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신곡동의 마을 북카페 '나무'가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설사 지금의 공간이 없어지더라도, 지역 주민들과 함께 땀과 눈물로 일궈왔던 역사만큼은 흔적을 남기고 싶어 마을카페 '나무'의 6년을 기록합니다.[편집자말] |
코로나19 사태 이후 마을카페 '나무'는 모든 소모임과 프로그램 홍보를 멈추었다. 마을카페를 이용하는 주민 대다수가 학교나 어린이집을 가지 못하는 자녀들을 둔 엄마들이기도 했고, 마침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도 진행 중이어서 개학이 연기되는 기간 동안 아예 문을 닫기로 한 것이다.
주민의 발길은 뚝 끊어졌지만 월세와 공과금은 똑같이 나간다. 들어오는 수입은 없는데 나가는 돈만 있으니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만나서 회의도 할 수가 없다. 힘들 때마다 서로 만나고 돕는 게 마을이고 공동체인데 지금은 아무리 힘들어도 만나면 안 된다. 지금 한국 사회에선 이게 상식이다.
만나야 공동체? 안 만나고도 서로 도울 수 있다
별다른 수입도 없는 마을카페가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건 2월에 꾸린 마을 계모임(일명 나무계) 덕분이다. 대표인 내가 계주를 맡고 마을카페를 포함한 주민 11명이 함께 모여서 총 12좌의 계모임을 꾸렸다.
그렇게 꾸린 나무계의 첫 목돈을 마을카페가 받았다. 목적은 수입이 일정치 않은 마을카페가 조금이나마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이자 없이 돈을 마련하는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론 '코로나19 시대'를 버티는 힘이 되었다.
지난 2월 코로나19 발병이 급격히 확산되면서 매월 말에 모이기로 한 계모임은 지금까지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한 달이 넘도록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있는 운영위원이자 계원인 한 엄마로부터 안부 전화가 왔다.
"집에서 어떻게 지내요?"
"요즘 코로나도 그렇고, 손목도 계속 아파서 애들이랑 집에서 배달시켜먹으며 지내."
종종 아프던 손목 통증이 심해져서 요리도 그렇고 설거지도 제대로 못 하는 상태가 몇 주째 계속되는 중이었다. 얘기를 들은 그 엄마는 한참을 '어떡하냐'며 걱정하더니 친정엄마가 끓여주신 곰탕을 좀 갖다 주겠단다.
"나오지 말고 그냥 집에 계세요. 문 앞에 두고 갈게요."
오랜만인데 얼굴도 볼 수 없다니. 인사는 할 수 없어도 마음은 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싶었다. 냉장고를 뒤져 아이들 간식거리를 담아 미리 문 앞에 두었다.
잠시 후 문 앞에 두고 간다는 연락을 받고 나와 보니 먹거리가 가득 담긴 상자가 놓여 있다. 집으로 들여와 꺼내보니 곰탕뿐 아니라 찐옥수수며 고구마, 만두, 떡볶이, 파김치, 돈가스, 시래기 된장까지 한가득이다. 족히 일주일은 먹을 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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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체가 비대면으로 마음을 나누는 방식 곰탕뿐 아니라 찐 옥수수며 고구마, 만두, 떡볶이, 파김치, 돈가스, 시래기 된장까지 음식을 한 가득 주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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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은성 | 관련사진보기 |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 만나면 안 된다는 말 때문에 마을과 공동체에도 위기가 왔구나 싶었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서로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경험하고 나니 다행이다 싶다.
"어떻게 해주면 되겠어요?" 건물주가 내게 물었다
이참에 건물주가 월세라도 좀 깎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온라인으로 진행한 운영위원회 회의에서 건물주에게 말이라도 좀 꺼내 보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건물주와는 좀체 연락을 주고받는 일이 없는 터라 말 꺼내기가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두달 째 사태가 지속되다 보니 되든 안 되든 말이라도 꺼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 건물에서 우리가 월세를 내며 지내온 게 벌써 7년차 아닌가. 월세를 좀 깎아줄 수 없는지 묻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몇 시간 동안 아무런 연락이 없어서 포기하고 있던 그때, 건물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사장님도 코로나 때문에 힘드실 텐데 이런 문자 드려서 죄송해요."
우리 코가 석 자지만 인근 계곡에서 부부가 함께 식당을 운영하는 건물주도 평소보다 어렵긴 마찬가지일 터. 죄송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어떻게 해주면 되겠어요?"
먼저 이렇게 물어오니 대답하기가 참 난감하다.
"저, 월세를 반만 깎아주시면 안 될까요?"
"50%? 그렇게 해요, 그럼."
아예 못낸다고 했어도 그러라고 할 기세의 말투였다.
"정말 고맙습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해주면 되겠어요?"
"한 달 안에 코로나가 진정되면 다행인데, 만약 계속되면..."
"계속 힘들면 다음 달 가서 또 얘기해 봅시다."
"감사합니다!"
개인과 가정의 고립을 권유하는 현실이지만 우리의 마음까지 거리를 둘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들.
이자도 없이 마을카페를 믿고 곗돈을 맡겨준 주민들, 문 앞에 음식을 놓고 간 이웃, 흔쾌히 월세를 깎아준 건물주까지. 부디 이 사태가 빠른 시일 안에 끝나고 그들 모두에게 얼굴을 마주보고 고맙다는 인사를 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