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04 07:13최종 업데이트 24.02.05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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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보러 가기 겁난다'는 말이 나오는 요즘입니다. 2023년 통계청이 발표한 신선식품 지수 동향에 따르면 2년 사이 장바구니 물가가 25% 가까이 올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다른 나라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2024년 신년특집으로 세계 각국의 장바구니 물가를 소개하는 '글로벌 공동리포트'를 기획했습니다. 통계수치에서는 담지 못하고 있는 생생한 실물 경제의 명암을 공유하려고 합니다.[편집자말]

파리 외곽의 한 유기농전문 매장의 모습. 유기농산물은 가장 큰 인플레의 타격을 입은 시장중 하나다. 2023년 12월 현재, 유기농산물의 가격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사과 1kg 품종에 따라 2.9-3.4유로, 배 1kg 품종에 따라 3.6에서 4.3유로, 양배추 개당 2.5유로. ⓒ 목수정

 
지난 3년 동안, 프랑스 시민들은 혹독한 인플레이션 시대를 지나왔다. 생활의 가장 기본 요소인 식재료 물가가 2021년 초에서 2023년 초 사이 20%나 급등했다. 

화폐가 프랑에서 유로로 바뀌던 2천년대 초, 커진 화폐 단위에 편승, 은근슬쩍 올라서던 느슨한 인플레이션의 기억 이후 초유의 일이다. 이러한 현상은,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일제히 나타난 모습이기도 하다. 하나의 화폐로 묶인 유로존은 2021년 초부터 일제히 엄청난 물가 상승을 경험한 것과 마찬가지로, 2023년 연초부터 일제히 그래프가 꺾이는 현상을 겪고 있기도 하다.

유로존 모든 나라의 공식 데이터는 하강하는 물가 지표를 그리고 있으나, 시민들의 방구석은 아직 데워지지 않았다. 인플레이션의 충격에서 여전히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 2년간의 충격을 일으킨 진범이 누군지, 사람들은 서서히 눈뜨고 있다.
 

2021년초부터 급격히 치솟던 물가는 금년 들어 하락세로 들어섰다. ⓒ INSEE

 
프랑스 경제부 장관 브뤼노 르메르는 2023년 11월 30일, 11월 말 물가 지수가 2022년 같은 시기와 비교하여 3.4% 상승에 그쳤다며 승전보를 전하듯 말했다. 2023년 11월 말 식음료 물가지수는 지난해 동기간 대비 7.6% 상승하여 여전히 높게 나타났지만, 공산품 1.9%, 서비스 분야 2,7%, 특히 물가 상승을 견인해 온 에너지가 3.1%로 상대적으로 안정권에 접어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2~3년간의 물가 상승이 남긴 지각 변동은 도처에 또렷한 흔적을 남겼다.

유기농산물 소비의 후퇴 
   

프랑스 주요 식음료 평균 가격의 물가 변동 ⓒ INSEE

 
물가 상승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분야는 유기농산물 시장이다.

육류와 계란, 생선류의 가격 상승률이 특별히 높았고, 과일이나 감자, 우유 등의 기초식품들의 가격은 상대적으로 적은 폭의 인상률을 보였다. 채식주의자들에겐 상대적으로 물가 인상률이 가볍게 느껴졌을 수 있다.


토마토의 가격이 각별히 올랐던 것은 프랑스 국내 생산량은 줄어들었던 반면, 전 세계적으로 토마토의 수요가 늘면서 프랑스의 주요 토마토 공급처인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프랑스에 공급할 수 있던 수량이 줄어든 게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고된다.

2012년부터 10년간, 4%에서 12.8%까지 꾸준히 시장 점유율을 높이며 무한 성장을 약속하는 듯 보였던 유기농산물 시장은, 2022년 들어 0.7% 줄어들면서 처음으로 하락을 경험한 후, 2023년에 들어서도 하락세를 지속했다. 2023년 7월에 발표된 유기농산물 판매지수는 대형 슈퍼마켓 체인에서 13%, 유기농 전문 매장에서 4.6%의 하락을 기록했으며, 이는 전국 150여 개 유기농 전문 매장의 폐쇄로 이어졌다.  

10년전부터 꾸준히 성장해온 유기농산물 시장은 2021년 처음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 Agence Bio

 
일부 프랑스인들은 위협적 인플레이션에 맞서 건강한 양질의 식생활을 포기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웰빙과 더불어 포기된 것은 유흥과 파티다. 15~20%의 가격 인상이 이뤄졌던 포도주의 경우, 지난 3년간 그 소비량은 14% 감소됐고, 특히 대표적인 고가의 파티용 주류인 샴페인의 소비는 20%까지 감소했다.

이는 수년 전부터 젊은 층에서 환경과 건강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확산되던 NoLo라 불리는 트랜드(모임에서 알콜음료를 최소로 소비하자는 젊은층의 문화)를 더욱 확산시키며, 술을 대신하는 다양한 음료의 개발을 촉진시키기도 했다. 

중고 의류 시장의 급성장
 

인플레이션 덕분에 활황을 누리는 업계가 있다면 중고의류 업계다. 사진은 파크리스마스를 맞아 멋지게 쇼윈도를 장식한 파리 근교 한 중고 의류 매장의 모습이다. ⓒ 목수정

 
인플레이션은 의류 시장을 급변시키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지난 1년간 중고 옷을 구입한 사람의 수는 2018년 18%에서 2022년 31%로 급등했다. 일찍이 중고 의류에 대한 거부감이 적었던 프랑스 사회였지만, 인플레이션은 이러한 소비성향이 윤리적 소비에 대한 신념인 동시에, 생존을 위한 절대적 필요로 바뀌게 하는데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것이다.

패션 산업이 지구를 오염시키는 또 다른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새 옷 대신  중고 의류를 구입하는 것 자체가 윤리적 소비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에다. FEVAD(프랑스전자거래협회)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021년 프랑스인들 중 60%가 지난 12개월 중, 중고품을 샀거나 팔았던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국민의 과반수가 중고 시장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2018-2022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의 중고 의류 시장 동향. 연간 한 번이라도 중고 의류를 구입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답한 사람의 비율이다. 프랑스(붉은 색)의 경우, 2018년 18%에서 2022년 31%로 증가했다. ⓒ statistica

 
특히 MZ세대들은 중고 시장을 선도하는 대표적인 그룹이다. 58%의 MZ세대는 자신들의 옷을 입는 습관이 기후변화에 영향을 가져다 준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83%는 이미 중고 의류를 구입해서 입고 있거나, 그렇게 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그들의 이런 소비 습관은 인플레이션을 계기로 중고시장에 대거 합류하게 된 기성세대들과 함께 중고 시장을 더욱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1년 사이, 20만 명 증가한 무상급식소 이용 인구  

마음의 식당(Restaurant du Coeur)은 1985년, 프랑스의 저명한 희극인 콜뤼쉬(Coluche)에 의해 창립된 시민단체로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무상으로 식사를 제공해왔다. 38년이 지나는 동안 이는 전국 단위의 조직으로 발전, 2000여 개 지역에서 무상 급식을 제공해 온 이들은, 2023년 9월 기자회견을 가졌다. 2022년에 비해 마음의 식당을 찾는 인구가 20만 명이나 늘어난 탓에 더 이상 충분히 식사를 제공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음을 호소하며 각계에 지원을 요청하기에 이른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확연히 꺾이고 있다고 청신호를 보내던 정부의 말이 무색하게 현실은 여전히 물가 인상의 타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리는 소식이었다. 이에 정부가 1500만 유로의 지원을 약속한 데 이어, 프랑스 축구협회가 50만 유로, 명품기업 LVMH의 대표 베르나르 아르노가 천만 유로(약 142억 원)를 기부했다.

베르나르 아르노는 프랑스 제1의 거부이자, 2022년 세계 1위의 부자로 등극한 인물이다. 그의 기부 행위는 마음의 레스토랑의 급한 불을 끄게 함으로써 즉각적인 미담으로 미디어를 통해 전해졌으나, 일각에서는 미국식 자선자본주의(capitalisme philanthropique)가 이런 식으로 프랑스에도 정착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와 비난의 목소리도 나왔다.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대기업과 그 소유주들에 전가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자선가의 이미지를 얻게 하고, 이면에선 이권을 주고 받으며 부당 이득을 나누는 자선자본주의는 선거를 통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논리가 그것이다. 더구나 20만 명의 추가적 빈민을 발생시킨 살인적 인플레이션 주범의 명단 속에 그가 들어있다면, 이는 역대급의 기만이 아니겠는가.

누가 물가 상승을 부추겼나?
 

2015년부터 2022년 1분기에 프랑스 40대 기업들이 남긴 이윤을 보여주는 그래프다. 온 나라가 사상 초유의 인플레에서 고통받는 동안, 그들은 사상 초유의 이윤을 남겼음을 보여준다. ⓒ basta

 
그간 모든 언론들은 일제히 이 기록적 인플레의 주범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라 지목했다. 2022년 6월 OECD가 내놓은 분석도 물가 상승의 주요 원인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꼽고 있다. 러시아에 의존하던 유럽의 가스 생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세계 생산량의 14%을 담당해왔던 밀의 공급 문제가 물가 상승을 견인한 주요 원인이며, 밀과 그것으로 만든 빵, 면 같은 제품들의 가격이 인상되었고 모든 소비자 물가가 덩달아 뛰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전쟁은 2022년 2월에 발발했고, 물가 지수는 정확히 2021년 1월부터 치솟기 시작됐다. 전쟁은 인플레이션을 가중시킨 한 요인일 수는 있지만, 전적인 책임을 거기에 물을 순 없다. 동굴의 출구가 보이기 시작하자, 그 진범을 지목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프랑스 최대 유통업체 하나인 르클레르(Leclerc)의 대표, 미셸-에두아르 르클레르는 지난 12월 14일 공영라디오 프랑스엔터(France Inter)에 출연, 물가 인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이렇게 밝힌다.

"지난 3년간, 광적인 투기성 인플레이션이 있었습니다. 저희 회사는 유통업체로서 오히려 그 가격 폭등의 폭을 줄이려 애쓴 편에 속합니다. 인플레이션이 소비자를 지나치게 위축시키면 결국 우리는 그들을 잃으니까요. 그런데, 법이 우리가 생필품에 대해 대규모 바겐 세일을 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국회와 정부 안에 분명 인플레이션을 원하는 세력이 있던 것이죠. 위에서는 이 모든 것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지난해 대기업들은 사상 최고치의 주식 배당금을 주주들에게 안겼습니다. 프랑스 시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동안, 이득을 취한 자들이 있는 것이죠." 

그의 말에 따르면, 자본가인 자신도 납득할 수 없는 극소수 자본가들의 논리가 정부와 함께 이러한 상황을 이끌어 왔다는 얘기다. 

'UFC-Que Choisir(무엇을 선택할까)'를 비롯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4개 소비자 단체도 지난 11월 말, 공동 성명을 발표하며, 그들이 파악한 인플레이션의 주범을 지목했다.

"지난 2년간, 식료품 가격은 20% 이상 상승했으며, 그 가격 상승의 주된 원인은 식품 원자재를 공급하는 농공업계가 사상 초유의 마진을 취했기 때문이다(프랑스 통계청, INSEE가 2023년 11월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농산물가공업체들이 취한 마진은 2021년 28%에서 2023년 48%으로 급등했다)."

이들은 공개 서한을 통해 정부가 더 이상 자본의 하수인 노릇을 하지 말고, 명백히 그들의 폭리를 통제할 것을 요구했다. 

그런가 하면, IMF의 경제학자들은 2023년 6월, 유럽에서 지난 3년간 일제히 유행처럼 번진 인플레이션에 무엇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분석하는 보고서(<팬더믹 이후 유로지역의 인플레이션과 에너지쇼크>)를 발표한 바 있다. 이들 역시, 물가 상승을 견인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기업들이 취한 과도한 이윤"으로 꼽고 있다. 정부와 언론이 시민들에게 믿게 하려고 애썼던 것과는 전혀 다른 범인을 유통업계의 자본가와 소비자 단체, 그리고 IMF 경제학자들이 일제히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의 최대 수혜자 : 40대 기업과 그 주주들
 

IMF의 경제학자들은 2023년 6월 유럽에서 발생한 인플레의 핵심 원인이 기업들이 취한 이윤(오렌지 색)에 있음을 밝히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출처 : EUROSTAT ⓒ Eurostat


인플레가 최고조에 달했던 2023년 초의 물가는 2년 전에 비해, 에너지 46%, 식음료 22%, 담배 10%, 공산품 8% 상승해있었다. 주지하다시피, 에너지와 담배 가격은 정부가 직접 개입하여 조절하는 것이기에, 시장 원리에 의한 것이기보다는, 정책이 개입된 인위적인 물가에 가깝다. 전쟁이라는 정황과 정부의 개입, 기업의 마진이 합해져 결정된 에너지 가격의 인상은 나머지 모든 가격에 영향을 미쳤다.

세 요소 중 가격 인상에 가장 큰 몫을 차지한 것이 기업이 취한 이윤이었다는 사실은 굳이 IMF 보고서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토탈에너지(TotalEnergies)가 2022년, 사상 최고치의 순이익(약 100억 유로, 한화 약 14조2천억원)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실질적 물가 인상의 주범은 푸틴이기보다는, 전쟁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윤을 극대화시킨 기업과 거기에 협조한 정부였다. 4대 소비자단체들이 정부와 기업을 향해 포효한 그대로다. 

토탈에너지 뿐이 아니다. 프랑스 40대 대기업이 모두 최대치의 이윤을 남겼고, 이들은 2022년말, 21년보다 20% 올라간 사상 최대의 배당금(675억유로, 한화로 약 100조원)을 주주들에게 안겼다. 

토탈에너지와 명품업체 LVMH, 스텔랑티스(Stellantis, 푸조, 시트로엥, 크라이슬러의 합병으로 생겨난 자동차업체), 아르셀러미탈(ArcelorMittal, 철강기업)은 2022년 프랑스에서 최대 수익을 낸 4대 기업으로 꼽힌다. 시민들을 빈민들로 전락시킨 그 주범들이 자신들이 벌인 행각의 피해자를 향해 적선을 하며 자선가의 인자한 미소를 지었던 것이다. 

2022년 1분기 프랑스 40대 기업은 2020년 같은 기간에 비해 364배, 2019년에 비해서도 1.7배의 순이익을 챙겼다. LVMH그룹의 대표이자 세계 제1의 거부인 베르나르 아르노의 자산은 지난 2020년부터 2022년 말 사이 2배 이상 (857억 유로에서 1840억 유로, 한화로 약 260조 원) 증가했다고 프랑스의 시민단체 옥스팜이 밝힌 바 있다.

이들이 절대다수의 주머니를 털어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는 동안, 최저 임금은 고작 1~2% 상승했다. 현재 18%의 프랑스인들은 카드빚으로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다.

2023년 초, 전국의 제빵사 3-4만명이 파리에 모여, 미친 에너지 비용을 정상화하라고 정부에 요구하며 격한 시위를 벌인 바 있다. 제빵사들이 조직적으로 거리에 나서 시위를 벌인 것은 1789년 이후, 처음이라는 소리가 나돌았다. 고삐 풀린 물가를 방치한 정부, 사상 최대의 배당금 잔치를 벌였던 40대 기업들은 그들의 잔치가 너무 요란했음을, 이대로 가다간 경제가 완전히 붕괴하고 성난 시민들의 발아래 그들이 놓일 수 있음을 감지했다. 제빵사들이 움직여준 덕에 바게트의 가격은 여전히 1유로다. 

프랑스 정부는 2024년 시간당 최저임금을 11.65유로(약 1만6500원)로 확정했다. 2023년 보다 1.13% 증가한 금액이다. 아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나지 않았어도, 정부는 에너지 가격을 조절했지만, 최저임금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러설 마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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