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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비건 아이스크림 회사의 제품은 어떤 성분이 함유되었는지 소비자가 보기 쉽도록 그림을 함께 그려 넣었다.
▲ 비건 아이스크림 성분표 그림 한 비건 아이스크림 회사의 제품은 어떤 성분이 함유되었는지 소비자가 보기 쉽도록 그림을 함께 그려 넣었다.
ⓒ 최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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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개봉한 영화 <보일링 포인트>의 마지막 장면에는 한 손님이 응급실로 실려 가는 모습이 나온다. 해당 영화는 런던의 레스토랑에서 벌어지는 하룻밤 이야기를 원테이크로 촬영한 작품이다. 영화를 봤을 당시 실제 런던의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너무나 사실적이고 현장감 넘치는 묘사에 보는 내내 기가 다 빨렸다. 그리고는 하필 영화를 본 다음날 일터에서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견과류 알러지가 있었던 해당 테이블의 손님은 디저트 위에 뿌려진 견과류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심코 먹어 호흡 곤란 초기 증상을 보였다. 모두가 가슴이 철렁했지만 본인의 과실이라며 곤란해하는 레스토랑 직원들을 한사코 진정시키고는 조용히 자리를 떴다.

외국에 나와 살아보니 정말 다양한 종류의 알러지가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위생과 함께 알러지 체크하기다. 온갖 알러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 오면 긴장하고 예상되는 번거로움에 난색을 표했지만, 늘 해당 음식에 들어가는 식재료가 모두 적힌 매뉴얼 문서를 들고 가 손님과 함께 그 자리에서 정독하며 재차 확인하곤 했다. 주방의 규모가 크지 않았기에 교차오염이 발생할 수 있는 점에 대한 고지 또한 빼먹어선 안된다.

알러지 있는 손님이 오면 주문 뿐만이 아니라 직후 주방으로 가 매니저 혹은 서버가 내용을 공유한다. 그러면 예로 글루텐 알러지가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쉐프는 일반 빵을 굽던 토스트를 모두 싹 닦고 글루텐이 없는 빵을 넣어 조리한다.

알러지 정도가 심한 사람이라고 하면 쉐프는 손을 재차 다시 닦고 마치 의사가 수술을 집도하는 것처럼 온 신경을 기울이며 훨씬 더 예민해진다. 왜냐면 실제 손님이 소비 할, 먹을 음식이 생명과 직결되는 결과를 초래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14년 런던의 한 레스토랑에서는 땅콩 알러지가 있는 손님에게 잘못된 음식을 서빙해 죽음에 이른 사건도 있다.

비단 치명적인 알러지가 있다고 할 때만 자신이 무엇을 소비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고지 받을 권리가 있는 건 아니다. 물론 모든 것의 출처들을 일일이 알기란 어렵지만 입고 씻고 쓰는 제품부터 직접 신체 안에 무엇(음식)을 밀어 넣는 '식사'라는 행위까지 우리는 수많은 소비라는 선택을 하고 그것들은 각자의 삶과 사회를 구성한다.

동물성 제품을 구매하거나 사용하지 않는 개념의 '비거니즘'을 배우며 어떤 생명도, 누군가의 노동도 착취되지 않은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과 더불어 소비 행위 자체에 매우 민감해지게 됐다.

현재 거주하는 독일에서 장을 볼 때 가장 좋은건 비건 제품들에 대한 접근성도 쉽지만 무엇보다 포장이 되어있지 않은 채소들을 쉽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계산대로 가져 가 차례를 기다리며 그것을 보노라면 상품이 아니라 진짜 땅에서 나고 자란 작물을 화폐라는 개념으로 교환해 간다는 기분이 들어 좋다.

이 음식이 내 밥상에 오르기까지의 여정을 상상해보며 채식, 동물과 지구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전에 나란 인간 동물을 위해서 오늘 하루, 좋은 것을 스스로에게 먹여보면 어떨까.

태그:#알러지, #소비, #소비자, #채식, #비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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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여름 한국을 떠나 런던을 거쳐 현재 베를린에 거주 중이다. 비건(비거니즘), 젠더 평등, 기후 위기 이 모든 것은 ‘불균형’에서 온다고 믿기에 그것에 조금씩 균열을 내 기울어진 운동장을 일으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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