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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라는 찬사도 부족해 보이는 애니매이션 감독이 있다.
그는 직업 때문인지 아니면 취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많은 여행을 다녔고 그곳에서 본 아름다움들을 자신의 작품에 녹아들게 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바람계곡, <천공의 성, 라퓨타>의 라퓨타성, <붉은 돼지>의 아드리아 해, <마녀 우편배달부>의 언덕위 빵집과 도시….

그의 이름은 미야자키 하야오이다.

주인공인 파즈와 시타 그리고 라퓨타성
▲ 라퓨타 포스터 주인공인 파즈와 시타 그리고 라퓨타성
ⓒ 지브리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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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오 감독은 30, 40대의 사람들에게는 <미래소년 코난>으로 더 유명할지도 모른다.

이제 부터 이야기 할 작품인 <천공의 성, 라퓨타>도 코난과 라나와 비슷한 분위기의 소년소녀 주인공의 모험이야기이다. 라퓨타는 고대 초과학 문명국의 수도로서 하늘을 떠다닌다고 전해진다. 이곳에 묻혀있는 유산들은 모험가에게는 '꿈'으로,  해적에게는 '보물'로, 야심가에게는 '초과학병기'로 표현된다.

그들의 집념에 라튜타를 감싸던 베일이 벗겨지고 인간의 감정에 의해 오염된다. 그러자 라퓨타는 자신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보물이나 초과학 병기를 '멸망'시키고 '자연'이라는 최고의 보물만을 간직한 채 더 높은 하늘로 몸을 숨긴다.

밝고 아름답지만, 음습하기도 하고, 무섭고 파괴적이기까지 한 팔색조 라퓨타는 미야자키 감독이 여행에서 얻은 이미지를 재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바람계곡이 파키스탄의 훈자계곡을 모델로 했다는 것에 반대한 팬은 거의 없는 반면, 라퓨타의 모델은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부분하다.

우선 첫번째로 거론되는 곳이 캄보디아의 앙코르다.
건물 전체를 잡아먹은 나무
▲ 귀신나무 건물 전체를 잡아먹은 나무
ⓒ 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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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자세로 돌벽에 앉아있다
▲ 귀신나무 편안한 자세로 돌벽에 앉아있다
ⓒ 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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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인의 침입을 확인한 크메르 제국의 왕은 자신의 수도인 앙코르를 버리고 현재의 프놈펜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공격하던 태국인들도 자신들의 나라에 버마인이 침입해 왔다는 소식에 서둘러 회군했다. 그렇게 1000년 가까이 밀림에 묻혀지낸 앙코르에서 석조건물과 나무들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었다. 그렇기에 뿌리 달린 석조 성인 라퓨타의 모델이 이곳이라는 것은 모두 인정한다.

하지만 힌두교 문화를 기반으로 세워진 앙코르와 고대 바벨론의 탑같은 이미지의 라퓨타는 서로 섞여질 수 없는 이질감이 있다. 예를 들자면 힌두의 건물들은 부드러운 곡선을 중요한 곳곳에 배치하고, 창틀이나 촛불을 놓아두는 벽장 등도 직각을 이루는 것이 거의 없다. 모두 원형이거나 돔의 모양을 하고 있어서 상당히 편안한 느낌을 준다. 심지어 전쟁 시에 사용되는 화살 쏘는 구멍도 원형이 많다.

반면, 라퓨타와 비슷한 오리엔트 문화의 특징은 선이 간결하고 직선적이어서 강한 느낌을 준다. 예로부터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등의 강대한 국가들이 흥망의 연속이었기에 변화가 많은 곡선보다는 통합이 쉬운 직선이 그들의 정서에는 어울리기도 하다.

힌두 문화가 여성이라면 오리엔트는 남성이어서 이들 둘의 중간점은 찾기 어렵다. 그래서 앙코르가 라퓨타의 유일한 모델이 되지 못한다.

두번째로 거론되는 곳이 이란의 아그리 밤이다.

2003년 7월의 사진. 2003년 12월의 대지진으로 희생된 5만의 사람과 진흙산이 되어버린 아그리 밤에 애도를 표합니다.
▲ 아그리 밤 2003년 7월의 사진. 2003년 12월의 대지진으로 희생된 5만의 사람과 진흙산이 되어버린 아그리 밤에 애도를 표합니다.
ⓒ 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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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성위에서 바라본 옆쪽의 군영
▲ 아그리 밤 중앙 성위에서 바라본 옆쪽의 군영
ⓒ 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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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2000년 전 즈음, 사산조 페르시아가 동쪽 변경에 건설한 군사도시였다. 한때는 200마리 이상의 군마를 보유할 정도로 강성했으며 많은 군사들이 상주했던 사일로 처럼 생긴 군영이 본성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은 라퓨타의 외양과 겹쳐진다. 하지만 17세기경 아프가니스탄의 침공에 전투 한 번 치르지 않고 퇴각해서인지 너무 깨끗이 보존되어 있다.
또한 어둡고 회색빛나며 단단해 보이는 라퓨타의 석조건물에 비해 황토를 구워만든 아그리 밤은 라퓨타와 같은 강렬한 위엄이 없다. 후퇴와 황토의 아그리 밤은 단지 라퓨타의 외형 모델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거론되는 것은 시리아의 크락데쉬발리에(Krak Des Shevliers)이다.

성벽. 1000년의 시간도 이 성벽을 허물수는 없었다.
▲ 크락데시발리에 성벽. 1000년의 시간도 이 성벽을 허물수는 없었다.
ⓒ 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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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 어둡고 단단한 느낌이 라퓨타와 흡사하다.
▲ 크락데쉬발리에 복도. 어둡고 단단한 느낌이 라퓨타와 흡사하다.
ⓒ 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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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십자군과 무슬림간 전쟁의 가장 처절한 전장 중의 하나이다. 11세기 경 시리아의 무슬림이 이곳에 성을 쌓았고12세기 십자군이 침입하여 성을 정복한다. 수십년에 걸친 치열한 전쟁으로 성의 탈환에 성공한 무슬림들은 성을 보강한다.

'결코 무너지지 않는 성'이라고도 불린 이 성은 십자군은 성의 재탈환을 위한 수십차례에 걸친 침공 속에서도 현재와 같은 온전한 모습을 후세에 물려주었다. 수많은 전쟁과 천년의 시간에도 무너지지 않는 성으로서 가지는 견고한 내부구조와 축성방식, 그리고 카리스마는 크락데시발리에, 시리아 말로는 호슴(Hosm)을  라퓨타의 모델 중의 하나로 꼽혀지게 하였다.

세곳의 라퓨타 모델 후보들은 라퓨타와 닮은 비율이 비슷해서 한곳을 골라 라퓨타의 모델이라 부를 수 없다. 그렇기에 라퓨타의 모델은 미야자키 하야오 한 사람만이 알고 있다.
궁금답답한 마음에 그에게 직접 라퓨타의 모델이 어디냐고 묻는 팬들도 많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작품을 되새김질까지 하며 즐기는 팬들의 즐거움을 그렇게 쉽게 뺏지 않을 것이다.


태그:#라퓨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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