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12 07:07최종 업데이트 23.12.12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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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 ⓒ 권우성

 
윤석열 정부의 전 정부 지우기는 비교적 중립지대라고 할 보훈 분야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몇 달간 우리 사회를 시끄럽게 한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이 대표적 사례다. 친일 성향이 두드러진 이 정부는 항일독립운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홍 장군을 이념의 잣대로 깎아내리고 모욕을 줬다. 

지난 7일 필자와 만난 황기철 전 국가보훈처장은 "보훈부가 국민 분열의 도구로 쓰인다"라고 분노했다.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보훈처장을 지낸 그는 2021년 대통령 특사로 카자흐스탄으로 날아가 홍 장군의 유해를 봉환했다. 


그런 까닭에 <오마이뉴스> 편집국 회의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의 첫 화제는 '홍범도'였다. 이어 윤석열 정부의 안보 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9.19 군사합의 파기로 이명박 정부 때보다 더 심각한 북한의 도발이 예상된다"라고 우려했다. 또 전직 해군참모총장답게 대양해군의 중요성과 항공모함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보훈부가 국민 분열의 앞잡이 노릇" 
 

2021년 8월 15일 당시 홍범도 장군 유해봉환 대통령 특사단' 황기철 단장(국가보훈처장) 및 특사단이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공항에서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인수받아 특별 수송기로 모신 뒤 인사하고 있다. ⓒ 국가보훈처 제공

 
- 홍범도 장군 얘기부터 하자. 문재인 정부에서 보훈처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할 말이 많을 듯싶다. 

"보훈부 장관이 정치적 발언을 많이 해서 혼란스럽다. 보훈부는 국가유공자를 예우함으로써 국민 통합을 꾀하고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해 나라가 어려울 때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구실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념을 내세워 정치적 혼란을 일으키다 보니 보훈부 내부 분위기가 매우 좋지 않다. 정치적 덧칠로 이념 논쟁을 유발하고 국민을 분열하는 정쟁화의 앞잡이 노릇을 하니 안타깝다." 

- 육군사관학교가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하기로 했다. 

"홍 장군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이미 끝났다. 1962년 대통령장을, 2021년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당시에는 아무런 문제가 안 됐는데, 지금 와서 이런 논란을 일으키는 건 이념적 정쟁화로밖에 볼 수 없다. 6.25를 기준으로 독립유공자들을 갈라치기 하는 것도 유치하다." 

황 전 처장은 홍 장군 문제를 윤석열 정부의 전 정부 지우기로 규정했다. 

"앞 정부에서 했던 일을 샅샅이 뒤져서 하나씩 X표를 해 나간다. 그걸 통해 실정을 만회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해군에는 '당직을 설 때 30분 이내에는 돛을 바꾸지 않는다'는 관습이 있다. 앞 근무자가 바람이나 조류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돛을 올려놓았을 텐데 그걸 이상하다고 곧바로 바꿔버리면 사고가 난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했는지를 충분히 검토하고 나서 개선점을 찾아야 하는데, 현 정부는 무조건 바꾸려 한다. 보훈부나 국방부 의견이 그렇더라도 대통령이 바로 잡을 수 있다. 그런데 국민 정서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간다는 건 정쟁화의 도구로 활용한다고밖에 볼 수 없다." 

- 육군참모총장은 국정감사장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이 생도들의 대적관을 흐리게 했다"라고 말했다. 

"그게 대적관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현시점에서 우리의 첫 번째 적은 북한이지만, 북한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국익을 훼손하는 세력이나 나라가 있다면 적이 될 수 있다. 중국이나 일본도 우리의 영토나 해상이익을 침해한다면 적이다. 육군총장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런 얘기를 하는데 안타까웠다. 정권 눈치를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홍 장군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은 오로지 조국의 광복을 위해 싸웠을 뿐이다. 그때는 우리가 지금 마주하는 공산국가 북한도 없었다. 상식에 맞지 않는 비뚤어진 역사관으로 그렇게 얘기하면 장병들이 웃는다." 

- 국방부 장관도 그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했다.  

"그게 국방부 장관이 할 이야기인가? 육사의 철거 결정에도 장관 방침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보훈부가 그걸 막아줘야 하는데, 같이 움직이고 있으니..." 

- 국방부 장관은 해군 홍범도함의 이름 변경까지 거론했다. 

"함명은 관계기관과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과 자문을 거쳐 해군총장이 결정한다.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없다." 

- 장관이 그걸 명령할 수 있나? 

"월권이다. 물론 장관이 지시한다면 총장이 검토한다고 답변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홍 장군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전혀 달라지지 않았기에 검토할 이유가 없다." 

-만약 정부 차원에서 해군에 압력을 넣는다면 어떻게 할 건가?

"나부터 행동에 나설 것이다." 

"9.19 파기로 MB 때보다 더한 북 도발 예상"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 ⓒ 권우성

 
화제를 윤석열 정부의 안보관, 안보 정책으로 옮겼다. 

- 윤석열 정부 안보의 가장 큰 문제점은 뭐라 보는가? 

"대한민국 안보의 목표는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고 국민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안보 행보는 국민을 굉장히 불안하게 한다. 한미동맹이야 당연히 잘 유지돼야 하지만, 일본과는 그렇게 쉽게 가까워질 수 없는 정서적 역사적 환경적 요인이 있다. 물론 두 나라가 친해지기를 바라는 미국의 압박도 작용한다. 관리하기 편하니까.

그런데 그것 때문에 북중러가 더 결속하게 됐다. 얼마 전 북한이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데 성공했는데 그 기술도 러시아에서 전수한 것이다. 우리는 그걸 문제 삼아 9.19 군사합의를 깨버렸다. 유엔의 제재 대상이기는 하지만, 그게 9.19 합의와 직접적 관련성이 있는지 면밀히 검토해야 하는데 성급하게 일부 효력 정지를 선언했다. 그러자 북한이 전면 폐기로 대응했다. 9.19 합의는 남북 간 일종의 안전핀이었다. 관련 조항들이 다 맞물려 있기에 뭐는 유지하고 뭐는 중지할 수 없다. 한반도 위기가 극단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 북한의 도발이 예상된다는 건가? 

"분명히 도발할 거다. 오랜 군 생활 경험에 비춰보면, 지금 갈 데까지 간 상황이다. 나는 천안함 사건(2010.3) 몇 년 전에 2함대사령관을 지냈고, 연평도 포격사건(2010.11) 때는 작전사령관이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데 두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남북 간 긴장이 몹시 고조된 상태였다."

그는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이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상황이 우리나라에도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긴장 수위를 높이는 것은 결국 전쟁하자는 거다. 그럼 우리나라 국민이 과연 전쟁을 원하느냐, 전쟁을 할 수 있겠느냐? 그렇지 않다. 우리는 북한과 전쟁해서 얻을 게 없다. 국민 안전도 보장할 수 없지만, 경제면에서도 피해가 엄청나다. 국제적 신인도 추락도 고려해야 한다. 한 번 싸움이 시작되면 멈추기가 쉽지 않다. 평화를 관리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외려 갈등을 부추기고 긴장감을 높인다. 안보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행위다. 우리 정보력이 북한보다 뛰어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이스라엘이 정보력에서 월등히 앞서는 데도 하마스한테 선제공격을 당한 걸 보라. 북한이 어떤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라도 도발할 가능성이 크다. 9.19 합의는 북한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계속 활용해야 하는데 왜 그렇게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이 빚어진다면, 그 강도가 이명박 정부 때보다 높지 않을까 싶다. 

"훨씬 심각할 거다. 그때는 그래도 중국이나 러시아가 북한을 견제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런 중재 장치가 전혀 없다. 부산 엑스포 유치에 실패한 데는 두 나라와의 관계 악화도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일본과도 언제든 영토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 한미일 동맹과 별개로 방심해서는 안 된다. 일본에 극우정권이 들어설 경우 한일관계가 급속도로 냉각할 수 있다."

- 일본은 독일과 달리 반성하지 않는 나라다. 위안부나 강제징용 문제만 봐도 그렇다. 교과서에 버젓이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기재한다. 예전부터 독도를 두고 양국 해군이 충돌하면 한국 해군이 밀릴 거라는 분석이 많았다. 

"미국의 견제가 있으니 그렇게 극단적인 사태가 발생하지는 않을 거다. 다만 일본이 해군력을 급속도로 키우는 것을 주시해야 한다. 일본의 해상자위대에 비해 우리 해군력이 약한 건 사실이다."

- 원인이 뭔가? 우리도 그동안 투자를 많이 했는데.

"육군 중심, 대륙 중심적 사고가 문제다. 해군력이 강하냐 약하냐를 떠나 바다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없었던 거다. 우리는 해양국가다. 바다에서 돈을 벌어와야 국민이 먹고살고 국부가 창출된다. 해상 교통로가 단 일주일만 차단당해도 난리가 날 거다. 해양을 통제하고 해양력을 투사하는 것이 해군의 임무이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항공모함이다. 항공모함이 국익 보호의 핵심 전력이 돼야 한다." 

- 우리나라같이 해역이 좁은 나라에서 항공모함은 낭비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미래를 내다보고 반대하는 건지 모르겠다. 항공모함은 그 자체로 주변국들에 억지력을 행사한다. 북한에 대한 억지력은 말할 것도 없다. 유사시 공군 비행장은 북한의 공격 1순위다. 항공모함은 바다의 활주로다. 또한 바다에서 육지로 고강도 전력을 투사할 수 있다. 그 점에서 항공모함은 단순히 해군 무기가 아니라 우리 군의 전략자산인 셈이다.

또 우리가 북한만 바라볼 수는 없지 않나? 이어도나 난사군도 등지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거나 해상 통로가 차단된다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나? 지금 (항공모함 도입 사업을) 시작해도 늦다. 서둘러야 한다. 10대 강국이 모두 바다를 끼고 있고 항공모함을 갖췄다. 이들 나라는 모두 해상 교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다."

- 윤석열 정부는 국제적, 장기적 전략이 없고 오로지 북한을 제압하겠다는 생각만 하는 듯싶다. 

"맞다. 그것도 자강(自强)도 아니고..."

- 남의 힘을 빌려 나라를 지키겠다는 발상 아닌가?

"외교에서는 국익이, 안보에서는 자강이 중요하다. 스스로 강해야지 남의 힘을 빌리는 건 한계가 있다. 물론 부족한 점을 남의 도움으로 채울 수는 있다. 그래서 나라 간 동맹이나 전략적 연대가 있는 거고. 하지만 기본은 자강이다."  

- 윤석열 정부는 북한이 우리를 공격하면 응징을 넘어 미군의 전략자산을 동원해 아예 북한을 섬멸하겠다고 공언한다. 실제로 그런 충돌이 빚어지면 어떤 양상이 펼쳐질 것으로 보나? 

"천안함 때나 연평도 포격 도발 때 보지 않았나? 못한다. 그렇게까지 할 수가 없다. 그런데 한번 충돌하면 중재가 쉽지 않다. 이스라엘이나 우크라이나 사태도 그렇지 않나?" 

- 설사 중재가 이뤄진다 해도 서로 엄청난 피해를 보고 난 다음이다. 

"그래서 위기를 관리하고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억지력을 갖춰야 한다." 

- 전례로 볼 때 육지보다 해상 도발의 가능성이 크지 않나? 

"그래서 해군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국익 수호 선봉' 항공모함 도입 서둘러야"
 

황기철 전 국가보훈처장이 최근 펴낸 책 <대한민국의 국격 보훈 3.0> ⓒ 조성식

 
그는 다시 한번 항공모함의 전략적 가치를 강조했다. 

"장보고가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해 한중일 교역을 한 것은 신라 왕들의 인식 수준을 넘어 국제적 관점의 전략적 사고를 했기 때문이다. 국부의 핵심 이동로인 해상 교통로를 지키고 주변국들에 실질적인 억지력을 가지려면 항공모함이 필요하다. 2011년 우리 선박 삼호주얼리호가 아라비아해 아덴만에서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을 때 나는 작전사령관으로서 대해적 작전을 지휘해 우리 선원 21명을 안전하게 구출한 바가 있다. 이는 우리 군의 해외원정작전 역사상 첫 승리다. 이후 해적의 우리 선박 납치 시도가 크게 줄었다.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우리의 국익을 보호할 수 있는 핵심 전력은 항공모함이라는 것을 국가지도자는 명심해야 한다."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에 관한 생각도 물어봤다. 그는 "군 사법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크다"며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려면 특검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첫째, 사고 원인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최소한의 전문성도 없는 지시가 내려갔다. 해병대도 해군과 마찬가지로 '해(海)' 자가 들어간 군이 아닌가? 그렇게 거센 물살에 구명조끼를 입지 않았다는 걸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지시한 사람과 지시 내용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책임자를 가려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 이런 사고가 또 발생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상부에 보고하는 과정에 어떤 외압이 작용했는지를 밝혀야 한다. 대통령실에서 개입한 의혹이 제기되지 않았나? 이를 밝히려면 특검밖에 없다." 

- 이 정부는 왜 책임지는 사람이 없을까. 이태원 참사도 그렇고, 해병대 사건만 하더라도 관련자들이 멀쩡하다. 최소한 지휘 책임을 져야 할 1사단장은 아무런 문책 없이 정책연수생으로 발령 나고, 외압에 굴복한 것으로 보이는 사령관은 유임됐다. 현역인 안보실 국방비서관과 국방부 장관의 군사보좌관은 승진했다. 이종섭 전 장관은 대사로 내보낸다는 말도 있고 총선에 출마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한 점 의혹 없이 진상을 밝히고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의 신뢰를 얻을 것이다. 아무리 군이 계급사회라지만 계급으로 눌러서 적당히 넘어가려 하면 정치적, 역사적으로 큰 짐을 지게 될 거다." 

그는 "군 지휘관들이 권력자나 정치인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군에 대한 애정 어린 당부를 곁들였다. 

"군도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별하고 잘못에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최근 <서울의 봄>이란 영화가 인기를 끄는데, 한편으로는 과거 일부 정치군인들의 일탈로 인해 지금의 군까지 매도당하지 않나 싶어 걱정스럽다. 군인으로서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는 것만이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향후 계획은?

"국가안보를 튼튼하게 하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 군 생활 오래 한 내 눈에는 안보 위기가 보인다. 군이 본연의 임무를 다할 수 있게 정치인들이 사기를 북돋아 주고 국민의 안보 불안감을 덜어주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거꾸로 더 위기를 조장하는 것 같다. 내년이나 내후년이 위험하다. 국가의 가장 큰 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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