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중국인들이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 조영님
16일. 임기시에서 두 번째 답사하게 된 죽간박물관을 찾아갔다. 아침은 콩국, 계란 후라이, 기름에 튀긴 빵(油條)으로 간단히 해결하고 길을 나섰다. 거리 곳곳에서는 아침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어떤 식당 앞에서는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중국인들은 대부분 아침을 빵이나 면 종류로 대신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가족들의 식사를 챙겨야 하는 한국 아줌마들이 아침에 매식하는 중국인들을 보면 무척 부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박물관은 지난 밤 숙박한 빈관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아침 운동 삼아 걸어갔다. 중국인들은 대개 오전 8시부터 일을 시작한다. 우리가 박물관에 도착한 시간은 8시 20분 경이었다. 토요일 아침 일찍부터 박물관을 관람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는지 박물관의 전시실은 굳게 닫혀 있었다. 담당 직원이 열쇠를 들고 부랴부랴 달려와서 문을 열고 전시실에 불을 켰다. 실내 환기가 안 된 특유의 쾌쾌한 냄새가 났다.

▲ 임기시에 있는 은작산한묘죽간박물관
ⓒ 조영님
은작산 죽간 박물관은 1972년 4월 은작산에 있는 서한묘를 발굴할 때 출토되었던 진귀한 죽간 병서(兵書) 7500여 개와 그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박물관은 1989년에 개관하였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은작산에서 죽간이 출토된 것을 두고 '신중국 30년의 10대 고고(考古)발현 중의 하나'라고 평가하거나 '중국 20세기(100년) 100대 고고(考古) 발현 중의 하나'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것을 보면, <손자병법(孫子兵法)>233편, <손빈병법(孫臏兵法> 222편, <위료자(尉繚子)> 127, <六韜> 228편, <안자(晏子)> 237편 등과 도자기, 목기, 복숭아씨, 밤톨 등이었다.

▲ 박물관의 내부.
ⓒ 조영님
이 중에서 <손자병법>과 <손빈병법>의 죽간 출토는 그동안 중국 역사상 이 두 인물의 실존 여부와 이들이 썼다는 병법의 진위 여부가 깨끗하게 해결되었다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또한 당시의 정치, 경제, 군사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손자와 손빈은 분명히 다른 두 인물이다. <손자병법>은 중국 춘추시대 말기 군사 전문가인 손무(孫武)가 지은 병서이고, <손빈병법>의 저자는 전국시대 군사전문가인 손빈(孫臏)으로 제나라 사람이다. 그는 손무의 후예라고 한다.

손빈의 이름인 '빈(臏)'은 정강이뼈의 뜻을 가지고 있다. 손빈은 제나라의 군사(軍師)가 되기 전에 두 다리가 잘리고 이마에 글자를 새겨 넣는 형벌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러한 이유로 그의 이름에 빈(臏)이 있다고 한다. 손빈은 위나라를 포위하여 조나라를 구한다는 '위위구조(圍魏救趙)' 등과 같은 유명한 전술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그가 저술한 <손빈병법>은 그 후 천 여 년 동안 사라졌다가 1972년 서한묘 발굴시에 다시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손무와 손빈은 각기 다른 두 사람임이 입증된 것이다.

은작산에서 출토된 죽간은 유리병에 넣어 보관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리병에서 나온 죽간을 그대로 본떠 모조죽간을 만들고, 다시 그 죽간에 대한 해설서가 나란히 붙어 있다. 유리병에 들어있는 죽간이 진짜냐고 직원에게 물어보니까 진짜 서한묘에서 출토된 죽간이라고 하였다.

죽간(竹簡)은 말 그대로 대나무에 글씨를 쓴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사용하는 종이가 나오기 이전에 사용했던 것이다. 대나무를 쪼개어서 벌레가 먹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불을 쬐어 기름을 뺀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글씨를 새기는 것이다. 얇고 좁다란 대나무에 깨알 같은 글씨가 쓰여져 있는데 시종 변함없이 글씨체가 똑같다는 것이 경이롭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죽간도 많이 보게 되면 종이처럼 손때가 묻을까?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서걱서걱 소리가 날까? 그래서 가을바람이 주는 서늘함만큼이나 읽는 이의 가슴을 서늘하게 할 수 있을까? 죽간에서도 책을 만든 사람의 품격이 느껴질까?

햇살이 따사로운 여름 한 낮에 책을 펴 놓고 '쇄서(曬書)'를 했을까? 책이 가득한 서고에서 맡아지는 특유의 책 냄새가 날까? 그래서 책을 다 읽지 않아도, 내 책이 아니라도 충만감을 느낄 수 있을까?

태그:#중국, #박물관, #죽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