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13 07:20최종 업데이트 23.06.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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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7일 석방됐다. 서울서부지법형사합의 11부(배성중 부장판사) 박 구청장의 보석 청구를 인용했다. 박 구청장의 석방 소식이 알려지자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구속해서 수사하라"며 "보석이 웬 말이냐"며 한탄했다. 이날 서울남부구치소에서 나온 박 구청장을 향해 일부 유가족들은 계란을 던지는 등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 병력이 동원돼 유가족들을 끌어내기도 했다. ⓒ 조혜지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책임자인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보석 후 출근 방침을 고수하는 것은 사퇴 의사가 없음을 보여줍니다. 현행법상 지자체장은 본인이 자진 사퇴하지 않는 이상 대법원에서 금고 이상의 확정 판결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주민소환제도가 있지만 실제 개표까지 이어진 경우는 없습니다. 여론의 집중 포화에도 박 구청장이 물러나지 않는 것은 여권의 뒷배가 있어서입니다. 그 배경에는 대통령실이 위치한 용산구청의 특수성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보궐선거가 치러치면 용산구청장이 야권에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 때문이라는 겁니다.

박 구청장이 지금까지 사퇴하지 않고 버티는 데는 그를 공천한 국민의힘의 책임이 큽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지난해 11월 만장일치로 박 구청장에 대한 징계절차에 착수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징계에 늑장을 부리는 사이 박 구청장은 지난 2월 탈당계를 제출했고, 곧 탈당 처리됐습니다. 국민의힘은 여론의 비판이 쏟아지자 "탈당을 한 상황에서 당에서 취할 조치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국민의힘이 지난달 코인 투자 의혹을 받고 있는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탈당하자 "민주당이 탈당으로 면죄부를 줬다"며 맹비난했던 것과는 딴판입니다.


정치권에선 박 구청장이 버티고, 당이 방관하는 것은 보궐선거를 의식해서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현행법에 따르면 지자체장이 사퇴하거나 범죄 등으로 피선거권이 박탈되면 보궐선거를 치르도록 돼있습니다. 보궐선거는 매년 2회(4월, 10월) 실시하는데 박 구청장이 지금 물러나면 10월에 치러집니다. 여권에선 보궐선거가 실시되면 이태원 참사 책임론이 다시 이슈로 떠올라 내년 총선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용산구청장 보궐선거 실시 자체가 여권으로선 악재인 셈입니다.  

여권에 더 치명적인 건 국민의힘이 새 후보를 공천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보궐선거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가 공천을 할 경우 여론의 비판이 쏟아질 건 불을 보듯 뻔합니다. 국민의힘은 2020년 민주당이 박원순·오거돈 시장 성추문으로 실시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후보를 공천하자 "무책임하다"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당헌을 바꾸면서까지 후보를 낸 민주당이 민심의 역풍을 맞아 선거에서 참패하는 모습을 지켜본 국민의힘으로선 이를 답습하기 어렵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용산구청장 자리를 내줘야 할 형편입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으로 도로·청소 비용, 용산구에 전가 

여당도 여당이지만 집무실과 대통령 관저를 용산에 둔 대통령실로선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통령실 주변의 집회시위 등 경비 책임은 경찰에 있지만 구청의 협조가 절대적입니다. 대통령실 인근의 시설물 설치와 환경 미화 등의 업무는 용산구청이 도맡고 있습니다. 최근 JTBC는 "대통령 집무실로 이어지는 도로 정비 비용이 용산구 예산에서 전용됐으며 이 공사로 구청 공무원 10명이 대통령 경호처 표창을 받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용산구의회는 대통령실 도로정비 등에 들어간 용산구 예산을 환수하라고 요구하는 상황입니다.  

용산구청장이 민주당 쪽 인사가 되면 업무 협조는커녕 사사건건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태원 참사 당시 용산구청 당직 근무자들이 박 구청장 지시로 대통령실 인근에서 윤석열 대통령 비판 전단을 떼는 작업에 동원되는 바람에 이태원에 투입되지 못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습니다. 박 구청장도 지난해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 집무실 이전으로 도로·청소 등 자치구와 협의할 사안이 많아져 자연스럽게 소통창구가 마련됐다"고 밝혔습니다.

박 구청장이 출근을 이어가자 용산구 일부 시민단체는 주민소환 운동에 돌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지자체장의 전횡을 막기 위해 2007년 제정된 주민소환제는 지역 유권자 15%의 동의를 받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유권자 3분의 1 이상이 투표해 과반수가 찬성해야 가결되는데, 투표율이 기준에 못 미치면 개표 없이 자동 부결됩니다. 박 구청장에 대한 주민소환 절차가 시작되지 않은 것은 취임 1년 전 시행 불가능 규정에 묶여서였는데, 7월 1일부터는 가능해집니다. 그간 제주지사, 경기 하남·과천시장 등 6곳에서 주민소환 투표가 실시됐지만 투표수 미달로 개표가 이뤄진 경우는 없었습니다. 박 구청장에 대한 주민소환이 실제로 성사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덧붙이는 글 <이충재의 인사이트>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매일 아침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을 지냈던 이충재 기자는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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