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천만이구나. 보는 순간 직감했다. <범죄도시4> 얘기다.
 
2022년 1200만 관객을 모은 2편과 지난해 1000만 관객을 넘긴 3편에 이어 4편이 또 한 번 역사를 쓰게 되리란 걸 보는 도중에 직감하였다. 그만큼 잘 빠진 영화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는 뜻이다.
 
아는 맛이 무섭다는 말을 이보다 잘 보여주는 작품이 또 있을까. 극명하게 대립하는 선악구도, 마동석이란 특별한 배우, 권선징악의 결말까지가 <범죄도시> 시리즈 불변의 원투쓰리 펀치다. 어느 모로 뜯어봐도 뻔한 이야기임을 부인할 수 있지만 소위 먹히는 액션에 먹어주는 코미디를 적절히 배합하여 호감형 배우가 시종일관 밀어붙이는 통쾌한 액션영화는 지난 모든 시리즈의 성취를 통하여 제가 지닌 힘을 증명해냈다.
 
물론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어서 3편은 다소 존재감이 약한 악역과 적잖이 소진된 캐릭터가 아쉬움을 남긴 게 사실이다. 혹자는 빠르게 변하는 관객의 입맛을 놓치는 순간 전성기를 구가하는 이 시리즈 또한 단박에 추락할 수 있으리라 경고하였던 일이다.
 
범죄도시4 포스터

▲ 범죄도시4 포스터 ⓒ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전편의 아쉬움을 착실히 극복하다
 
그러나 4편은 달랐다. 전형성을 차용하면서도 수많은 고민의 지점이 엿보이는 설정들을 통하여 관객이 질려 달아나지 않게끔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였다. 온라인 도박사이트와 실업청년의 구직미끼 감금노동, 부적격 가상화폐의 상장을 통한 코인사기 등 현실에 기반을 둔 범죄행위를 소재로 삼은 점부터가 그러했다. 또 실제 성공한 수사에서 착안한 전개와 결말, 전보다 한층 색깔이 선명해진 악역 캐릭터까지 안주하지 않는 자세로 디테일을 다듬어낸 결과가 이번 4편에 녹아있다.
 
주인공은 이번에도 서울 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석도 형사(마동석 분)다. 마약사건을 수사하던 그는 마약거래에 쓰이는 배달앱 개발자가 수배 도중 필리핀에서 살해당했음을 알게 된다. 필리핀에 거점을 둔 온라인 불법도박 사이트와 개발자의 죽음 사이에 연관이 있음을 확인한 마석도는 모든 일의 배후에 있는 자들을 잡기 위하여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한다.
 
이번 편의 악당은 백창기(김무열 분)다. 피도 눈물도 없는 전직 특수부대원이자 용병 출신으로, 필리핀에서 도박장 운영을 맡아 하는 현장 총책이다. 도박장과 서버를 필리핀에 두고 한국인 등을 상대로 온라인 도박을 벌이는 건 대단히 돈이 되는 일이지만, 백창기가 운영하는 업체 말고는 다른 이들이 감히 사업을 넘보지 못한다. 이유는 단 하나, 백창기가 경쟁자를 남겨두지 않기 때문이다.
 
승부수는 역시 통쾌함
 
범죄도시4 스틸컷

▲ 범죄도시4 스틸컷 ⓒ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필리핀에 도박장을 둔 이들의 소재가 파악되면 백창기는 부하들을 이끌고 날아가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을 완전히 아작을 내놓는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누구도 감히 필리핀에서 도박장을 열 엄두를 내지 못하고, 백창기는 제가 낸 사이트들끼리만 경쟁시키며 사실상의 독점영업을 진행한다.
 
백창기가 현장을 맡고 있다면, 범죄를 설계하고 돈을 굴리는 건 IT업계 스타 CEO라는 장동철(이동휘 분)이다. 도박으로 끌어 모은 자본력을 바탕으로 코인을 상장해 더 크게 한탕 해먹겠단 장동철의 계산은 백창기와의 사이에 갈등을 일으킨다. 영화는 범죄조직의 꼬리를 잡으려 분투하는 마석도의 활약과 장동철, 백창기 간에 벌어지는 반목을 주요한 줄기로 삼아 경쾌하게 전진한다.
 
영화의 가장 큰 힘은 역시 통쾌함이다. 수많은 범죄들이 범람하는 현실세계, 어쩌다 범인을 검거해도 국민감정에 비해 턱없이 낮은 형량에 답답했던 일이 얼마나 많은가. 범죄수익을 은닉하고 전관 변호사를 써가면서 피해자를 우롱하는 범죄자들을 우리는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나왔던 것이다.
 
존재감 있는 악당, 통쾌함을 더한다
 
범죄도시4 스틸컷

▲ 범죄도시4 스틸컷 ⓒ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그러나 마석도 앞에서 범죄조직은 일망타진된다. 그것도 무시무시한 괴력에 던져지고 얻어맞으면서 말이다. 이 영화에 대하여 절차며 시스템이 아닌 폭력으로써 범죄를 제압한다는 쉬운 비판은 현실 속 법정에 나가 수많은 사건들을 접해본 이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현실에서 영화 속 악질적 악당 같은 이들이 얼마나 당당한지를, 피해자는 얼마나 절망적인지를, 수사기관은 또 얼마나 안이한지를 경험한 일이 있다면 영화 속 마석도의 통쾌한 전진이 쉬운 위로보다 훨씬 나은 카타르시스를 안긴다는 데 동의할 밖에 없을 테다.
 
시리즈 자문을 맡은 유명 프로파일러 권일용씨의 카메오 등장도 인상적이다. 그는 마동석이 속한 서울경찰청 청장으로 등장하여 수사에 힘을 실어준다. 직속 간부가 중단하라 지시한 수사, 회의실까지 들이닥친 마석도의 열의에 청장은 사건을 진행할 것을 허락한다. 그러며 붙이는 말은 오늘의 경찰 앞에 꽤나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언제나 한 발 앞서 뻗쳐나가는 범죄들을 그러나 어떤 경찰은 온 힘을 다해 뒤쫓고 있는 것이다. 아직 그런 경찰이 아주 조금쯤은 남아 있는 것이다.
 
우려를 모았던 허명행의 연출은 합격이라 해도 좋겠다. 온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내야 했던 <황야>에서 참담한 졸작을 찍어냈던 그였으나 탄탄한 구성을 가진 <범죄도시4>에선 장점이 두드러질 수 있었다고 판단한다. 특히 액션 만큼은 1편 이후 7살이나 더 먹은 50대 배우를 주연으로 하고 있단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강렬하다. 또 칼을 주무기로 한 백창기의 액션은 이 영화의 승부수라 할 만한데, 짝을 찾기 어려울 만큼 강한 마석도를 상대로도 충분한 존재감이 있는 액션을 펼쳐낸 점이 인상적이다.
 
함부로 묘사한 필리핀 현실... 고민 필요해
 
범죄도시4 스틸컷

▲ 범죄도시4 스틸컷 ⓒ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다만 다소 마음에 걸리는 지점도 없지 않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비롯하여 동남아나 남미 등 후진국을 배경으로 한 한국 액션영화들이 흔히 범해온 실수를 이 영화도 범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일부 있었던 것이다. 다름 아닌 해당 국가의 경찰력과 부족한 치안을 부각하는 설정을 쉽게 쓰는 것인데, 이번 작품에서도 현지 경찰이 무력하게 한국인 악당에게 당하는 모습을 그려낸 장면 등이 포함돼 현지에서 좋지 않은 반응을 일으킬 수 있어 보인다.
 
특히 해외 영화에서 한국이 그려지는 장면에 무척 민감하게 반응해왔던 한국인지라 역지사지의 자세로 설정이며 연출을 고민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그것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K콘텐츠의 대장격 작품으로써 가져야 할 책임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여러모로 <범죄도시4>는 한국 액션의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작품이 되었다. 얼핏 흔한 시리즈물로 안주할 수 있는 작품임에도 전편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설정을 다듬어 다수 대중에게 호소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어낸 점이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또한 이 영화가 선보인 강렬한 액션은 이 부분에서 가장 앞서 있는 작품에 비하여도 나름의 특색을 발휘하고 있어 인상적이라 할 수 있겠다. 이번 영화의 경험은 다음 작품에서 자산이 되는 것이어서 열악하다 평가돼온 한국 액션영화에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고 판단한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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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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