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28 17:58최종 업데이트 24.02.28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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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우석대 교수)이 돌아왔다. 2006년 <경향신문> 정치·국제에디터일 때부터 지금까지 200개가 넘는 칼럼을 썼고, <경향신문>의 편집국장까지 지낸 대표적인 논객이 이대근이다.

2019년 연말에 <세상에 속지 않는 법>이라는 칼럼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경향신문>을 떠나 있었는데, 올해 1월부터 우석대학교 교수 직함을 달고 외부필진 자격으로 <경향신문>에 칼럼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이대근의 이름은 잊을 수가 없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한 달여 전인 2009년 4월 16일에 나온 <굿바이 노무현>이라는 칼럼의 충격 때문이다.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집권한 그는 민주화 운동의 인적·정신적 자원을 다 소진했다. 민주화 운동의 원로부터 386까지 모조리 발언권을 잃었다. 그를 위해 일한 지식인들은 신뢰와 평판을 잃었다. 민주주의든 진보든 개혁이든 노무현이 함부로 쓰다 버리는 바람에 그런 것들은 이제 흘러간 유행가처럼 되었다. 낡고 따분하고 믿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 이름으로는 다시 시민들의 열정을 불러 모을 수가 없게 되었다. 노무현이 다 태워버린 재 속에는 불씨조차 남은 게 없다. 노무현 정권의 재앙은 5년의 실패를 넘는다. 다음 5년은 물론, 또 다음 5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당선은 재앙의 시작이었다고 해야 옳다. 이제 그가 역사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이 뿌린 환멸의 씨앗을 모두 거두어 장엄한 낙조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2009년 4월 16일 자 <경향신문> 이대근 칼럼 '굿바이 노무현' ⓒ 경향신문 PDF

 
벌써 15년 가까이 지난 글이건만, 옮겨 적는 손가락이 조금씩 떨리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 칼럼을 노무현이 읽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 달 후 노무현은 그의 말대로 "장엄한 낙조 속으로" 사라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부터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6월 15일, 이대근은 노무현을 소환하는 또 다른 칼럼을 썼다. <노무현의 마지막 선물>
 
이제 누가 노무현을 죽였는지 더 이상 묻지 말자. 민주주의를 살려내려는 우리의 열정 또한 그를 죽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대의 역설이자 당대의 비극이다. 그러나 그 역설은 그의 심장의 고동이 멈추는 순간 희망의 싹이 자라면서 끝났다. 죽음으로써 그는 서민의 벗으로 돌아왔고, 500만명의 노무현으로 부활했다. 그리고 전차에 치인 듯 비틀거리던 야당을 일으켜세우고, 시민들을 각성시키고, 정치적으로 무장하게 했다. 위대한 노무현 정신의 재현이다.

그의 죽음이 "비틀거리던 야당을 일으켜세우고, 시민들을 각성시키고, 정치적으로 무장하게"해서 "위대한 노무현 정신의 재현"이 이뤄졌다는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는 펜으로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고 감으로써 "위대한 노무현 정신의 재현"을 이루게 한 의인이 되는 셈이다. 노무현의 죽음을 슬퍼하는 나는 이때 이후로 이대근을 잊지 못한다.

돌아온 이대근의 칼럼
 

1월 16일 자 <경향신문> 이대근 칼럼 '나쁜 정치' ⓒ 경향신문 PDF

 
그런 그가 4년의 침묵을 깨고 처음 쓴 칼럼의 제목은 <나쁜 정치>(1/16)다. 그가 말하는 나쁜 정치란 무엇일까?
 
한동훈은 한국 정치에서 하나의 사건이다. 대통령의 젊은 측근이 어느 날 갑자기 집권당 대표이자 전권을 쥔 총선 사령탑이 되더니, 금세 유망한 정치 지도자로 부상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벌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차기 대선 주자 지지율 선두 경쟁을 한다. 윤석열 대통령 말에 시큰둥하던 사람들도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주목한다. 집권당 의원, 당원, 지지자들은 이 정치 신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기꺼이 그의 지도를 받아들인다.

정치 경험 없는 인물의 대선 직행은 실패한다는 불문율을 깬 윤 대통령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후배 검사를 통해 대선에 이은 또 다른 승리를 손에 쥐려는 꿈이다. '윤석열 성공 모델', 재현될지 모른다. 한국 정치의 오랜 관행과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한동훈은 윤 대통령이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다. 하나는 보수층이 강조하는, '똑똑하다' '젊다'라는 긍정적 특성이다. 보수층은 그런 장점이 윤 대통령 단점을 보완해주리라 기대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칭찬 일색이다. 그럼에도 분명 다른 할 말이 있을 거라 여기며 참고 읽었다.
 
윤 대통령과 달리, 한동훈은 나름대로 정치 감각도 있고, 정치적 제스처에도 능하다. 그러나 지지자와 사진 찍기, 재래시장에서 떡볶이 먹기, 1992 맨투맨 티셔츠 입기는 정치 흉내다. 정부 실정 외면, 야당 조롱도 정치가 아니다. 그게 정치라면 나쁜 정치다.

이대근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한동훈은 정치적 양극화 현상에 의한 정치팬덤의 지지를 받고 있을 뿐, 제대로 된 정치를 하지 않고 있다. "다양한 이해와 의견을 조정하고 타협하며 합의를 만드는 게 정치"며, 한동훈은 정치하는 척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정치를 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노무현을 벼랑 끝으로 내몰던 이대근의 펜 끝이 이렇게까지 무뎌질 수 있을까. 앞부분만 읽은 독자라면 이대근이 한동훈을 찬양하는 칼럼을 썼다면서 공유할 수도 있겠다 싶다.

이대근이 복귀 후 두 번째로 내놓은 칼럼의 제목은 <명품백, 선거제, 그리고 리더십>(2/6)이다. 그는 두 명의 지도자를 나란히 세운다. 바로 연동형 선거제 공약을 지키지 않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에 대해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 윤석열 대통령이다. 
 
멋진 무언가를 덜컥 받은 일로 궁지에 몰린 두 지도자,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걸 왜 자꾸 사오세요" 하고 빈말로 끝냈다 해도 나중에 돌려주라고 했으면 하고 후회할 것이다. 대선 때 참모들이 제안한 '비례 확대(연동형) 선거제' 공약을 받지 않았더라면, 받아도 "평생 꿈"이라거나 "내가 대통령 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라는 따위의, 마음에도 없고 물리기도 어려운 말을 함부로 해서 여지를 없애버리지만 않았더라면 하고 자책할 것이다.

명품백 받은 사실이 드러나고,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며, 철석같던 연동형 선거제 약속을 뒤집어 여론이 악화됐을 때 뭔가를 해야 했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 즉각 잘못을 인정하고, 수습해야 했다.

대통령 부인이 고액의 선물을 받은, '불법행위' 논란이 있는 명품백 사건과 야당 대표의 공약 철회가 어떻게 같은 잣대로 비판해야 할 잘못인지 난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대근은 끝까지 그 둘을 비교하면서 싸잡아 비판한다. 그러면서 두 지도자 모두 리더십이 부족하다고 마무리한다. 

한동훈·윤석열에겐 무뎠던 펜 끝, 이재명에겐
 

27일 자 <경향신문> 이대근 칼럼 '이재명 사퇴를 권함' ⓒ 경향신문 PDF

 
이대근의 지난 칼럼을 길게 소개한 건 지난 27일 자 칼럼 <이재명 사퇴를 권함> 때문이다.
 
이재명은 민주당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정당 지도자로서 부적격이다.

첫 문장부터 거침이 없다.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명확하게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한다.
 
그는 경기도지사에서 당내 대선 경선 참여자로, 대선 후보자로, 대선 패배자로, 당대표로 자신의 지위가 변할 때마다 다른 사람이 되었다. 특히 자기 정체성이었던 기본소득을 포기한 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선거제를 약속하고, 그걸 뒤집고, 뒤집은 걸 다시 뒤집었다.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을 하고는 포기를 포기했다가 이런 변심을 지지하지 않은 동료 의원을 공천 과정에서 보복했다. 전당대회 연설에서 '당대표 경쟁 후보가 공천을 걱정하지 않는 당'을 만들겠다고 다짐하고는 '공천 때 복수하는 당'으로 만들었다.

모든 문장이 일관되게 이재명은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그의 칼럼을 있는 그대로 다 옮길 수는 없는 법. 이대근 칼럼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아래 몇 문장만으로도 충분하다.
 
그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일관성이 있다면, 자기애뿐이다. 이재명은 자기 외 누구도 믿지 않고,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

그의 역량은 실망스럽다

당 파괴가 이재명의 선거전략인가?

이대근은 이재명이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며 다음과 같은 말로 칼럼을 마무리 짓는다.
 
이재명은 문제 자체이지 해결책이 아니다. 이미 물 건너갔다고 체념하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그 일이 일어나야 한다.

이 문장을 15년 전 그가 쓴 칼럼 <굿바이 노무현>의 마지막 문장과 비교해 보라.
 
노무현 당선은 재앙의 시작이었다고 해야 옳다. 이제 그가 역사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이 뿌린 환멸의 씨앗을 모두 거두어 장엄한 낙조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소름 끼치도록 닮지 않았는가? 한동훈과 윤석열에겐 무뎠던 이대근의 펜 끝이 이재명의 목에는 칼이 되어 꽂히는 모양새다. 잔인하다. 공정하지도 않고.

2019년, 이대근이 4년을 쉬기 전 마지막으로 썼던 칼럼 <세상에 속지 않는 법>에 있는 한 문장을 이대근에게 되돌려주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세상은 옳은 것과 그른 것으로 구성된 대립물이 아니라 조금씩 맞고 틀린 것들이 어지럽게 뒤섞인 덩어리다. 하나의 진실이 있다고 믿는 건 맹목이며, 그걸 강요하는 건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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