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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6년 완공, 서울 한복판 백성 위한 '문'에 얽힌 사연

동대문과 남대문 사이에 만들어진 광희문에 깃든 역사, 그리고 현재

등록 2024.04.24 11:08수정 2024.04.24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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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성루가 광희문이고 오른쪽 노란 건물이 서산부인과 의원 건물이다. 사진으로는 이렇게한 프레임에 담을 수 없는데 몸을 돌려가면서 두 요소를 그림에 담았다. ⓒ 오창환

 
이번달 서울어반스케쳐스 모임은 '광희문 일대'에서 했다. 지난 20일,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역에서 내려서 3번 출구로 나가면 오른쪽에 동글동글하게 특이하게 생긴 건물이 있는데 그 건물을 뒤로하고 길을 건너면 광희문이다. 하루 종일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우중 스케치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로 모여드는 스케쳐들을 막지는 못했다. 광희문 홍예 아래에 자리를 잡은 스케쳐들도 있었고, 나는 비를 피해 광희문이 보이는 상가 어닝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조선 건국 후 서울 도성을 지을 때, 동서남북 방향으로 사대문을 만들었고 그 사이사이에 작은 대문인 사소문을 만들었는데 동대문과 남대문 사이에 만들어진 남소문에 해당하는 문이 광희문으로 1396년(태조 5년) 다른 성문과 함께 완공되었다.


광명원희(光明遠熙/ 광명이 멀리 빛나다)에서 두 글자를 택해 문의 이름을 광희문(光熙門)이라 지었다. 아마도 성리학이라는 문명의 빛을 세상 끝까지 비추려는 당대의 원대한 이상을 표현한 것이리라.

역사와 함께 부침을 거듭해 온 광희문은 1975년 원래 자리에서 남쪽으로 12미터 거리에 이축 되었고, 현판은 여초(如初) 김응현 선생님이 쓰셨다. 여초 선생님은 선친의 첫 번째 서예 선생님이셔서 우리가 살던 삼선교 집으로 방문하신 적도 있고, 어린 시절에 몇 번 뵌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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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사진이 광희문이고 오른쪽 사진은 광희문 홍예 아래에서 바라본 천주교 순교자 선양관이다. ⓒ 오창환

 
광희문은 일반 백성들을 위한 실용적인 문이었다. 특히 도성 내에는 묘를 쓸 수 없어 시신을 도성 밖으로 옮겨야 했는데, 이때 주로 서소문과 광희문을 이용했다. 광희문은 시신을 운반하는 문이라는 뜻에서 시구문(屍口門)이라는 다른 이름을 얻었다. 시신은 문밖 멀리까지 가서 장례를 치르는 경우도 많았지만 연고가 없거나 박해를 받은 시신은 광희문 밖에 버려지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결국 이곳은 광명의 빛을 멀리 퍼지게 하기는커녕 암흑의 장소가 되고 말았다. 

광희문 밖에는 온갖 무덤이 즐비하고 죽은 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무당집들이 많이 모여들어서, 마을 이름이 '신당동(神堂洞)'이 되었다. 지금은 한자를 바꾸어 '신당동(新堂洞)'이라고 한다.

광희문을 스케치하면서 살펴보니 소문(小門)이라 과연 작기는 하다. 정면에서 보면 기둥이 4개고 측면에서 보면 기둥이 3개이니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에다 여염집처럼 우진각 지붕으로 되어있다. 크기가 작은 대신 손에 잡힐듯 가까이 보이고 친근하다. 

아쉬운 점은 광희문에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문루에 올라가서 보면 전망도 좋고, 다른 각도에서 이 동네를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좋은 문화 자산을 이렇게 내버려 두는 이유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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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서산부인과 의원 건물 전경. 오른쪽은 서산부인과 건물 옥상에서 바라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 오창환

 
광희문을 그리고 나서 오른쪽을 보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역 3번 출구 앞에 있는 건물 '서산부인과 의원'을 그려서 하나의 프레임에 넣었다.


서산부인과 의원 건물은 한국 근대건축의 거장 김중업 선생님의 대표작으로, 1965년 설계해 1966년 준공되었다. 건축주였던 서병목 원장은 병원과 주거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건물을 의뢰했고 30여년간 산부인과 건물로 사용하였다. 1995년 디자인 회사인 아리움이 건물을 매입해서 사옥 및 임대 건물로 사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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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서산부인과 의원> 원안 모형. 오른쪽은 건물 평면도. 성적인 메타포로 가득차 있다. ⓒ 김중업, 오창환(사진)

 
시구문이라 불리는 문 옆에 생명을 탄생시키는 산부인과 병원이 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게다가 서산부인과 의원을 설계할 때 조형적 요소로 남성의 심벌과 여성의 자궁 그리고 태아를 형상화하여 건물 전체가 성적인 메타포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그렇다.

그림을 그리고 신당동 떡볶이 거리에서 점심을 먹고 신당동 동네를 둘러보았다. 비가 계속 온다. 오후에 모둠 사진을 찍고 집으로 왔다.

그런데 기사에 사용할 서산부인과 의원 사진이 마땅치 않아서 지난 22일에 다시 현장을 찾았다. 이날은 마침 바닥 타일 공사를 하고 있었다. 관리자처럼 보이는 분이 있어서 물어봤다.

"선생님, 이 건물이  등록 문화재로 지정돼서 공사하시나 봐요?"
"이 건물은 2018년에 등록문화재로 신청했다가 조건이 맞지 않아 취소했어요. 지금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수리하는 거죠."


알고 보니 그분은 아리움의 정인훈 대표님이셨다. 취재 요청을 하니 현재 공사 중인 건물 내부를 다 보여 주시고 책자도 빌려주셨다. 오래된 콘크리크 건물을 관리하느라 수고가 많으셨을 것 같다. 공사 중인 1층에 들어가서 창문으로 건물 뒤를 보니 예전의 성벽이 그대로 보인다. 그러니까 뒷집 건물은 옛 성벽을 축대 삼아 건축되었고, 산부인과 병원은 성벽에 바로 앞에 붙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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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서산부인과 건물 내부의 경사 램프. 오른쪽 사진은 1층 후면 창문으로 보이는 옛 성벽이다. ⓒ 오창환

 
서병준 원장의 차녀 서희정씨 인터뷰에 의하면 "직접 본건 아니지만, 어른들에게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건물을 지을 때 기초를 파던 중 유골이 많이 발견되었"다고 한다(<김중업 서산부인과 의원 ; 근대를 뚫고 피어난 꽃> 291쪽).

이제 서산부인과 의원 건물은 몇 개월 후면 갤러리로 재탄생한다. 의미 깊은 공간이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갈까.

서울시에서 광희문 문루 출입을 개방하고 서산부인과 의원 건물이 갤러리로 개관을 하면 동대문디자인플라자까지 합해서 우리나라 전통과 근대 그리고 현대 건축물을 연결하는 건축문화기행을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광희문 #김중업 #서산부인과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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