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BTS가 빌보드 핫100차트에서 < Butter >와 < Permission to Dance >가 1위 자리를 바톤터치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가수'를 BTS로 꼽는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해외 실적을 포함시키지 않고 오직 국내 가요계로만 범위를 좁히면 1980년부터 1986년까지 7년 동안 무려 6번이나 가수왕(MBC <10대 가수 가요제> 기준)을 독식한 '가왕' 조용필을 역대 최고의 가수로 분류하는 의견도 존재한다.

대한민국 가요계에 BTS와 조용필이 있다면 할리우드에는 바로 이 인물이 있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창립자이자 애니메이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고 월트 디즈니다. 월트 디즈니는 아카데미 시상식 경쟁 부분에서만 총59번 후보에 올라 무려 29개의 트로피를 차지했다. 디즈니의 뒤를 잇고 있는 세드릭 기븐스(미술감독, 11개)와 알프레드 뉴먼(음악감독, 9개) 등도 이미 고인이 됐기 때문에 월트 디즈니의 기록은 '불멸'로 남을 확률이 매우 높다. 

하지만 '기준을 아카데미 영화제 수상횟수가 아닌 '흥행기록'으로 바꿔 보면 1954년생 노장 감독의 이름이 떠오른다. 전세계 역대 흥행 1위 <아바타>와 3위 <타이타닉>을 연출한 거장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다. 그리고 카메론 감독이 본격적으로 명성을 얻은 <터미네이터2>와 세계적인 거장이 된 <타이타닉> 사이에는 가볍게(?) 만든 영화 한 편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아놀드 슈왈제네거 주연의 코믹액션 블록버스터 <트루 라이즈>였다.
 
 <트루 라이즈>는 서울에서만 87만 관객을 동원하며 국내에서도 큰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트루 라이즈>는 서울에서만 87만 관객을 동원하며 국내에서도 큰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 유니버셜 픽쳐스

 
대작과 대작 사이에 만든 쉬어가는(?) 대작

스티븐 스필버그나 리들 리 스콧처럼 커리어 내내 많은 영화를 연출하며 열정을 불태우는 감독도 있지만 소수정예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도 적지 않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 역시 30년이 넘는 긴 감독 경력 치고는 그리 많은 영화를 만들진 않았다(극장 개봉 장편영화 8편). 1984년 제작비 640만불의 저예산(?) SF 영화 <터미네이터>로 주목 받은 카메론 감독은 1986년 <에일리언2>로 새턴어워즈 각본상과 감독상, 최우수 SF영화상을 휩쓸었다.

흔히 속편은 전편을 능가하기 어렵다는 고정관념이 있지만 카메론 감독은 리들 리 스콧 감독이 만든 <에일리언>을 큰 스케일과 화려한 볼거리로 무장한 액션 블록버스터로 재탄생시켰다. 그리고 1991년, 카메론 감독은 할리우드 영화 최초로 제작비 1억불 시대를 열며 <터미네이터>의 속편을 선보였다. 전편을 제대로 뛰어넘은 <터미네이터2>는 세계적으로 5억19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올리며 크게 히트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터미네이터2>의 성공 이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웅장한 드라마를 구상하던 카메론 감독은 <타이타닉>으로 가는 길목에서 가벼운 액션 영화 한 편을 만들었다.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3번째로 함께 작업한 <트루 라이즈>였다. 진지하고 무거웠던 전작들과 달리 가볍고 유쾌한 코믹 첩보액션 <트루 라이즈>는 세계적으로 3억78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올렸고 국내에서도 서울에서만 8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카메론 감독은 1997년 <타이타닉>을 통해 아카데미 영화제 감독상과 작품상을 휩쓸며 '세계의 왕'으로 등극했다. 그저 블록버스터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에서 할리우드의 진정한 거장으로 인정 받는 순간이었다. 물론 <타이타닉>을 기점으로 선보이는 작품수가 급격히 줄었지만 2000년에는 TV시리즈 <다크엔젤>의 기획과 각본에 참여했고 2005년에는 심해 다큐멘터리 <에이리언 오브 더 딥>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9년, 좀처럼 깨지기 힘들 거라던 <타이타닉>의 흥행 기록이 카메론 감독에 의해 깨졌다. 카메론 감독이 연출한 <아바타>가 세계적으로 28억3300만 달러라는 믿기 힘든 흥행 성적을 올린 것이다(재개봉 성적 포함). 비록 북미기록은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에게 물려 줬지만 세계 흥행 기록은 여전히 <아바타>가 굳건히 지키고 있다. 코로나19 등으로 개봉시기가 몇 차례 미뤄졌던 <아바타: 물의 길>은 오는 12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핵 테러 단체의 음모를 막은 위대한 부부
 
 90년대 초,중반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세계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던 최고의 슈퍼스타였다.

90년대 초,중반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세계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던 최고의 슈퍼스타였다. ⓒ 유니버셜 픽쳐스

 
배트맨의 '부캐'는 웨인 엔터프라이즈의 회장인 바람둥이 억만장자 브루스 웨인이다. 슈퍼맨은 어리바리한 기자 클락 켄트로 활동한다. 스파이더맨은 공부와 미래, 연애에 대해 고민이 많은 10대 소년 피터 파커다. 그리고 미국 최고비밀기관 오메가 섹터의 스패셜 요원 해리 테스커(아놀드 슈왈제네거 분)는 컴퓨터 회사의 판매과 대리 코스프레를 한다. 물론 이 같은 사실은 아주 가까운 측근 일부를 제외하면 아무도 알지 못한다. 심지어 가족들조차.

<트루 라이즈>는 미 첩보기관의 비밀요원 해리와 그의 부인 헬렌(제이미 리 커티스 분)이 우여 곡절 끝에 이슬람 핵 테러 단체의 음모를 막는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트루 라이즈>는 프랑스 영화 <라 토탈>을 리메이크한 작품인데 원작에 등장하는 프랑스 갱조직을 이슬람 핵 테러 단체로 각색했다. 당연히 영화에 등장하는 아랍인들은 대부분 잔인한 악당들로 묘사됐고 이 때문에 아랍권 국가들에선 상영이 금지됐을 정도로 반발이 심했다.

하지만 그저 오락영화로만 즐긴다면 <트루 라이즈>는 2시간 20분이라는 짧지 않은 상영 시간이 결코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유쾌하고 즐거운 작품이다. 특히 초반부 오토바이를 탄 아지즈(아트 말릭 분)와 말을 탄 해리가 벌이는 도심 추격신은 상당히 볼 만 하다. 해리는 말을 타고 호텔 옥상까지 아지즈를 잘 쫓아 가지만 옥상에서 점프를 하지 않은 말 때문에 낙상 사고 위험에 처한다(말이 목숨을 구해줬는데도 해리는 말을 원망한다).

부인 헬렌이 '도리스'라는 암호명을 받고 엉뚱한 임무를 수행하는 중반부 장면 역시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특히 매춘부로 위장해 목소리를 변조한 남편 해리 앞에서 섹시댄스를 추는 장면은 <트루 라이즈>의 최고 명장면(?) 중 하나다. 처음엔 쑥스러워 하던 헬렌이 점점 자신의 춤에 심취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하지만 해리와 헬렌은 아지즈 일당에게 잡혀가고 그 과정에서 해리의 정체가 헬렌에게 탄로나고 만다.

카메론 감독이 만든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답게 <트루 라이즈>에도 후반부에 화려한 볼거리들이 집중돼 있다. 특히 철거 예정이던 다리에 진짜 미사일을 쏴서 촬영한 해상다리 폭파신은 당시 국내 해외토픽에 소개될 정도로 크게 화제가 됐다. 테러단체의 우두머리를 미사일과 함께 날려 버리는 장면도 대단히 통쾌하다. 그리고 뒤늦게 적성을 찾은 해리와 헬렌은 1년 후 부부스파이가 된다.

제임스 카메론의 페르소나(?) 빌 팩스턴
 
 고 빌 팩스톤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연출한 8편의 장편영화 중 4편에 출연했다.

고 빌 팩스톤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연출한 8편의 장편영화 중 4편에 출연했다. ⓒ 유니버셜 픽쳐스


70년대 후반부터 <할로윈> 등 여러 공포 영화들에 단골로 출연하던 제이미 리 커티스는 사실 줄리아 로버츠나 데미 무어 등 90년대 잘 나가던 할리우드의 여배우들에 비하면 그렇게 대단한 스타는 아니었다. 실제로 카메론 감독도 헬렌 역으로 당대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이었던 조디 포스터를 캐스팅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조디 포스터가 먼저 계약한 영화 <넬> 때문에 <트루 라이즈> 출연을 고사하면서 헬렌 역이 커티스에게 돌아갔다. 

커티스는 1989년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를 통해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트루 라이즈>를 통해 골든 글로브와 새턴 어워즈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전성기를 달렸다. <트루 라이즈>에서는 기관총을 계단으로 떨어트려 본의 아니게 테러단체를 전멸시키는 대활약을 펼친다. 그리고 음성변조된 취조실에서는 해리 앞에서 죽을 때까지 남편을 사랑할 거라는 애틋한 고백을 하기도 했다. 

<트루 라이즈>에서 코미디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캐릭터는 톰 아놀드가 연기한 알버트 깁슨이었다. 해리의 오랜 동료로 주로 차에서 대기하며 전면에 나서는 해리를 서포트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트루 라이즈>의  개그 장면 중 상당 부분은 알버트가 독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 톰 아놀드는 <트루 라이즈> 이후 주로 코믹이나 호러 등 많은 제작비가 들어가지 않은 B급 영화 위주로 활동했다.

본인을 스파이라 자청하며 헬렌을 유혹하려 했던 바람둥이 중고차 판매원 사이몬도 <트루 라이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감초 연기로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지난 2017년 심장수술 합병증으로 사망한 고 빌 팩스턴은 <터미네이터>를 시작으로 <에일리언2> <트루 라이즈> <타이타닉>까지 카메론 감독과 4편의 영화를 함께 했다. 카메론 감독의 극장 개봉작이 8편임을 고려하면 팩스턴은 카메론 감독 커리어의 절반을 함께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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