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11 07:10최종 업데이트 24.01.12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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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1일 경상북도 구미시 SK 실트론을 방문, 전시된 실리콘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대통령님, 11일부터 14일까지 3박 4일간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한다는 보도를 봤습니다. <연합뉴스> 기사에 따르면 12일 오후에는 빌럼-알렉산더르 국왕과 함께 반도체 장비 기업 ASML 본사를 방문하는 일정이 있더군요. <연합뉴스>는 대통령실 관계자의 말을 빌려 "대통령의 이번 네덜란드 국빈 방문을 계기로 교역·투자와 반도체 분야에서 양국 간 협력이 더욱 심화하고,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보도했습니다.

3박 4일의 일정을 살펴보니 ASML 본사 방문이 이번 네덜란드 방문에서 가장 중요한 일정인 것 같습니다. 대통령님의 반도체 관련 비공식 과외교사를 자처하는 입장에서 대통령님이 ASML에 가서 보다 많은 성과를 얻어 오고, 혹시나 실수는 하지 말라는 의미로 오늘은 ASML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슈퍼 을' ASML
  

2022년 ASML 연례보고서에 있는 ASML 소개. ASML은 반도체 제조의 여러 공정 가운데 노광공정에 쓰이는 장비만 생산하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장비업체입니다. ⓒ ASML

 
ASML은 네덜란드 벨트호벤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장비회사입니다. 반도체 장비 중에서도 빛과 마스크를 사용하여 반도체 웨이퍼 위에 회로를 형성하는 '포토-리소그래피(노광)' 장비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회사입니다. 반도체 회사들이 7나노 이하의 최첨단 공정의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ASML 의 극자외선 (EUV)장비가 필수적입니다. 중국 SMIC가 심자외선(DUV) 노광장비를 가지고 7나노 반도체 생산에 성공하긴 했지만 이는 경제성이 극히 떨어집니다. 그래서 반도체 회사들이 ASML 장비를 사기 위해 줄을 서 있고, ASML을 두고 구매자인 갑보다 더 힘이 센 '슈퍼 을'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여기까지는 예전 기사에서 이미 설명을 한 내용인 데다 대통령님이 지난 7월에 ASML의 피터 베닝크 회장과 면담을 한 적이 있으니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럼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ASML은 매년 연례 보고서 (Annual Report)를 발간하고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 보고서를 보면 ASML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들이 꿈꾸는 미래까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ASML 2022 연례보고서에 기록된 ASML의 현재. 매출과 직원 수, 주요 사업 등이 요약되어 있습니다. ⓒ ASML

 
보고서에 나와 있는 ASML의 회사 규모를 먼저 보겠습니다. 2022년 순 매출은 212억 유로(약 30조 원)로 2021년 대비 13.8% 증가했습니다. 지난 10년간 반도체 산업의 연평균 성장률이 6% 수준인데 비하면 미중 무역 갈등 중에도 높은 성장을 계속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매출 총이익률은 50.5%로 경쟁사인 AMAT나 LAM 보다도 더 높습니다.

어떤 장비를 만들어 팔길래 이렇게 매출이 많고 또 마진도 높을까요? 반도체의 여러 공정 중 핵심은 반도체 회선을 웨이퍼에 그리는 노광 공정입니다. 현재 반도체 회사들이 사용 중인 노광 장비는 EUV와 DUV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ASML의 노광 장비. 최신 EUV 노광장비 한 대 가격은 2천억 원을 넘기도 합니다. ⓒ ASML

 
파장이 짧은 극자외선을 이용하는 EUV 장비가 훨씬 더 정밀한 작업을 수행하는데 이 장비는 ASML이 독점 생산하고 있습니다. DUV 장비는 니콘이나 캐논 등 경쟁업체가 있긴 하지만 시장점유율은 ASML이 크게 앞서고 있습니다. 노광 장비는 가격이 비싸기로도 유명합니다.

ASML의 순 매출 중에서 154억 유로(약 22조 원)가 장비를 팔아서 올린 금액인데, 판매된 장비 대수는 345대입니다. 모델별로 장비 가격이 달라서 비싼 건 대당 2500억 원이 넘는 것도 있다고 하지만 그냥 평균으로만 계산해도 장비 한 대당 가격이 600억 원이 넘습니다. 하지만 ASML이 노광장비만 만드는 회사는 아닙니다. 비중은 적지만 계측 및 검사 장비도 함께 만들고 있으니 여기에 대해 언급을 한다면 회사에 대하여 공부를 하고 왔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 ASML의 장비를 어디서 가장 많이 사는 걸까요? 1위는 전체의 38%를 차지하는 대만입니다. 그 다음이 우리나라 (28.6%)이고, 중국(13.8%), 미국(9.4%), 일본(4.8%)이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ASML 장비를 구입하는 상위 5개 나라에 대한 매출액을 2021년과 비교해 보면 흥미로운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대만은 10%가 늘었고, 미국은 25%, 일본은 119%가 늘었습니다. 무역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국도 6%가 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3%가 줄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반도체 기업들이 ASML 장비 구입을 늘리는 동안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들만 줄인 겁니다.

ASML 직원 수는 전 세계에 걸쳐 3만 9000명이 넘습니다. 그 중 ASML코리아의 직원 수는 2000명 수준입니다. 대만의 3600명보단 적지만 중국의 1000명, 일본의 350명에 비하면 많은 숫자입니다. ASML은 지난해 11월, 경기도 및 화성시와 업무협약을 맺고 경기도 동탄 지역에 지역수리센터, 글로벌 트레이닝센터, 체험관 등이 들어가는 뉴 캠퍼스를 조성한다고 발표를 했고, 현재 공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해야 할 일 
 

ASML코리아의 현황. 1996년에 설립되어 2000명 넘는 직원이 일하고 있습니다. ⓒ ASML

 
ASML 코리아는 고용노동부로부터 '2023년 대한민국 일자리 으뜸기업'으로 선정되었고, 여성가족부로부터 '가족친화기업'으로 인증받기도 했습니다. ASML 연례 보고서에도 해당 내용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대통령님이 ASML 회장과 면담할 때 이 이야기를 하면 분위기가 좋아지지 않을까요?

그 좋은 분위기를 이어서 이제 대통령님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 일이 바로 순방에 앞둔 대통령님께 이렇게 ASML에 대해 설명을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앞서 ASML 코리아에 2000명의 직원이 있고, 뉴 캠퍼스를 조성 중이라고 했습니다. 대통령님은 거기에 ASML의 노광장비 생산 시설을 만들자고 제안하는 겁니다. 이유를 설명드리겠습니다.

ASML의 EUV장비를 만들기 위해서는 약 800개의 글로벌 공급업체가 제공하는 수십만 개의 부품이 필요합니다. 이 부품들을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ASML의 지사에서 모듈 형태로 구성한 후 네덜란드 본사로 내고 본사에서 최종 조립과 테스트를 거쳐 하나의 장비가 완성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렵게 만든 장비를 고객사에 납품하기 위해서는 다시 모듈 단위로 분해하여 배송을 해야 합니다.
  

ASML의 전세계 생산 기지. 다른 지역에서 만든 부품과 모듈을 네덜란드에서 조립하여 완성합니다. 한국에 완제품 생산 시설을 갖추게 되길 바랍니다. ⓒ ASML

 
문제는 EUV장비 한 대의 무게가 180t이 넘고, 높이만 해도 5m 가까이 되기 때문에 모듈로 나눠서 옮기더라도 비행기로는 세 대, 육상 이동을 위해서는 방진을 위한 특수 장치가 갖춰진 대형 트럭 20대 이상이 필요합니다. 향후 생산 예정인 하이-NA EUV 같은 경우는 장비 길이가 12m에 무게가 200t 이상이 될 거라 예상되기 때문에 장비 생산 후 고객사까지의 이동 과정이 더더욱 중요한 일이 될 것입니다.

세계에서 ASML의 장비를 두 번째로 많이 사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그 장비들을 네덜란드에서 만들어 한국으로 어렵게 보내는 것 보다는 한국에서 완제품을 만들어 한국 기업에 바로 공급한다면 얼마나 수월하겠습니까? 한국, 대만, 중국, 이 세나라가 ASML의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0%입니다. 대만이나 중국에서 필요한 장비를 한국에서 만들어 보내는 게 네덜란드에서 보내는 것보다 훨씬 유리할 것입니다. 모든 제품의 생산을 한국에서 하진 않더라도 EUV는 한국에서, DUV는 네덜란드에서 하거나 그 반대도 가능할 것입니다. DUV 안에도 종류가 많으니 그 중 특정 제품군만 한국에서 생산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입니다.
  

ASML이 각국에 낸 세금. 전체 금액은 17억 유로, ASML코리아는 1억6천7백만 유로로 ASML 안에서 네번째로 많이 내고 있습니다. ⓒ ASML

 
보고서에 따르면 ASML이 지난해 낸 세금은 17억 유로(약 2조 4천억 원) 입니다. 그 중 ASML코리아가 낸 세금은 1억6700만 유로(약 2370억 원)입니다. ASML이 노광 장비를 한국에서 생산을 하게 된다면 그만큼 세수가 늘 것입니다. 첨단 반도체 장비를 생산하는 양질의 일자리도 많이 늘겠지요. ASML에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업체들도 한국에 들어올 수밖에 없습니다.

꿈같은 이야기처럼 느껴지나요? ASML도 한국에 생산 시설을 짓는 것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작년 11월, 베닝크 회장은 동탄의 뉴 캠퍼스 조성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향후 한국에서 R&D(연구·개발)센터를 늘려나갈 것"이라며 "지식 이전에도 5~10년이 걸리는데 R&D가 추가되면 제조 기반 확장 여지가 생길 수 있고, 한국은 시작점에 있다"고 밝힌 바가 있습니다.

오는 고객도 쫓아내고 있는 '대한민국 영업사원 1호'
 

반도체 노광 장비 선두기업인 네덜란드의 ASML의 피터 베닝크 회장이 2022년 11월 1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화성 '뉴 캠퍼스' 청사진 공개 행사에 참석해 세계 반도체 시장 전망을 말하고 있다. ⓒ 연합뉴스

 
베닝크 회장의 발언은 완제품 생산이 아니라 부품 혹은 모듈 생산을 염두에 둔 발언일 수 있지만, 대통령님은 베닝크 회장을 만나서 한국에 완제품 생산 시설을 만들자고 제안해야 합니다. 여기에 대한 약속만 받아올 수 있다면 그 동안의 해외 순방이 단순한 외유가 아니었음을 증명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에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ASML은 보고서의 사업리스크 항목에 "한국에는 북한과의 긴장이 존재하고 있다. 두 나라의 관계가 악화되거나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당사의 사업, 재무 상태 또는 운영 결과에 중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지난 11월 22일, 우리 정부가 9.19 남북군사합의 내용 중 일부를 효력정지하면서 시작된 남북간 군사적 갈등은 북한이 합의내용을 전면 파기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대결국면으로 이어졌습니다. '일체의 적대행위 중지' 및 '서해 해상 평화수역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군사합의서로 인해 낮아졌던 한반도의 긴장상태가 이제 다시 물리적 충돌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이런 상황은 외국 기업들이 한국에 투자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정부 내 호전적 인사들을 배제하고, 남북간 대화를 통한 긴장완화에 나서야 합니다.

두 번째 문제는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공급 부족입니다. ASML은 2025년까지 회사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0으로 만들겠다며 순 배출 제로화를 선언했습니다. 2030년까지는 자사의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탄소도 0으로 만들겠다(탄소발자국)고 목표를 정했고, 2040년까지는 고객이 ASML장비를 사용하는 과정에서도 탄소 발생을 0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정했습니다.
  

탄소 배출을 0으로 만들기 위해 만든 ASML의 로드맵. 2025년까지 자사 운영 과정에서의 탄소 배출은 0으로 만들겠다고 정해두었습니다. ⓒ ASML

 
이런 ASML의 목표 달성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한국입니다. 보고서에 "순배출 제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대만과 한국에서 신뢰할 수 있는 재생 에너지를 조달하는 것이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2025년까지 재생 에너지 조달을 위해 "태양광 패널 사용을 확대할 계획"이라고도 적었습니다.

ASML이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재생 에너지를 조달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한국에너지공단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발전량 가운데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7.15%(2021년)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재생에너지에 투자를 해서 크게 늘여야 하는데 윤석열 정부는 태양광 발전 대신 원자력 발전만 키우고 있는 중 아닙니까?

대통령님은 자칭 대한민국 영업사원 1호라고 했습니다. 한국은 반도체 강국이고 반도체 장비 최대 수입국 중 하나이기에, 외국 반도체 장비 업체들이 언제라도 들어오고 싶어 하는 나라입니다. 정부가 할 일은 남북평화 분위기 조성과 재생에너지 조달만 해결하면 되는 겁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영업하겠다면서 영업에 방해되는 말과 행동만 골라 하고 있으니 지켜보는 이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는 고객도 쫓아내는 격입니다.

ASML 본사 방문 전에 남북긴장완화와 재생에너지 조달 관련 대책을 마련하십시오. 그 대책을 갖고 가서 세계 최대의 반도체 장비 회사인 ASML에게 한국에 반도체 장비 생산 시설을 지으라고 설득해야 합니다. ASML의 반도체 장비 한국 생산이 성사되기만 한다면 이는 단순히 반도체 장비 업체 유치 차원이 아니라, 반도체 공급망에서 한국이 세계의 핵심이 될 수 있는 역사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대통령님의 각성과 행동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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