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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내가 매달 챙기는 날이 있다. 고등학교 동문산악회모임이다. 여기서 90세부터 30대까지 선후배들이 산에 오른다. 우리 부부도 10년 이상 참가하고 있다(관련 기사: 91세 초고령자의 등산이 안전한 이유, 이들 덕입니다 https://omn.kr/28grv ).
     
매월 둘째 주 토요일은 등산모임에 가든 안 가든, 달력에 제일 먼저 기록하는 날이다. 참가하지 못하면 다른 이들의 등산 후기가 빨리 올라오길 기다릴 정도다.
     
지난 1월 동문산악회 남산둘레길 신년산행에 참가한 우리 부부
 지난 1월 동문산악회 남산둘레길 신년산행에 참가한 우리 부부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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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강조하려는 것은 오랜 등산 이력이 아니다. 우리 부부의 꾸준한 개근(?)과 거기에 얽힌 사연이다. 취미와 운동 삼아 등산하는 부부들이 많지만 우리 동문산악회에서 그런 사례가 흔치 않다는 것이다.
      
산에서 '부부애' 키운 사연
    
아내도 처음엔 산악회 등산을 꺼렸다. 주최 측의 권유가 있지만 동문들 산행에 남편 따라 참가하는 게 쑥스럽고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땐 부부 동반으로 오는 동문들도 없었다.
     
나 또한 아내가 꺼리는 등산을 쉽게 수락할 수 없었다. 일종의 모험으로 느껴졌다. 그때만 해도 나는 아내의 도움으로 동네 야산을 산보하면서 병약한 체력을 다지고 있었다. 내심 건강이 좋아지고 나면 아내와 함께 등산에 도전하고 싶었다.
     
결국 아내가 동의하고 둘이 산악회 등산에 따라가기로 했다. 산행이 힘들면 중도에 하산하고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모든 걱정은 기우였다. 첫 등산에서 나는 산행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마쳤으며, 아내 또한 선후배들의 훈훈한 격려 속에 완등했다.
     
이후 우리는 동문산악회의 고정멤버로 이름을 올리고 점차 '등산마니아'로 거듭났다. 산에서 부부애를 과시하는 데 더해 건강과 행복은 덤으로 따라왔다.
     
이제는 동문들이 나보다 아내를 더 환대하고, 아내도 선후배들을 스스럼없이 동문처럼 대하고 있다. 산행이 있으면 간식을 준비하는 아내 얼굴에 생기가 돈다. 혼자 가는 등산이었다면 지금보다 무료했을 것이다.
     
언젠가 가까운 산악회 후배에게 부인을 대동해보길 권했다. 마지못해 약속은 했지만 난감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 아마 실현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부부 동반이 어색한 사람에게 그것도 동문산행에 함께 참석해보라는 건 애초 힘든 부탁이었다.
     
물론 산악회는 부부참석을 권장하고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더 이상 강요하지 않는다는 불문율도 병존하고 있다.
      
우리 세대만 해도 경조사 등 여타모임에 부부가 함께 참석하는 건 이례적이다. 대부분의 경우 혼자 참석한다. 각자 바쁘기도 하고, 아마도 대부분 부부 동반이 익숙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부부의 날이 내 생일보다 더 소중한 이유 

최근 우리 부부 따라 산악회 후배 한두 명이 아내를 동반해 등산을 시작했다. 동문산악회는 당연히 환영했고, 우리 부부도 형제를 만난 듯 그들이 반가웠다.
     
이달 초 도봉산 산행에는 아내가 피치 못할 선약이 있어 나 혼자만 참가했다. 선후배들은 아내 안부부터 물었다. 아내의 '부존재'를 해명하느라 애먹었지만, 나는 서운하지 않았다.
     
한참 전의 추억이다. 동창모임에 예고 없이 우연히 아내를 대동했다가 친구들의 눈총을 받았다. 일부는 반겼지만 뜨악하는 반응도 있었다. 약속되지 않은 탓이었다.
     
한 친구는 '내가 눈치 없이 행동한다'면서 나를 노골적으로 피했다. 이처럼 부부가 함께 참석하는 걸 불편하고 거북해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남들 눈치를 보던 우리 부부가, 지금은 모임에서 '인싸'로 주목받고 있다(인싸는 '인사이더'라는 뜻으로, 모임에 적극 참여하면서 잘 어울려 지내는 사람을 이르는 신조어). 노년에 접어드니 내게는 부부가 세상의 중심이 되고 있다. 어쩌면 부부 모임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부부모임을 지향하는 편이다. 강제할 수야 없지만 친구들에게 되도록 부부 참석을 유도하고 그런 자리를 만들려 하고 있다. 실제 부부모임은 그렇지 않은 모임에 비해 대화가 더 풍성하고, 한 번이라도 더 만나게 된다. 화제가 그만큼 다양하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나나 아내의 생일보다 '부부의 날'이 더 소중하고 값지다고 여긴다. 생일의 주인공은 한 사람이지만, 부부의 날 주인공은 두 사람이 필요한 탓이다. 부부의 날은 한 사람이 없으면 존립할 수 없는 날이기 때문이다.
 
동문산악회에서 받은 공로패, 우리 부부의 10년 산행을 격려한 것이다.
 동문산악회에서 받은 공로패, 우리 부부의 10년 산행을 격려한 것이다.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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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 부부의 날이 제정된 것은 두 사람의 존재가 가정에서 점차 사라지니 되살리자는 차원일 것이다. 국가기록원 설명에 따르면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의미에서 2007년 5월 부부의 날이 법정기념일로 제정됐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부부는 오랜 노력으로 '부부의 날' 표창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본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아내 덕분에 동문산악회에서 공로패까지 받았다.
     
오늘은 부부의 날이다. 새삼스럽지만 아내에게 더 잘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하게 된다. 그런데 사실은, '괜한 짜증과 잔소리로 염장을 지른다'란 이유로 몇 시간 전 새벽부터 아내에게 핀잔을 들었으니 이걸 어쩌나.

태그:#부부동반, #부부의날, #부부모임, #동문산악회, #도봉산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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