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말]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 타이틀

전주국제영화제 타이틀 ⓒ 전주국제영화제


01.
하나(오가와 미유 분)는 위탁 가정에서 살고 있다. 어린 시절 엄마와 헤어진 이후로 줄곧 이곳에서 지내왔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하나의 곁을 지켜주는 것은 작은 어항 속 금붕어 한 마리다. 올해로 18번째 생일을 맞이하게 되는 하나는 이제 곧 이 시설을 떠나야 한다. 여러 문제로 대학 진학보다는 취직을 하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 위탁 가정을 운영하고 있는 타키 아저씨는 정이 많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부모와 함께 지내고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에 나가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렇게 하나가 자신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순간에 시설에 다른 아이 하나가 들어오게 된다. 하루미(하나다 루나 분)라는 이름의 어린 소녀다. 낯선 공간에 잘 적응하지 못한 듯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람을 대하는 모습의 하루미. 시설의 다른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고 매일 혼자 기차역까지 나가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만 바라보는 소녀가 어쩐지 하나는 마음에 걸린다. 하나는 하루미를 보고 있으면 자신이 처음 이 곳에 들어왔던 때가 떠오르는 듯하다.

새로운 아이가 들어올 때마다 나무를 한 그루씩 심는 타키 아저씨는 마당에 하루미를 상징하는 나무도 한 그루 심는다. 그리고 그 옆에는 벌써 10년이나 된, 이제 훌쩍 커버린 하나의 나무도 보인다.
 
 제 22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해변의 금붕어> 스틸컷

제 22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해변의 금붕어> 스틸컷 ⓒ 전주국제영화제


02.
오가와 사라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인 <해변의 금붕어>는 엄마가 저지른 범죄로 인해 위탁 가정에 맡겨진 여고생 하나와 엄마에게 학대를 받아 새로 입소하게 된 어린 아이 하루미가 서로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학대로 인한 트라우마와 상처로 타인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던 하루미는 자신에게 마음을 쓰는 하나에게 마음을 열어가고, 하나는 그런 하루미의 모습을 통해 묶여있던 과거의 상처에서 한 걸음 나아가게 되는 과정이다.

영화는 두 사람이 관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보여줌과 동시에 위탁 가정에 입소하게 되는 계기와 맞닿아 있는 과거의 상처에 대해 이야기한다. 두 사람의 과거는 모두 엄마라는 대상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유사한 부분이 있는데, 이 지점은 특히, 하나가 하루미에게 깊은 감정 이입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특히 영화의 초반부에서 다른 말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하루미가 자신의 애착 인형을 선물해 준 사람이 엄마라고 대답하는 것과 하나의 물음에 엄마를 좋아한다고 직접적인 대답을 하는 부분, 그리고 잠이 들기 전에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우는 모습은 하나가 하루미를 더욱 적극적으로 들여다보게 되는 계기가 된다.

03.
영화는 하루미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 하기 이전에 하나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시작한다. 그녀가 지금의 위탁 가정에 입소하기 직전에 벌어졌던 엄마의 '농약 빙수 사건'에 대한 것이다. 신문을 통해 접하게 되는 엄마의 소식. 이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그녀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무죄를 주장하고 있으며 재심을 청구했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로 하루미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모두 생각나지는 않지만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편린들이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하나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나간다.

그녀의 기억은 어항 속 금붕어와도 연관이 있다. 그녀가 기르고 있는 금붕어는 엄마가 체포되던 날, 마을 축제에서 얻게 된 것이다. 금붕어 잡기에 계속해서 실패하는 하나에게 주인 아저씨가 한 마리를 선물로 줬었다. 그 금붕어를 받아 들고 기쁜 마음으로 엄마의 이름을 부르며 처음 본 광경이 길바닥에 쓰러져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사람들과 끌려가던 엄마의 뒷모습이었다. 가끔 엄마의 뒷모습이 떠오르긴 하지만, 아직까지 그 날의 금붕어를 기르고 있는 까닭은 일종의 동일시라고도 볼 수 있다. 나쁜 기억이지만 사랑했던 엄마와의 마지막 기억이 남아 있는 대상이자, 홀로 남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바라볼 수 있는 존재.

이 작품에서 영화가 하나의 과거를 설명하는 일에 꽤 많은 시간을 들이는 이유는 하나다. 후에 등장하는 하루미의 이야기, 그녀가 엄마에게 받은 폭행의 상처를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하나와 하루미 두 사람의 연결 고리를 강화시키기 어렵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지점을 통해 관객들은 하나가 왜 하루미라는 아이에게 깊이 마음을 쓰게 되는지, 두 사람의 감정적 공유의 근원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04.
결정적으로 하나가 하루미에게 크게 감정 이입을 하는 부분은 목덜미 쪽에 있는 커다란 흉터를 발견하게 되면서다. 하나는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하루미의 머리를 잘라 주다가 그 흉터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서 하루미가 입소하기 전에 어떤 문제를 겪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함께 갔던 국숫집에서 처음 미소를 보인 것을 시작으로 이제 다른 친구들과도 조금씩 어울리기 시작하는 하루미가 처음 이곳에 와서 보였던 반응의 근거를 찾아낸 셈이다. 엄마의 폭력. 소녀에게 가해진 폭력 그 자체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하루미가 엄마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서는 하나도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

하나가 엄마로부터 느끼는 감정은 하루미와 달리 폭력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에 겪게 되는 부모와의 분리, 그리고 그로 인해 얻게 되는 부정적 감정들은 두 사람의 감정적 공유를 강화시킨다. 엄마가 어떤 행위를 했느냐의 문제보다는 엄마의 잘못된 행동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으로부터 더 큰 공감대를 느끼게 되는 셈. 그러니까 아직 어려서 잘 모르는 하루미의 감정들에 대해 이미 그 시간들을 모두 지나온 하나는 알고 있는 셈이고, 그 복잡한 감정의 시간을 지나게 될 하루미에게 크게 마음을 쓰게 되는 것이다. 특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그리워하는 하루미의 모습에.
 
 제 22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해변의 금붕어> 스틸컷

제 22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해변의 금붕어> 스틸컷 ⓒ 전주국제영화제


05.
영화가 이렇게 펼쳐놓은 이야기들을 갈무리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곁에 두었던 대상 금붕어를 하루미에게도 건네면서 두 사람의 감정적 연결고리를 한번 더 강화하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하루미를 시련 속에 한번 더 빠뜨리며 이에 대한 하나의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방법이 함께 활용되고 있는 부분의 의미는 상호적 강화에 있다. 전자의 것이 하나가 하루미에 대한 감정을 강화시킨다면, 반대로 후자의 방법은 하루미가 하나에 대해 가지는 감정을 강화시키게 한다.

전자의 방식은 위탁 가정의 아이들이 모두 함께 마을 축제에 참여하는 날에 일어난다. 마치 하나가 어린 시절에 금붕어를 받던 날과 같은 상황이 하루미에게도 일어나게 된다. 하루미 역시 금붕어 잡기에 계속 실패하다 주인 아저씨로부터 새끼 금붕어를 한 마리 선물 받게 되는 것이다. 하나는 이 장면 속 하루미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보게 된다. 그리고 다음 날, 하나의 어항 속에는 큰 금붕어 한 마리와 작은 금붕어 한 마리가 함께 머물게 되는데, 이는 하나와 하루미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한편, 아이들의 임시 귀가 날, 하루미도 집에 가겠다며 고집을 부려 엄마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이 후자의 경우다. 임시 귀가 시간이 끝나고 다른 아이들은 모두 위탁 가정으로 돌아오는데, 하루미만 돌아오지 않자 하나는 불안해 진다. 하루미의 상처에 대해 알지 못하는 타키 아저씨는 다시 부모의 품에서 살 수 있으면 좋은 게 아니냐는 태도지만 하나는 그렇지 않다. 아직 무엇이 좋고 나쁘고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하루미가 가정 폭력을 당하면서도 엄마가 좋다는 가련한 마음으로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는 다른 사람들 몰래 위탁 아동들의 자료를 모아 놓은 파일에서 하루미의 집 주소를 알아내 혼자 그 곳을 찾아간다. 역시나 마을 공터에 혼자 내버려진 채로 외롭게 앉아 있는 하루미. 팔에는 전에 없던 상처가 또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06.
하나는 하루미의 손을 잡고 같이 도망을 친다. 자신은 아직 정식 어른도 아니고, 앞으로 하루미의 인생을 책임져 줄 수도 없지만 그래도 여기에 그녀를 혼자 놔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되고, 여기에는 어른들의 사정이 개입된다. 마음씨 좋은 타키 아저씨가 많은 도움을 줬을 테지만, 양육권과 관련된 문제는 그리 쉽게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루미와 분리되어 일단 먼저 위탁 가정으로 돌아오게 된 하나는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길러온 금붕어를 들고 바다로 향한다. 가끔 엄마의 잔상이 멀리 치는 파도 위로 떠오르던 바다. 그리고 지금은 곁에 함께 있을 수 없는 하루미와 언젠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그 바다다. 하나는 금붕어를 바다에 풀어주고는 슬픈 표정으로 바라본다. 어린 시절에 묶여있던 자신을 벗어버리고 이제 진짜 어른으로 나아가기 위한 행위로도 보이는 그녀의 행동에서는 슬프면서도 단단한 기분이 느껴진다.

멀리 모래사장으로부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잘 다녀 왔습니다!"

하루미의 목소리다.
영화 전주국제영화제 해변의금붕어 하나다루나 오가와미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