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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2박 3일(4. 23.~25) 일정으로 공주, 부여 여행을 다녀왔다. 서울 오갈 때 공주역을 수없이 거치기는 했지만 직접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국시대를 공부하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내게는 가깝고도 먼 곳이었다.

퇴직해 시간도 넉넉하니 이제는 남편과 어디든 다니고 싶었다. 평일이라 숙소 예약도 쉬웠다. 첫째 날을 제외한 수, 목 이틀이나 비 예보가 있었지만 우산 쓰고 다니는 것도 추억이지 싶어 걱정하지는 않았다. 첫날은 공주, 둘째 날 부여를 돌고 마지막 날 내려오면서 개암사에 들르기로 계획을 세웠다.

아침에 일어나니 다행히 날씨가 화창하다. 첫 방문지는 계룡산 갑사이다. 고등학생 때 국어책에 수록된 이상보의 수필 <갑사로 가는 길>을 공부하며 절 이름이 정겨워 언젠가는 가 봐야지 했는데 늦어도 한참은 늦었다. 마침 주말(4. 21)에 황매화 축제가 끝났다고는 하지만 꽃은 남아 있을 것 같아 겸사겸사 일정에 넣었다.

주차장에서 갑사 경내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오리 숲길이라고 불러 가축인 오리 모양으로 된 길인가 했는데 5리(2킬로미터)를 의미한다고 해 웃음이 나왔다. 길 양 옆으로 자연스럽게 쭉쭉 뻗은 100년도 더 된 고목에서 이제 막 돋은 연두색 어린잎이 햇빛과 어우러져 눈이 부셨다.

더군다나 축제가 끝나서인지 사람이 별로 없어 한가롭고 평화롭기까지 했다. 그런데 노란 황매화가 기대만큼 많지 않아 축제라는 말이 무색했지만 주변 풍광이 워낙 아름다워 애교로 봐주었다.

갑사는 국보(삼신불 괘불탱)한 점과 보물 여섯 점을 보유한 큰 절이다. 세종의 명으로 수양대군이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기록했다는 유명한<월인석보>(<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쳐서 만든 책)목판(보물 제582호)이 보관돼 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대비해 마당 가득 연등을 빽빽하게 달아 놨는데 대웅전을 감상하는 데 도리어 방해가 됐다.

조용한 산사에 동학사로 넘어가는 등산객들이 시끄럽다. 터는 넓은데 중요한 건축물이 층층으로 자리해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천천히 걸어 용문폭포까지 올라 시원한 물줄기를 보고 내려왔다. 오랫동안 품었던 갈망을 해소해서인지 여기서 하루 일정을 끝내도 될 것 같았다.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다음 장소인 백제 제25대 왕과 왕비의 합장 무덤인 무녕왕릉과 왕릉원으로 향했다. 멀리서 보니 잘 다듬어진 작은 언덕처럼 보이는 무덤의 곡선이 수려하다.

삼국시대 고분 중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고 1500년 가까이 원래 모습을 간직한 채 발굴되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부에 습기와 결로가 생겨, 1997년11월10일 문화재청이 영구 비공개 결정을 내려 관광객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문이 굳게 닫혀 있어 실물은 보지 못했다.

대신 똑같은 크기로 복원해 놓은 모형관에서나마 무덤 안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비록 모형이긴 하지만 실제 무덤에 들어와 있는 듯해 기분이 묘했다. 커다란 봉분 앞에서 사진 찍고 능 주변만 한 바퀴 돌고는 조용한 산책로를 걷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공산성을 거쳐 숙소로 갔다. 저녁에 비가 내렸다.

하루 종일 비가 온다는 예보와는 달리 날이 갠다. 아침 일찍 태안 꽃지 해수욕장에서 '세계 튤립 꽃 박람회'가 있다기에 들렀다 부여 부소산성으로 갔다. 사방이 푸릇푸릇하고 조용한 데다 산책로가 잘 정돈되어 걷기에 좋았다. 흐린 날씨 탓인지 연초록 이파리가 더 선명하다.

'부소'가 백제시대에는 '소나무'라는 뜻으로 쓰였다는데 그래서인지 소나무가 많았다. 새소리를 행진곡 삼아 낙화암에 도착하니 목 뒤로 땀이 흥건하다. 신발을 벗고 백화정에 앉아 백마강과 주변 산을 바라봤다. 시원한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름다운 풍경화가 따로 없었다. 땀을 식히고 고란사에 들러 3년은 젊어진다는 고란 약수를 마시고 느릿느릿 걸어 산성을 나왔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백제 최고의 미학을 보여준다는 정림사지 5층 석탑에서 탁본을 뜨고 있는 전문가들
▲ 정림사지 5층 석탑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백제 최고의 미학을 보여준다는 정림사지 5층 석탑에서 탁본을 뜨고 있는 전문가들
ⓒ 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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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정림사터로 갔다. 보수 중이라며 입장료는 받지 않았다. 저 멀리로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백제 미학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유물, 1962년 국보 제9호로 지정된 정림사지 5층 석탑이 보인다.

넓디 넓은 절터에 탑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가까이 가니 마침 스님과 남자 셋이 1층 탑신부에 얇은 종이를 대고 탁본을 뜨고 있었다. 먼지에 덮여 내 눈에는 띄지 않았는데 자세히 보니 한자가 새겨져 있었다. 석공의 노고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의 전승기 공문인 '대당평백제국비명'이라는 제목의 비문이라고 한다. 문화재청에서 예산을 받아 전국 사찰을 돌아다니며 하는 사업이라고 했다. 문화재 보호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있어 든든했다.

마지막으로 사비 시대에 만들어졌다는 백제의 별궁 인공 연못인 궁남지에 갔다. 연잎 몇 가닥이 떠 있을 뿐 아직은 휑했다. 그래도 연못을 연결한 길이 상당히 길어 산책하기에는 좋았다. 공주와 부여는 유물‧유적이 차로 5~10분, 걸어서 20분 안짝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어 찾아다니기가 쉬웠다.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3>에서 부여 답사는 순서와 시간대를 적절히 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오후 서너 시에 부여 초입에 있는 능산리 고분군을 시작으로 부소산성, 궁남지와 정림사 5층 석탑, 국립부여박물관, 백마강 변의 나성 한쪽에 세워진 불교전래사은비와 신동엽 시비를 보고 나서 임천의 대조사 혹은 외산의 무량사로 향하라고 한다.

순서를 바꾸면 답사의 맛이 반감되거나 황당함을 감내해야 한다고 하는데, 전문가의 말을 무시하고 내키는 대로 다녔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했는데 그만큼의 지식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은 마음으로 느끼고 좋으면 그만이다. 그래도 전문가의 말이니 다음에는 따라해 볼 참이다.

부여 일정을 마치고 둘째 날 숙소인 변산 소노벨 리조트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가까이 있는 채석강으로 나갔다. 해변을 걸으며 일몰을 기다렸다. 부부, 연인, 가족, 단체 관광객도 나란히 앉아 눈을 가늘게 뜨고 수평선을 바라본다. 날씨는 맑았지만 구름이 낮게 깔려 결국 지는 해는 보지 못하고 주변으로 벌겋게 물든 풍경만 사진에 담았다. 그것만으로도 멋지고 만족스러웠다.

2박3일 동안 알찬 여행을 했다. 남들이 한창 일할 때 유유자적 여유를 즐기는 맛도 꽤나 괜찮았다. 퇴직자만의 특권이다. 발길 닿는 곳마다 푸릇푸릇한 초록이 눈과 마음을 정화해 줬다. 우리나라 곳곳 가 보지 못한 아름다운 장소가 많은데 무시하고 다른 나라만 기웃거렸다. 앞으로 도장 깨기 하듯 다닐 생각이다. 어디서든 내가 행복하면 그곳이 천국이다. 거창하게만 생각했던 천국이 바로 내 마음속에 있었다.

태그:#여행, #천국, #행복,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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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수석 교사입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재미있는 사연을 기사로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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