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인디극장 X 오렌지필름 기획전 : Time travel 포스터

네이버 인디극장 X 오렌지필름 기획전 : Time travel 포스터 ⓒ 네이버 인디극장


'네이버 인디극장 X 오렌지필름 기획전 : Time travel'은 오프라인에서 관객을 만나온 오렌지필름의 시간과 온라인에서 지속적으로 관객을 만나온 네이버 인디극장의 시간을 교차하며, 영화가 가진 '시간'을 찾고자 기획되었습니다.

관객들이 직접 선택한 작품들을 포함한 5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작품들을 3월에서 8월까지 총 5회차에 걸쳐 순차적으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모든 작품은 네이버 인디극장(https://tv.naver.com/indiecinema)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가까이> 스틸컷

영화 <가까이> 스틸컷 ⓒ 네이버 인디극장


01. <가까이>, 배경헌 감독

주원(이주영 분)은 시각장애인 경민(최유송 분)의 활동보조인이다. 정해진 시간 동안 그녀를 따라다니며 생활을 돕는다. 경민이 수영을 하는 동안은 레인의 끝이 어디인지 알려주기 위해 물 밖에 서서 테니스 공이 달리 막대로 머리를 쳐주는 식이다. 어두운 길을 함께 걸으며 길 위의 위험한 상황을 대신 알려주기도 하고, 뜨거운 물을 대신 부어 주기도 한다. 그러니까 주원은 어디까지나 보조하는 사람인 셈이다. 경민이 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 일들이 조금 더 편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 싹싹한 편은 아니지만 누군가를 돕는 마음을 가진 주원이 경민은 마음에 드는 눈치다.

사실 주원이 누군가의 활동보조인을 자처하고 있는 건 경민이 생각하는 것만큼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순수하게 세상을 들여다 보기엔 지금 주원이 놓여있는 삶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남자친구 민규(김판겸 분)는 밤이 지나도록 끝이 나지 않는 아르바이트로 빚을 갚고 있고, 그녀에게도 그 빚을 대신해 갚을 만한 능력은 없다. 현실의 무게로 인해 현실 속의 또 다른 감정인 사랑이 짓눌리고 비켜서게 되는 상황. 주원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다. 사랑이 비켜난 자리에 피기 시작하는 외로움에 잡아 먹히지 않도록 민규와 자신 두 사람 모두를 구해내고 싶다.

배경헌 감독의 영화 <가까이>는 결핍을 가진 두 사람 주원과 경민의 세상을 연결시키며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 대해 환기하는 작품이다. 경민이 안고 있는 시각 장애가 영화의 주요 모티브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영화는 두 사람이 가진 각각의 결핍이다. 경민의 시각 장애와 주원의 심리적 불안은 반대지점에서 서로의 결핍이자 어루만질 수 있는 대상으로 존재한다. 다만, 영화의 처음에서부터 (그것이 행위에 어떤 마음이 존재했는지는 차치하고서) 경민의 장애를 돕는 주원과 달리 경민은 주원의 결핍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측면의 불균형이 이 영화의 불안으로 치환되는 것이다.

그 영화의 불안은 주원이 심리적 불안이 뒤틀린 행동으로 형상화 되며 직접적인 문제가 된다. 주원의 건강한 시력이 경민의 결핍을 채우고 있는 것과 달리 경민의 안정적인 (그렇게 보이는) 현실, 재정적인 상황이 주원의 결핍은 채우지 못했으니 말이다. 주원은 실제로 그렇지 않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불균형이 자신에게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끼고 부정한 방법으로 그 균형을 찾고자 한다. 결국 주원의 그런 속내를 알아채게 된 경민은 그녀와의 관계를 포기하게 되는데, 이 지점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의미적 결핍'을 잠깐 동안 경험하게 된다. 눈 앞의 이익을 위해 눈이 멀어버리게 된 주원과 의지하던 이에게 배신당한 경민의 심리적 불안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두 사람의 화해는 그래서 감동적이다. 안마사인 경민의 손을 통해 전달되는 용서의 마음은 어둡게 그을려 있던 주원의 눈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영화의 처음과 반대로, 이제는 경민이 주원의 활동보조인이 된 셈이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사람 인(人)자는 두 사람이 서로 기대어 있는 모습을 따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마지막 두 사람의 모습처럼, 경민의 손은 주원의 마음을 오랫동안 어루만질 것이고, 눈물로 정화된 주원의 두 눈은 경민의 생활을 다시 돌볼 것이다.

'그건 마치 너무 짧은 담요 같은 것이다. 발을 덮으려고 하면 머리가 드러나고, 머리를 덮으면 발이 삐져 나오고.'

영화의 처음에서 주원이 경민에게 읽어주던 책의 내용이다. 혼자서는 짧은 담요였지만, 두 사람의 담요를 이어 붙이고 나면 발도 머리도 춥지 않게 될 테다.
 
 영화 <밤 사이> 스틸컷

영화 <밤 사이> 스틸컷 ⓒ 네이버 인디극장


02. <밤 사이>, 류연수 감독

은서(김성령 분)는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 대신 낮에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독서실에 들러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학교에 일찍 들어가고 싶어서 검정고시는 이미 끝낸 상태다. 그러다 보니 또래를 만날 기회는 자연히 줄었다. 아니, 일부러 그런 환경을 만들었다는 게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은서는 일부러 집에서 멀리 있는 독서실을 다니고,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는 누구와도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독서실 옆자리에서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지원(이주영 분)을 만나게 된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영화 <밤 사이>는 독서실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두 사람, 은서와 지원의 관계를 통해 관계를 맺는 법을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시절의 모습과 하나의 설익은 관계가 맺고 떨어지는 동안의 과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감독의 의도는 영화의 타이틀을 통해 조금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데, '밤 사이'라고 명명되어 있는 것과 달리 영문으로는 'Between Us'라고 표기되어 있는 점이 바로 그렇다. 굳이 하자면, '우리 사이'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영문 타이틀은, 국문 타이틀과 함께 '사이'를 공유함과 동시에 우리와 밤의 의미를 달리 가져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영화 속 인물인 은서와 지원을 의미하며, '밤'은 극의 주요 사건이 발생하는 배경이 된다는 점에서 조금은 다른 두 표기가 영화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얼굴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관계였던 두 사람은 독서실에서 함께 공부하며 관계의 두께를 키워나간다. 처음부터 가까워질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원이 자신을 처음 알아본 다음 날, 은서는 바로 독서실 총무에게 달려가 남은 날이 얼만지, 환불이 가능한지를 물어본다. 학교에서도 자신을 만났다고 말하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하는데, 아무래도 은서는 자신이 보통의 다른 친구들과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사실에 대해 어떤 낮은 마음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자신이 쌓아둔 벽에도 불구하고 은서가 지원을 자신의 삶 속에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은 아무래도 스스럼 없던 지원의 모습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은서가 허락한 사람은 지원 하나라는 사실이다.

지원도 마냥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한 사람은 아니다. 걸핏하면 자신에 대한 주변의 시선을 오해하기 (주로 나쁜 방향으로) 일쑤고,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에서 허용하지 않는 것들과 규칙에서 벗어난 일들에 대해서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런 지점의 성향들이 어쩌면, 처음에 은서의 벽을 허무는 데는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데는 실패하게 되지만 말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은서와 지원이 관계를 시작하게 된 지점의 제약과 한계는 두 사람이 다시 멀어지게 되는 계기가 된다.

어떤 사건으로 두 사람이 다투게 되고 난 후에, 지원은 독서실의 남은 기간을 은서에게 양도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버린다. 총무로부터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은서는 지원의 집 앞에서 기다리면서까지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하지만, 이제는 지원이 세워버린 벽 앞에서 그 마음이 접히고 만다. 먼저 다가갈 용기는 있었지만 제대로 머무르는 법을 알지 못했던 지원과 곁을 내어 주기는 했지만 평평한 마음을 내어주지는 못했던 은서. 두 사람은 이제 다시 멀어지고 말았지만, 다시 혼자가 된 은서는 지원이 남긴 독서실의 남은 기간을 양도받으며 그 마음을 품어 보기로 한다.
 
 영화 <주근깨> 스틸컷

영화 <주근깨> 스틸컷 ⓒ 네이버 인디극장


03. <주근깨>, 김지희 감독

영신(권영은 분)과 주희(정수빈 분)는 다이어트 캠프에서 만난 사이다. 캠프에서 두 사람은 룸메이트로 만나 친구가 되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꽤 여유로워 보이는 영신과 달리 주희는 목숨이라도 건 것처럼 다이어트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 실제로 주희는 엄청난 체중 감량에 성공했다. 그래도 영신은 개의치 않는다. 그녀에게 있어 유일한 목표는 하루라도 빨리 이 캠프를 탈출해 맛있는 음식을 원없이 먹는 것이며, 그 욕구를 참을 수 없을 때가 되면 조교 선생님들이 관리하는 냉장고를 털기도 한다. 오히려 살을 더 빼고 싶어하는 것은 주희다. 2kg만 더 감량하면 캠프 비용을 전액 환불 받을 수 있기에 그 목표를 반드시 달성하고자 한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라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굳이 찾자면, 다이어트 캠프에 입소하고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영신의 모습 정도랄까. 사실 그것도 큰 문제는 아니다. 현실에서 단단하지 못한 의지의 결과를 목격하는 경우가 그리 드문 일도 아니니 말이다. 꼭 다이어트를 성공해야 하는 이유도 잘 모르겠고. 그래서 영화는 이 귀엽고 평온한 이야기 속에 두 개의 큰 돌을 집어 던진다. 하나는 어느 날 밤에 일어난 갑작스런 입맞춤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다이어트에 성공한 주희가 다이어트 캠프 내에 일으키고 만 파장이다.

먼저, 영신과 주희의 입맞춤은 영신이 식욕을 이기지 못하고 냉장고를 털던 날에 일어났다. 두 사람은 함께 술을 나눠 마셨고, 시작은 주희 쪽이 먼저였다. 사랑인지 우정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어쩌면 동경일지도 모르는 혼란스러운 감정은 뜨거운 불꽃이 되어 영신의 마음으로 옮겨 붙는다. 이 짧은 순간은 캠프의 본 목적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던 영신에게 어떤 계기를 만들어 준다. '있잖아 주희야. 엄마가 나를 여기에 가둬줘서 정말 다행인 것 같아.'

하지만, 세상은 영신의 마음이 잔잔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운동을 위해 다같이 산을 오르던 날, 주희와 주희에게 관심을 보이던 조교 하나가 숲 속에서 은밀한 행위를 나누는 것을 영신이 목격하게 된다. 연못에 그려진 두 파장, 그 교집합의 공간에 홀로 던져진 영신은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혼란 속으로 빠져든다. 자신은 해내지 못한 다이어트를 멋지게 성공해내던 그녀.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던 자신에게 (자신의 주근깨를 보며) 예쁘다고 먼저 말해주던 그녀. 제약으로 가득한 캠프 안에서 의지가 되어주던 그녀가 바로 주희였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극에 등장하는 모든 소재의 중심에는 영신이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성장의 내러티브에서도, 우정과 사랑의 내러티브에서도, 갈등과 회복의 내러티브 속에서도 모두 말이다. 다만, 영화의 종반부에서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며 스텝 업 하기 전까지는 오롯이 피동적인 상태로 존재한다. 다이어트를 원한 것도 자신이 아니라 부모였고, 사랑의 갈등에 휘말리게 된 것도 주희의 행위에 의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여기에서 '달리지 않던 사람이 스스로 달리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던 김지희 감독의 의도가 숨을 쉬기 시작한다.

이후에 이어지는, 주희와 사랑을 나눴던 조교가 캠프에서 쫓겨나게 되면서 두 사람의 밀회가 발각되는 일이나 그로 인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까 초조해 하는 주희의 모습과 같은 장면들은 모두 영신을 깨우기 위한 재료에 불과하다. 이야기의 끝자락에 이르러 일련의 모든 사건을 자신이 짊어지고 자발적으로 캠프를 떠나오는 영신의 모습. 그 모습이야말로 이 영화가 진정으로 닿고자 했던 장면이다.

영신이 처음으로 환하게 웃는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얕은 감정이나 욕망에 휘둘리며 타인의 결정에 끌려 다니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내딛는 이 걸음을 아주 오랫동안 기억하면서 말이다.
영화 네이버인디극장 오렌지필름 독립영화 기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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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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