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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병 자랑'을 한번 해 보겠습니다. 예로부터 병도 자랑을 하고 볼일이라고 했습니다. 지금같이 의학이 발달한 시대에는 맞지 않는 얘기고 옛날 민간 요법에 많이 의존하던 시대에나 어울리는 말일 터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오늘에도 병 자랑이 필요한 구석은 있을 듯싶습니다.

내가 병 자랑을 하려는 까닭은, 어떻게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편을 구해 보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나는 내 병을 잘 압니다. 완치란 불가능하고, 평생을 끌어안고 잘 '관리'하며 살아야 하는 병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내 의도는, 세상에는 이런 병도 있다는 것과 내 병고(病苦)의 실상을 널리 알려서 나처럼 불행한 사람이 많이 생겨나지 않게 하려는 데 있습니다.

지난 1999년 가을 안면도의 '자연휴양림' 안 전시관에서 방송 드라마 작가 이환경 씨를 우연히 만난 적이 있습니다. 실로 오랜만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때 그 친구는 KBS 대하 사극 <용의 눈물>로 드라마 작가로서의 주가를 크게 올려놓고 <태조 왕건>을 준비하던 중이었습니다. 청년 시절 노동판에서 나를 만나 나게 기본적인 글쓰는 법을 배운 것이 계기가 되어 방송 작가의 길로 들어선 그 친구는 어느덧 일취월장, 부(富)와 명성을 높게 쌓아올렸는데, 나는 여전히 시골 변방 도린 곁에서 반딧불 같은 소설 작가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으니, 우리의 뜻밖의 만남은 아무래도 어색하고 쑥스럽기도 한 양상이었습니다.

서로 바쁜 처지여서 긴 얘기는 나누지 못하고 잠시 몇 마디 말을 주고받았는데, 그 친구도 나처럼 지금은 거의 술을 마시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친구도 나처럼 통풍이라는 병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아, 옛날 젊은 시절에는 문우(文友)에다가 (주우(酒友)였던 그와 내가 이 중년 시절에는 서로 모르는 사이에 환우(患友) 지경이 되어 있는 것이었지요.

날이 궂어 일을 하지 못하는 날이면 곧잘 어울려서 서울 가리봉동의 막걸리 집만을 찾아다니며 술독에 퐁당 빠지기를 불사하곤 했던 우리들의 젊은 시절이 불현듯 한없이 그리워졌습니다. 그 좋아하던 술을 이제는 거의 마시지 못하고 사는 내 슬프고 적막한 심정으로 그 친구를 보자 하니, 한 가슴 연민이 끓어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은 '통풍'이라는 병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처음 들어보는 병이라면 궁금증은 생기십니까? 당신의 궁금증 여부와 상관없이 나는 이 병의 정체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를 느끼고 있습니다. 당신이 혹 자신의 건강을 믿고 술을 무척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그리고 단백질 안주를 많이 드시는 분이라면 내 얘기에 정신 바짝 차리고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는 이 통풍이라는 병이 아직은 흔치 않은 병이어서 처음 듣는 분들도 많을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우리의 식생활이 점점 서구화되면서 이 병도 차츰 많아지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주변에 통풍 환자들이 의외로 많은 사실에 적이 걱정도 하게 됩니다. 소설가 김원일 선생님도 이 병을 갖고 계신 것으로 누구로부턴가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또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통풍 환자라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확실한 지는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섭취하는 삼대 영양소 중의 하나인 단백질에는 '퓨린'이라는 성분이 있습니다. 이 퓨린은 모든 육류, 생선 내장, 등 푸른 생선(특히 멸치와 정어리), 오징어, 꽃게, 새우, 낙지 등등에 많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단백질 음식을 섭취하면 체내에서 소화되는 과정에서 '요산'이라는 물질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정상인들은 간에서 요산을 분해하는 '효소'가 잘 만들어져서 요산이 문제없이 배설이 됩니다. 그런데 통풍 환자들은 요산을 분해하는 효소 작용에 문제가 생겨서 요산 찌꺼기가 그대로 체내에 남게 됩니다.

요산을 분해하는 효소 작용이나 기능―그 시스템이 망가져 버린 거지요. 원인은 계속적인 음주와 과다한 단백질 섭취에 있습니다.

사람의 체내로 알코올이 들어가면 간은 모든 일을 중지하고 오로지 알코올을 분해하는 일에만 집중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다하고 잦은 음주로 간의 알코올 분해 집중 현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또 계속적으로 단백질 음식을 섭취하게 되면, 즉 체내에 요산이 과다하게 증가하면 일종의 과부하 현상이 생겨서, 간의 요산분해 효소생성 능력이 그만 망가져 버리게 된다는 거지요.

그런데 분해되지 않은 요산의 찌꺼기는 염분과 결합하여 '결정체'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 요산 결정체를 현미경으로 보면 색깔, 모양, 강도까지 영락없는 유리 조각이라고 합니다. 3천 도의 열에도 녹지 않을 정도로 강하답니다. 그런 유리 조각들이 관절 부위에 침착을 하니 대단한 통증이 유발되는 거지요.

이 요산 결정체는 주로 체온이 낮은 하체(손과 발, 무릎, 팔꿈치 등)부위에 침착을 하지만 정도가 심하여 신장에 침착하면 신장 결석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뇌혈관에 침착하면 뇌졸중을 유발하기도 하는―생각하면 치명적일 수도 있는 심각하고도 고약한 병이지요.

이 병은 인생에서 가장 식욕이 왕성하고 탐욕스럽기도 한 삼십대 중반쯤에 주로 발생을 하는데, 처음에는 일년 주기로 재발을 하다가 점점 재발 기간이 빨라지고 빈번해집니다. 그리고 한번 걸렸다 하면 앞에서 얘기한 대로 완치가 되지 않으므로 평생 동안 끌어안고 관리를 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가 이 병에 걸린 삼십대 중반 시절에는 병의 이름도 몰랐지요. 잘 먹고 편히 잘 사는 사람들에게나 걸리는 병이어서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왕후장상병', '양반병'으로 불려왔다는 이 고급병(?)이 나 같은 가난뱅이한테도 차례가 온 셈인데, 이 병의 존재를 일찍이 알았더라도 절제는 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병의 존재를 훤히 알고 난 이후에도, 약을 먹으면서도 술 마시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니…. 오랫동안 그 지경으로 살았으니….

어느 병에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이 병에 있어서 술은 상극입니다. 술은 그 자체로서 요산을 만들어 내는 식품일뿐더러 신장의 요산 배설 작용을 방해하는 극악무도한 물질이지요.

이제는 내 나이도 생각하고, 나이 사십에 결혼하여 얻은 이제사 중학교 3학년과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아이들도 생각하고, 불우한 내 문학도 생각해서 늦게나마 단단히 작심하고 거의 술을 입에 대지 않고 삽니다만(어쩌다 마시더라도 한두 잔 정도, 그렇게 약간 마시고도 불안해서 방어적으로 미리 약을 먹어야 하고), 생각하면 참 후회가 큽니다. 내 주량만 믿고 두주 불사하며 살았던 세월이…. 밤새 술자리에 퍼질러 앉아서 끝까지 혼자 남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던 그 우스꽝스러웠던 세월이….

때로는 이 통풍이라는 병을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더불어 내가 겪어왔던 갖가지 풍상과 곡절이며 울울창창한 슬픔들도 나를 만들어 내기 위한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 좋아했던 술을 마시지 못하는 슬픔과 고독이 이상하게 즐거워지는 기분을 느끼기도 합니다. 술로 나의 슬픔들을 스스로 위안했던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또한 슬프게 좋고….

그런데 술을 조금만 마셔도 통풍 기미를 느껴야 하는 상황 때문에 술을 멀리하게 된 이후로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두렵습니다. 언젠가 한번은 청주에서 온 어느 문인의 전화를 받고도 통풍 발작 때문에 도저히 나갈 수가 없었는데, 그분께 내 통풍 발작 상태를 보여 드릴 수도 없고, 참 난감했습니다. 너무도 미안하여 죄를 짓는 심정이었고, 나 자신이 스스로 비겁하게도 느껴져서 몹시 우울한 기분이었지요.

지난 1997년 여름 <한국소설가협회>의 여러 작가님들과 호주를 여행할 때만 해도 가지고 간 약을 믿고 걱정 없이 술을 마셨었는데….

통풍약은 개발이 잘된 편이지만 어디까지나 증상을 가라앉히는 약제일 뿐 근본 치료와는 무관한 것이지요. 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약을 먹지 않고 견디려고 합니다. 요산 결정체가 침착한 부위에서 시나브로 결절로 굳어지게 되면 증상이 가라앉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쪽 팔꿈치와 양발의 바깥쪽 복사뼈 부위, 그리고 왼손 장지 중간 마디에는 통풍 결절이 약간씩 보기 흉하게 도드라져 있는 상태이지요.

되도록 독한 약을 먹지 않으려는 방책을 취하다 보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몹시 고통스럽지요. 이런 때는 내가 집안에서 뭉그적거려도 되는 무직자라는 사실이, 월급을 타다 주는 교사 마누라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연대 보증을 잘못 서준 죄로 월급 차압을 당하는 수난이야 많았지만….)

정말이지 경험자(환자)로서 통풍이라는 고약한 병의 실상을 많은 이들에게 널리 알려야 할 필요를 느껴서 이런 이상한 작업을 했습니다만, 술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통풍이라는 병의 정체를 깊이 인식하고, 절대로 자기 주량만을 믿고 오래 과음하지 않기를, 그리고 술과 함께 단백질 음식을 과다하게 섭취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지역에서는 내가 그래도 유명 인사라 내 지병 소문도 많이 나서인지 종종 통풍에 대한 문의전화도 받곤 하는데 앞으로는 이 글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온 나라에 금연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합니다. 담배를 끊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다는데, 예전에 담배를 끊은 나로서는 반가운 마음입니다만, 담배 못지 않게 술도 여러 가지로 매우 위험한 물질임을 경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음으로 나와 같은 통풍 환자가 생겨나지 않기를 거듭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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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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