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29 13:17최종 업데이트 24.01.29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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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보러 가기 겁난다'는 말이 나오는 요즘입니다. 2023년 통계청이 발표한 신선식품 지수 동향에 따르면 2년 사이 장바구니 물가가 25% 가까이 올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다른 나라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2024년 신년특집으로 세계 각국의 장바구니 물가를 소개하는 '글로벌 공동리포트'를 기획했습니다. 통계수치에서는 담지 못하고 있는 생생한 실물 경제의 명암을 공유하려고 합니다.[편집자말]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팔고 있는 쌀 ⓒ 김정호

 
한동안 새해맞이로 분주했던 분위기는 인도양의 섬나라를 의미하는 인도네시아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예년과 달리 사회 분위기는 많이 가라앉아있다. 지갑이 얇아졌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이 잘 억제되고 있다며 정부는 각종 수치를 들이대지만, 서민들이 피부로 체감하는 물가는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직장생활 20년 차 과장인 아궁 누그로호(45)의 가정을 통해 현재 인도네시아의 물가 상황을 살펴본다.

팍팍해진 서민들의 살림살이

누그로호뿐만 아니라 평범한 인도네시아 서민들에겐 '하루 지출 10만 루피아(원화 약 8400원)'라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10만 루피아로 왕복 교통비, 점심값, 기호품을 해결한다. 누그로호는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출근한다. 교통비로 1만 5000 루피아, 점심으로 완자 국수인 소토미를 사 먹는데 1만 3000루피아, 담배 1갑 2만 루피아를 매일 기본 지출한다. 최근 들어 소토미는 1만 6000루피아, 담배는 2만4000루피아로 올랐다. 교통비를 제외하고 식품과 기호품은 대부분 큰 폭으로 상승했다.

누그로호의 아내 찝따 마와르와띠(42)는 지난달 전통 시장에 장을 보러 갔다가 크게 놀랐다. 매일 먹는 쌀이 떨어져 쌀가게에 갔는데, 지난해 11월에는 kg당 1만 5500루피아를 하던 쌀이 1만 6000루피아로 오른 것이다. 그전에는 1만 5000루피아였던 것이 두어 달 만에 1000루피아가 오른 셈이다. 요리에 꼭 필요한 붉은 고추 가격은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Kg당 10만 루피아가 넘는다. 중부 자바 지역에서는 kg당 5만 루피아인 것과 비교하면 수도권(서부 자바)에서는 그 두 배의 가격이다. 
 

인도네시아 서민들이 주로 찾는 전통 시장의 모습.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우리나라 전통 시장과 별로 다르지 않다. ⓒ 김정호

 
슴바코, 인도네시아 정부의 9가지 생필품 가격 관리

1997년 태국을 필두로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연이어 강타한 IMF 외환위기는 인도네시아를 비껴가지 않았다. 특히 서민층이 큰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 호된 경험을 한 인도네시아 정부는 1998년에 산업통상부 장관령으로 서민층과 직결되는 9가지 생필품을 선정하고 가격 관리를 공표한다. 여기에는 쌀, 설탕, 등유, 소금, 소고기, 식용유, 우유, 계란, 밀가루가 포함된다. 정부가 집중 관리하는 생필품을 약어로 슴바코(Sembako, Sembilan Bahan Pokok)라 하는데 문자 그대로 '9가지 기본 생필품'이라는 뜻이다. 


슴바코는 차츰 9가지 기본 생필품뿐만 아니라 물가 상황을 가늠하는 주요 생필품을 통칭하게 된다. 최근에는 닭고기, 생선, 마늘, 양파, 차와 커피, LPG 가스, 인스턴트 라면도 슴바코 대상으로 꼽는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국립식품청(Badan Pangan Nasional)이 소비자 물가 관리를 전담하도록 했다. 국립식품청이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슴바코에는 쌀, 설탕, 등유, 소금, 소고기, 식용유, 우유, 계란, 밀가루, 9가지가 들어간다. 이들 품목에는 소매가상한제(HET)가 적용된다. 정부가 정한 최고 소매 가격으로 그 이상을 받을 수 없도록 했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BI)은 해당 품목의 지역별 가격을 별도의 홈페이지에 매일 게시한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에서 운영하는 지역별 식품 가격 정보 웹사이트. 정부가 항상 모니터링하는 주요 식품의 가격을 지역별, 등급별, 판매처별로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매일 업데이트된다. ⓒ 김정호

 
인플레이션을 이끄는 쌍두마차는 쌀과 붉은 고추 가격

현재 인도네시아의 전반적인 물가 상황은 안정적인 동시에 불안정하다. 정부가 집중해서 관리하는 생필품 가격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품목의 경우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11월 인플레이션율은 2.86%로 전달의 2.56%에 비해 상승했다. 인플레이션을 이끄는 두 가지 품목은 쌀과 붉은 고추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전 국민이 체감하는 쌀 가격을 안정시키려고 큰 노력을 기울였다. 덕분에 지난해 12월 들어 안정세를 보였지만 일시적 상황이라는 것이 문제다. 여기에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지난해 쌀 작황이 예년 대비 대폭 떨어졌는데 슈퍼 엘니뇨 현상으로 극심한 가뭄이 닥친 탓이다.  

기후 변화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인도네시아 정부는 수년 전부터 연간 200만 톤의 쌀을 비축하고 있다. 쌀 비축분은 대부분 수입으로 충당하는데 2023년은 그 절반인 100만 톤을 인도로부터 수입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인도가 자국 수요 감당을 이유로 수출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해 버렸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인도네시아 정부는 부랴부랴 대안을 찾았고 태국과 베트남으로부터 쌀 160만 톤을 수입하기로 했다. 목표치에서 40만 톤이 부족한 수량이다. 쌀 가격 안정화를 위해 정부 비축미를 시장에 풀어야 하는데 그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비축미 부족은 올해 쌀 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보통 건기 막바지인 2월 말에서 3월 사이에 추수가 이뤄지는데 가뭄이 이어지면서 추수가 4~5월로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 4월에는 이슬람력으로 르바란(라마단 종료 기념 축제)이 있어서 쌀 수요가 폭증한다. 추수한 쌀이 시장에 대거 풀려야 하는 시기를 정부 비축미로 버텨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현재 인도네시아의 인플레이션은 쌀과 붉은 고추 가격이 이끌고 있다. 정부가 쌀 가격은 어느 정도 안정시켰으나 붉은 고추 가격은 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 김정호

 
붉은 고추 가격은 자카르타를 비롯한 수도권에서 제일 큰 이슈다. 다진 고추는 인도네시아 음식에 빠져서는 안 되는 기본양념이다. 그런 붉은 고추의 가격이 지난해 12월 기준 중부 자바 지역에서는 kg당 5만 루피아, 동부 자바 지역에서는 kg당 6만5000~7만 루피아인데 서부 자바 지역인 수도권에서는 10만~12만 루피아까지 치솟았다. 쌀 가격을 겨우 안정시켰더니 붉은 고추 가격이 팍 뛰어오른 셈이다. 인플레이션 악화를 염려한 조코위 대통령이 재래시장과 마트를 수 차례 방문해서 가격을 확인하고 내무부 장관에게 가격 관리를 특별히 지시했을 정도다. 쌀과 붉은 고추 가격은 이후 정부가 물가를 잡고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에 인도네시아 언론도 계속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출에서 일반 소비재 비중이 증가하는 추세 
 

2023년11월말 필수 9품목(슴바코) 가격 추이. 안정적으로 가격이 관리되는 품목이 있는가 하면 정부의 집중적인 관리에도 불구하고 오르는 품목이 있다. ⓒ PIHPSN

 
인도네시아에서는 크리스마스와 신년으로 이어지는 기간이 연휴였다. 소비가 집중되는 때라 물가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슴바코를 필두로 한 기본 생필품 가격을 안정시키려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꾸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많은 생필품 가격이 올랐다.

샬럿의 2023년 12월 평균 가격은 3만 2910루피아/kg였다. 이는 전월에 비해 17.51% 상승한 수치다. 슴바코 품목인 설탕의 경우 1만 6500루피아/kg로 전월 대비 6.04% 올랐다. 소고기는 13만 5310 루피아/kg인데 월초 대비 0.73% 오른 가격이다. 닭고기도 3만 4800 루피아/kg를 기록해서 12월 초에 비해 2.5% 상승했다. 

전반적인 물가 상승이 서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만디리 은행이 매달 발표하는 만디리 지출 지수(Mandiri Spending Index)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일반 대중의 소비 추세를 알려주는 지표인데 연초에는 200이던 것이 11월에는 269.2까지 상승했다. 작년에는 내내 150선을 유지했다. 전체 지출에서 일반 소비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10월에는 59.2%였는데 11월에는 62%로 늘어났다. 서민들의 고정 지출에서 일상 소비재 비중이 늘어난 것은 물가가 계속 오른다는 방증이다.
 

국책 은행인 만디리은행은 매달 만디리 지출지수를 발표한다. 인도네시아 국민의 각종 소비 및 지출 추세를 파악하는 데 유용한 데이터다. ⓒ 김정호

 
급여는 거의 오르지 않고 제자리인데 각종 생필품 가격이 오르는 여파는 서민들의 일상생활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누그로호는 얼마 전부터 퇴근 후에 고젝(Gojek, 차량 공유 플랫폼)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매달 갚아야 하는 각종 할부금을 감당하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한다. 한편 누그로호는 아내와 상의한 끝에 적립해 온 적금도 깨기로 했다. 물가 오름세가 금방 사그라들 것 같지 않아서다. 

시험대에 오른 조코위 정부의 인플레이션 대책

적금까지 해약해서 생활비로 전용하는 것은 누그로호 가정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2023년 10월 기준 소득 대비 저축률은 15.7%, 지출과 할부금은 각각 76.3%와 8.8%다. 2019년 11월에는 소득 대비 저축률이 19.8%, 지출과 할부금이 각각 68%와 12.2%였다. 요약하면 각종 지출과 할부금 액수가 늘어나자 이를 저축한 돈으로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인플레이션(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 - 하늘색)과 식음료 인플레이션(파란색) 비교. 전체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는데 대신 식음료 부분이 치솟았다. ⓒ cnbc indonesia research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저축을 사용하는 현상은 부유층을 제외하고 빈곤층과 중산층 모두에서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충격파의 강도는 다르다. 인구의 30%를 차지하는 저소득층은 정부로부터 각종 사회적 지원을 받기 때문에 충격파가 완화된다. 문제는 인구의 30~60%를 차지하는 중산층이다. 경제적 안전장치가 별로 없기에 기존의 저축으로 생활비 부족액을 메우며 버티고 있지만 언제 고갈될지 모른다. 저축한 돈을 다 써버리면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험에 처하게 된다. 중산층의 몰락 가능성은 인도네시아 경제에 큰 위협 요인이다. 

많은 중산층이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해고를 당했다. 팬데믹이 뉴노멀로 바뀌면서 새로 직장을 찾았지만 고용 환경이 변한 탓에 대부분 불완전 고용 상태다. 언제 또 잘릴지 몰라 대부분 투잡, 쓰리잡을 뛰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중산층까지 챙길 재정적 여력이 없기 때문에 중산층을 도울 유일한 방법은 물가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간 조코위 정부는 수출액 증대, 무역수지 지속 흑자 등 대외적인 부분에서는 꽤 괜찮은 성적표를 받았다. 우려와 달리 인플레이션도 연말이 가까울수록 하향 안정세를 유지해서 선방했다. 그러나 서민경제의 안정이라는 대내적 측면에서는 박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단순히 기본 생필품 가격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경제의 허리를 차지하고 있는 중산층을 생활고로부터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저축을 허물며 하루하루 근근이 버티고 있는 중산층의 좌절과 분노는 오는 2월 14일에 있는 차기 대통령 선거와 총선(인도네시아는 대선과 총선을 같은 날 치름)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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