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제주 출신 문화비평가인 오대혁 박사가 백창호 한국전통등연구원 원장과 함께 우리나라 연등회 기원과 변천을 밝힌 신간 <연등문화의 역사>(담앤북스, 2024. 5)를 펴냈다. 저자들은 인도, 중국, 한국으로 이어진 장구한 연등의 문화사를 고문헌, 한시, 가사와 옛 그림 등을 통해 입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저자 중의 한 사람인 오대혁 박사는 동국대학교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하고 설잠 김시습과 <금오신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동국대학교, 서울교육대학교 등에서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쳐 왔다. 현재 한국전통등연구원 연구이사,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 이사, '피앤피뉴스' 논설주간, '제주일보' 논설위원으로 학자이자 시인, 문화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오 박사를 인사동 찻집에서 만나 연등회 역사와 변천에 대한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 연등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어렸을 때 어머니를 따라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있는 '금붕사'라는 절에 다니면서부터 어둠을 밝히는 연등에 대한 관심은 시작되었으리라 보여요. 부처님오신날이면 아이들과 술래잡기 하고 보물 찾기도 하며 놀던 그곳에 사람들의 소원을 적은 연등이 빼곡하게 매달려 있었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고등학교 때 서울로 시험 보러 간다고 하룻밤을 새워 기도하다 나올 때 눈이 가득 쌓여 있던 장면이 연등과 겹쳐 떠올라요. 연등에 대한 관심은 저뿐만 아니라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다 이 글을 함께 쓴 백창호 원장과의 인연으로 이런 책까지 쓰게 된 듯합니다.

백창호 원장은 1989년 대학에 입학하면서 같은 하숙집에서 만난 친구로 벌써 30년이 넘은 인연이죠. 불안한 시대에 불온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시대를 고민하면서 '뚝심'이라는 민중미술 동아리도 함께했습니다. 그러다 한동안 소식이 끊어졌던 친구를 2010년 청계천변 등불 축제하는 데서 다시 만났어요. 친구는 군 제대 후부터 등불 제작을 하다가 아예 전통등연구회(1996)를 만들고 전통등 복원에 진력하고 있더라고요.

친구는 사업체를 만들어 전국을 돌며 밤을 수놓는 등불을 전시하느라 바빴어요. 그러다 친구는 제게 전통등연구원 이사로 연등에 대한 학술 연구를 함께 하자고 했어요. 저도 대학 강의를 하며 <원효설화의 미학>(1999), <금오신화와 한국소설의 기원>(2007)과 같은 책을 낸 고전 연구자였으니, 연등에 대한 책을 내는 데 좋은 벗이 될 것이라 생각했던 겁니다."
 
우리나라 연등회 기원과 변천을 밝힌 『연등문화의 역사』
▲ 연등문화의 역사 우리나라 연등회 기원과 변천을 밝힌 『연등문화의 역사』
ⓒ 오대혁 박사 제공

관련사진보기

 
-  <연등문화의 역사>라는 책을 썼는데 6년이나 걸렸다고 들었다. 그만큼 역작이라 할 수 있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지? 어떤 점을 역점적으로 기술했는지?

"2018년 초에 인사동 대폿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등불에 대한 책을 쓸 계획을 세웠습니다. 백 원장은 그 사이에 몇 차례의 학술 대회를 연 상태였고, 적잖은 분들이 학술적 접근을 시도한 결과물들이 있었기 때문에 대중들을 위한 연등 관련 서적을 내는 데 큰 부담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죠.

연등의 기원이야 많이 알려져 있었고, 중국을 거쳐 한국에 전해진 연등의 역사에 대해서는 대체적인 흐름이 있었기 때문에 대중들이 이해하기 좋게 정리하면 되겠거니 생각하면서, 2~3년이면 충분하다고 장담했죠.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민속학이나 역사로 접근한 연등이 없지 않았지만 개별 논문들이 어느 한쪽에 집중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연등과 관련된 문화사로 전체를 통시적으로 아우르는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종교, 역사, 민속, 예술, 문학 등 연등과 관련된 문화가 너무나 방대하고, 장구해서 그 모든 걸 하나로 꿰어내는 일은 만만찮은 일이라는 것을 서술 과정에서 깨달았어요. 서 말이나 되는 구슬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는데, 2~3년 만에 꿰어낼 재간이 없었어요.

연등 관련 자료들을 일별해 보니 우선 불경에서부터 중문(中文), 한문(漢文), 고문(古文), 국한문(國漢文) 기록 등 언어적 문제가 적지 않았어요. 원문과 대조하며 연구 성과들을 모아내고, 기존에 언급된 자료들을 세밀하게 읽어나가면서 빠진 부분들도 찾아내고 하는 작업을 해야 했어요.

한시 작품들이 꽤 많이 남아 있는데, 문학적으로 접근한 연구는 전혀 없었고, 근대기의 신문들에 널려 있는 연등회 행사 내용들도 찾아내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거기에 연등이 지닌 문화적 의미를 깊이 있게 파고 들어가는 작업은 더욱 힘들었다고 봐야 할 듯합니다.

예컨대 가난한 난타 여인이 연등부처님이 된 사연이 있는데, 그것이 말하는 종교적 의미가 무엇인지, 무속에서는 어떤 이유로 연등불을 밝히는지, 숭유억불의 조선 사회에서 불교 사찰의 연등을 밝힌 경우는 없는지, 제등행렬은 과연 전통에 기반한 것인지 등 기존 논의에서 밝혀내지 못하고 정리하지 못한 내용들이 서술 과정에서 계속 터지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모두 극복해 내야만 '연등문화의 역사'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계속 연구하다 보니 어느덧 6년이 지났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친 후 몇 가지 결론을 내놓았는데, 동아시아에서 연등은 불교뿐만 아니라 무속(巫俗)과 도교(道敎) 등의 종교와 관련이 깊고, 국가 통치자의 권력 과시의 도구로, 서민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도구 등 다양한 형태로 변화해 왔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소원을 담아내는 도구였다는 점에서는 시대와 지역을 관통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죠. 입신과 출세와 같은 세속적 욕망, 정토를 이루고자 하는 발원에 이르기까지 연등은 '소원 도구'라고 썼어요. 그러면서도 연등이 갖는 가장 가치 있고 핵심적인 가르침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난타 여인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것이라고 머리말에 썼습니다.

'연등은 밤을 밝히는 도구를 뛰어넘어 우리 인류가 무엇을 도모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을 훌훌 벗어 버리고 소외된 곳을 밝게 비추고 지혜로써 지구와 인류를 구해 내야만 한다는 것을 연등은 오랜 세월 가르쳐 왔던 것이다.'"

- 일반적으로 연등은 불교문화 유산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연등은 일종의 민속문화라고 한다. 우리 민중의 삶과 연등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연등은 불교문화 유산이기도 하고, 민속문화 유산이기도 합니다. 시절 인연 따라 무속, 도교, 불교 등의 종교적 색채를 강하게 띨 때도 있었고, 종교적 색채가 거세되고 민중의 소원 도구로 민속적 성격만이 남아 있을 때도 있었습니다. 인간의 손으로 불 그릇을 만들어 냈던 역사는 어느 하나로만 규정 내릴 수 없는, 정말 광활한 문화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연등 문화의 역사는 종교의 상징이자 권력의 상징으로, 예술의 대상으로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연등 문화를 민속문화라고 규정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 진술입니다. 연등 문화의 역사는 국가와 권력의 성쇠를 보여주기도 하고, 그런 세계 속에서 연등회며 관등놀이 등에서 소원을 빌던 우리 민중의 삶을 보여주는 테마가 연등이라고 보면 좋을 듯합니다."

- 연등회(燃燈會)는 인도에서 기원한 뒤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전래된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과 인도의 연등회와 우리나라의 연등회가 다른 점은?

"불교적 차원의 연등회를 말한다면, 그 계보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다시 한국으로 이어져 왔다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렇지만 불을 담아내던 등불을 연등으로 보면 각기 다양한 변화와 발전을 거듭했다고 해야 맞습니다.

예컨대 중국에서는 처음에 무속적, 도교적 차원에서 등불을 밝히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태일신(太一神)을 제사 지내기 위해 날이 밝을 때까지 불을 밝히고 관등놀이를 즐기던 때가 있었고, 한 무제(漢武帝) 이르러 불교 의식과 관련을 맺게 되고, 수 양제(隋煬帝)에 이르러서는 불교 중흥과 함께 정월대보름 연등이 밝혀졌습니다.

명나라 때는 도교적이었고, 청나라 때는 불교와 도교를 아우르는 것이었습니다. 근현대 중국에서는 한동안 사라졌다가 개혁·개방을 거치면서 종교적 색채가 탈색된 형태의 등불 축제가 원소절이라 하여 정월대보름에 크게 펼쳐집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속적 성격이었다가 삼국시대부터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불교적 색채가 강해지는데, 고려시대의 팔관회나 연등회에서 볼 수 있다시피 불교와 함께 무속적인 면도 함께 지니고 있었습니다. 연등회가 2월 15일에 펼쳐지다가 공민왕 시절에 와서 사월초파일 불교 축제가 되었습니다.

왕실 중심에서 민중의 풍속으로 변화해가죠. 조선 왕실에서는 연등회를 거행하지 않았지만 민간의 관등놀이나 사찰의 연등회는 계속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불교계 주도의 초파일 행사가 됩니다. 이처럼 시대와 지역에 따라 연등회의 모습은 다양했습니다. 하지만 소원을 담아내는 도구로서의 연등이라는 점은 하나였다고 봐야 할 겁니다."
 
인사동 근처를 지나고 있는 연등행렬
▲ 연등행렬 인사동 근처를 지나고 있는 연등행렬
ⓒ 고창남

관련사진보기

 
- 2020년에 우리나라 연등회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앞으로 연등회가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발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문화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것이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연등회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지만 그렇다고 그 문화의 기원과 변화를 연구하고, 능동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면 죽은 문화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새로운 기획과 실천이 필요하다고 책에는 썼습니다.

연등문화의 교육, 다양한 문화 콘텐츠 개발 등이 필요하고, 수많은 이들이 지혜를 모으고 지속적인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연등 축제가 밤을 밝히는 지자체 행사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만 값싼 중국산 연등을 사다가 화려하게 장식만 할 게 아니고, 화려한 조명기구 이상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만해 한용운은 자신의 시 '알 수 없어요'에서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 그칠 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라고 노래했는데, 여기서 등불은 자신의 욕망을 내려놓고 이웃을 위해 살아가는 보살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연등회를 계승할 수 있을 때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나눔뉴스'에도 같은 내용으로 송고할 예정입니다.


연등문화의 역사 - 인도·중국·한국으로 이어진 등불의 문화사

오대혁, 백창호 (지은이), 담앤북스(2024)


태그:#연등문화, #역사, #변천, #오대혁, #연등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는 철도청 및 국가철도공단, UNESCAP 등에서 약 34년 공직생활을 하면서 틈틈히 시간 나는대로 제 주변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써온 고창남이라 힙니다. 2022년 12월 정년퇴직후 시간이 남게 되니까 좀더 글 쓸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좀더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