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28 20:18최종 업데이트 23.11.2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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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을 들고 있는 노인의 손 ⓒ unsplash


판소리 공연 중 내 앞자리에서 핸드폰 벨이 울렸다. 관람 매너를 어긴 사람에게 짜증이 났지만 당황하는 핸드폰 주인의 뒤태를 보니 노인이었다. 그런데 벨 소리가 멈추지를 않으니 주변 사람들이 소요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연주자는 판소리 가락에 섞어 "벨 소리까지 반겨주네" 하며 관객의 동요를 잠재웠다. 명창의 기지가 소란을 잠재운 순간이었다.  

노인의 뒷자리에 앉아있던 나는 노인이 핸드폰 벨 소리를 끄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노인은 당황한 나머지 검지로 엉뚱한 화면만 터치하고 있었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질 때, 옆에 앉은 사람이 핸드폰을 낚아채어 벨 소리를 꺼버렸다. 노인은 허둥대던 자신이 민망하고 민폐를 끼침에 어찌할 바를 몰랐는지, 어둠을 뚫고 공연장을 나가버렸다.

노인이 살기 어려운 사회
 

2022년 10월 17일, 서울 종로구 롯데리아 동묘역점에서 열린 디지털 약자 어르신 키오스크 교육에 참여한 서울재가노인복지협회 소속 어르신들이 키오스크로 음식을 주문하는 과정을 체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버튼을 꾹꾹 눌러 감도를 확인하던 아날로그 핸드폰에 익숙하던 노인에게 터치스크린 기기는 익숙하지 않았을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비대면 무인기인 키오스크가 급속도로 증가하자, 노인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노인들이 가장 많이 가는 종합병원도 키오스크를 활용해 신청과 결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높낮이 조정도 어렵고, 시각 청각장애가 있을 경우 점자나 화면 음성 안내도 미미하다. 키오스크 앞에서 선택 반응 시간이 길어지니 이용 역량이나 인지적 차이에 따라 두려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서울디지털재단 연구에 따르면 서울시에 거주하는 만 55세 이상 인구 중 약 45.8%만이 키오스크 사용 경험이 있었으며, 75세 이상의 사용 경험은 13.8%밖에 되지 않았다. 또한, 75세 이상 고령층이 키오스크 사용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사용 방법을 모르거나 어려워서'가 (33.8%)로 가장 많았고, '뒷사람 눈치가 보여서'(17.8%), '새로운 것을 배우는데 거부감(12.3%)'으로 나타났다.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은 이미 세계 각지 국가의 중요한 정책 난제가 되고 있다. 한국도 2022년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900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인구의 17.5%를 차지한다. 2025년까지 노인인구 비율 20.6%로 우리나라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이다(통계청, 2022). 지방의 고령화는 더욱 급속한데, 경남 남해군의 경우 노인 인구 비율은 39.3%에 이른다.   

이렇다 보니, 고령화친화도시라는 말이 나왔다. WHO(세계보건기구)에 의하면, 고령화친화도시란 고령화된 사회에서 구성원 모두가 살기 좋은 물리적 환경을 제공하여, 고령자만이 아닌 고령자를 포함한 사회약자와 더불어 구성원 모두의 삶의 질이 향상된 사회를 말한다. 고령자 수가 증가했다는 것은 신체적, 인지적, 기능적 장애를 안고 있는 사람이 증가하였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노인들의 교통사고가 증가하는 곳은 경로당이나 노인복지시설 주변의 노인보호구역이다. 노인보호구역은 어린이보호구역과 마찬가지로 차량속도를 제한하고 주정차를 금지하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이를 준수하는 운전자는 많지 않다. 오히려 노인보호구역의 보행이 안전할 것이라 믿고 더 많은 노인 보행자가 유인된다. 노인은 느린 보행 속도와 변화하는 상황에 신체 반응 속도가 떨어진다. 노화는 시각과 청각 장애를 동반하다 보니, 고령자들의 입장에서 교통사고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유니버설 디자인의 필요성
 

유니버설디자인을 적용한 저상버스. 교통약자인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사람, 어린이 등 일상생활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 뿐만 아니라, 누구나 타고 내리는데 편리한 교통편의를 제공한다. ⓒ 최수경

 
이러한 사회현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언급되고 있는 것이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무장애 디자인(Barrier Free Design)' 개념으로 시작되어,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어린이, 여성, 고령자, 장애인 등을 위한 디자인으로 관심을 받았다.

예를 들어 노인이나 장애인, 사고로 인한 일시적 곤란자를 위해 '특별한 척도로 대처'하게 된다면, '약자 배려'의 측면이 강조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유니버설의 개념은 고령이나 어린이, 장애와 같은 개인의 사정의 문제가 아닌 '모든 사람'이 대상이다.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는 2005년 'Accessible Tourism For All (모두를 위해 접근이 가능한 관광)'을 선언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동하여 여행할 수 있는 무장애관광(barrier-free tour)이 가능하도록 제안한 것이다. 그 의미는 장애, 비장애인이라는 이분법적 관점의 관광이 아니라, 관광을 즐기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자로 선정하고 노약자, 어린이, 아이를 동반한 가족, 장애인, 비장애인을 모두 포함된 것을 의미한다.

부모님에게 등산은 어느새 옛이야기가 되었다. 연로해지시니, 언덕을 오르는 것도 힘들어 천천히 걷기로 일관하신다. 따라서 걷기에 적당한 국립공원이나 자연휴양림의 무장애탐방로를 찾아다닌다. 그러나 무장애탐방로라 하더라도 데크 바닥이 미끄럽고, 돌 턱이 두드러지거나, 계단이 적지 않게 있는 경우가 많다. 엄밀하게 무장애탐방로가 아닌 것이다.  

이동권 확보라는 관점에서 교통약자인 고령자의 경우,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을 최고의 목적으로 여겨 왔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를 넘어 보행 자체가 직접적인 목표가 되었다. 국내 대다수의 관광지가 탐방로나 산책로, 둘레길 등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것은 여가보행 측면이 강조되는 사회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태안국립공원 탐방로의 해변길안전쉼터. 보행자체가 목적이 보다는 여가 보행의 측면을 고려하여 탐방로의 조성 및 설비에 유니버설디자인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 최수경

  
국립공원의 경우, 모든 국민들이 국립공원 탐방을 통해 건강을 증진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교통약자에 대해 배려하고 있다. 탐방로 등급제를 두어 탐방로가 자신에게 적절한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탐방로의 등급 기준은 거리, 경사도, 노면 상태, 요구되는 경험, 계단 유무, 걸리는 시간 등이다. 이를 통해, 자신의 건강 수준과 바퀴가 있는 이동 수단의 접근 가능성 등을 알게 되어 안심하고 걸을 수 있다.  

지자체 역시 유니버설 디자인의 조례를 통해, 공공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적용시키고 있다. 저상버스나 버스 손잡이 높낮이가 다른 것, 인공지능을 탑재한 스피커, AI 케어 서비스를 구현하는 스마트 홈 등 유니버설 디자인의 이념이 담겨있는 예는 다양하다.
  
어느 도시고 굳이 노인들이 주로 모이는 장소가 있다. 내가 사는 대전도 대전역 광장은 노인들의 집합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의자가 사람에 비해 부족하다 보니, 돌 재질이나 천연 석재로 두른 화단 가장자리에 앉아있는 모습을 본다. 노인들이 애용하는 의자의 중요한 구성요소인 등받이와 팔걸이는 고사하고, 노인이 앉을 수 있는 적합한 높이도 아니다. 엉덩이가 닿는 부분은 외부 기온에 차가워지거나 햇볕에 과열되기도 한다.  

노인은 고립감을 피하고 유대감을 키우고자 광장으로 나온다. 신체 기능의 저하와 관절 질환 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휴식 시간은 많이 필요하다. 때문에 더 많은 의자가 필요하다. 노인들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공공의자에 앉아 주변 환경을 보는 것을 선호한다. 사람들을 관찰하고, 공원에서 자연을 즐기거나 주변 환경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우리는 누구나 나이 듦이라는 질병을 향해 가고 있다. 신체적·인지적·기능적 장애로부터 자유로운 고령화를 꿈꿀 뿐이다. 사람들이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는 것은 고령화사회에서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의 이념이 법과 정책, 사회 전반에 확산되도록 두 눈 부릅뜬 감시자가 될 필요가 있다.
 

오대산국립공원 내 무장애탐방로 표기판. 탐방로 등급제는 탐방로의 특징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는 수단으로, 표준화된 탐방로 등급을 제공함으로써 탐방객들은 그 탐방로가 그들에게 적절한 지를 알 수 있다. ⓒ 최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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