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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 신촌 근처의 S대학 경제학과에 합격했다. 학원이 뭔지도 잘 모르는 서울로 보기도 좀 힘든 서울 변두리 지역 학교 문과에서 그럭저럭 수능 4등한 결과였다. 학원이 뭔지 잘 몰라도 한 1년 더 공부하면 더 좋은(?) 학교라고 여겨지는 학교에 갈 거라 생각해, 도전했다 실패해 더 안 좋은(?)학교에 하릴없이 나이만 먹고 가게됐다.  

 

허락받고 해온 일이 그다지 많지 않아 괘념치 않았다. 새로 가게 된 학교에서 하고자 하던 경제학을 진지하게 수학했다. 어학연수는 고사 하고 영어학원 가본 적도 없지만, 영어원서를 어려움 없이 읽고 외화를 보면서 바로 따라할 수 있을 만큼 즐겁게 하고싶은 공부를 했다.  


전공은 관련 저널과 신문, 서적을 탐독하며 즐겁게 공부했더니 H경제신문사가 주최한 시험에서 3000명 가까운 인원 중 10등을 했다. 물론 공부 한 자 안하고 기본 실력으로 본 시험이었고, 내가 취업을 위해 억지로 한 상대(商大)공부였다면 난 즐겁게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런 이해력이나 성적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장교복무 경험과 군복무 중 학원없이 혼자서 대학시절 영어처럼 웅얼거린 중국어 까지 더하면 힘들어도 일자리 하나쯤은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난 내가 즐겁게 한 공부와 노력이, 엄청난 투자와 산업화된 학원시스템을 등에 업은 친구들의 억지로 하는 노력보다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올해 깨달았다. 내가 공부 한 자 안하고 순수히 영어에 대한 즐거움에 바탕한 평소 실력으로 치른 950점은 점수만을 따기 위한 학원집중강의 수강생과 구분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수많은 기업에 원서를 지원했으나, 내가 괘념치 않았던 것들을 한국은 괘념했다. 나에게 면접을 볼 기회를 준 회사는 가장 학력차별이 덜한 S그룹과 역시 학력차별이 덜한 외국계 P&G 뿐이었다. 나는 결국 어렵사리 S그룹에 입사했지만, 이 사회는 내가 괘념치 않는 것을 얼마나 괘념하는지 절절이 알게 됐다.  

 

괘념치 않고 즐겁게 하면, 즐겁게 자신을 닦다 보면 세상이 알아줄 것이란 당연한 명제조차 쉽지 않다는 걸 절감한 내겐 사실, 저자와 같은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까지 관심을 뻗을 여유가 없음을 고백한다. 그런 일이 자신의 미래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많은 아이들 말이다. 나도 사실 어쩌면 그런 아이들 중 하나였는지도 모른 채 살아온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엄습한다. 한 번도 가능성에 스스로를 가둔 적 없이 살아온 내게도 문득 그런 생각이 밀려온다(물론 평생 이를 극복하기 위해 또 즐겁게 전진할 것이지만). 

 

저자의 말처럼 같이 꾸는 꿈도 꿈이 되지 않는다. 저자가 경험한 것처럼, 자신의 가족과 자신의 아이 교육만을 생각하는 한국부모들의 기호에 맞지 않는 이 책은 외면받을지도 모르고, 교육적령기의 아이를 둔 부모가 아니면 자기 한 몸 한 가족 가누기도 힘든 세상에 이런 주제에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아마 이 책을 많이 읽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컨데, 저자가 만약 돈을 벌고자 했다면, 자신이 사교육 일선에서 숱하게 경험했을 성공사례를 모아 누구누구들의 성적 역전기 내지는 누구 엄마의 어느 대학 입성기를 쓰는 게 나았을 것이다. 누가 이런 불편한 진실, 답도 없는 진실에 귀기울일 것인가. 저자도 밝힌 것처럼, 이 책에는 답이 없는데. 


하지만 적어도 문제를 들추어내긴 한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들추어진 문제는 한 번쯤 생각을 해보게 만든다. 생각은 무슨 의미가 있냐고?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한다. 


개천에서 용나지 않는 시대에 고함

정대진 지음, 책마루(2009)


태그:#정대진, #개천에서 용나지 않는 시대에 고함,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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