요하다. 퐁니퐁넛 학살 사건과 같은 비극적인 일은 현 한국 정부가 인정해야 하는 또 다른 우리 역사의 아픈 현실이다.

태그:#한국군 민간인 학살, #베트남 전쟁, #퐁니퐁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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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 전공자입니다. 사회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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