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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의 소설 중에 1964년에 쓴 <차나 한잔>이라는 단편이 있다.

신문 만화 연재로 단칸방에서 아내와 겨우 먹고 사는 주인공이 연유도 모른 채 자신의 만화가 하루, 이틀 지면에서 빠지게 되자, 직장을 잃게 될까봐 스트레스성 설사병까지 걸려가며 불안한 마음으로 며칠을 전전긍긍한다.

실의에 빠져 폭음을 한 다음날 아침, 평소보다 더 일찍 눈을 뜬 주인공은 그날도 조간신문에 자신의 만화가 실리지 않은 것을 확인하지만 늘 하던 대로 당일치 만화를 그려 신문사로 가져간다. 하지만 불안했던 예상대로 문화부장으로부터 더 이상 만화를 그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문화부장은 주인공에게 '차나 한잔 하러 가자'고 말하는 것으로 '해직 통보'의 운을 에두르며 껄끄러운 상황을 모면하려 하지만 주인공에게 그 말은 곧 '올 것이 왔다'는 암시와 불운의 예고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소설에 빗댄다면 1964년판 직원 해고용 멘트는 '차나 한잔' 이었을 것이니, 그 시절 샐러리맨 중에는 직장 상사로부터 '차나 한잔'하자는 제의를 받고는 적잖이 놀란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라는 객쩍은 생각을 해본다.

얼마 전 신문에서 '어느 날 당신의 휴대폰 메시지에 더이상 회사에 나올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 뜨게 되면'으로 시작하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직장에서 '잘릴 것'에 대비하여 나름의 이런저런 전략을 나열한 내용이었는데 현대판 직장인들의 비애를 엿본 듯하여 처연한 느낌마저 들면서 불현듯, 오래 전에 읽었던 김승옥의 <차나 한잔>이 생각났던 것이다.

아마도 요즘 한국 직장에서는 해고 통보를 주로 휴대폰 메시지로 '날리는' 모양이다. 그 '매섭고 차가운 통보'를 휴대폰 문자로 간단없이 '날려버리는' 2007년의 직장 현실은 상상만으로도 냉혹하고 섬뜩한 느낌이 든다. 세대가 달라지고 문명의 이기가 바뀌니 해고 통보도 이렇게 직격탄으로 날리게 되는 것일까.

혹자는 신세대 직장인답게 어느 날 퇴근길에, 아니면 아침 출근하자마자 '당신은 이제 나오지 말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는다면 오히려 '쿨'해서 좋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소설의 주인공처럼 불길한 낌새에 설사병까지 얻어가며 구질구질 노심초사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지난달 실은 나도 직장에서 쫓겨났다. 1964년 판 '차나 한잔 ' 버전도 아니고, 그렇다고 2007년 판 '휴대폰 문자' 버전도 아닌, 면전에서 '그만 두라'는 소리를 들었으니 시공간을 초월한 '해외동포 면전판'이라고 해야 하나.

그때 받은 충격으로 치자면 해고시키는 마당에도 '차라도 한잔' 나누자는 인정은 고사하고, '휴대폰 메시지'조차도 비길 것이 아니었으니, 분노와 억울함, 수치심, 속은 느낌, 자기 비하감 등으로 몹시 괴로웠다. 그것은 나라는 존재의 '거절과 거부'에 대한 상처와 고통이었다.

내가 더는 필요 없다지 않는가. 나를 쓸모없는 존재라고 밀치며, 방금 전까지 '우리들'의 회사라 부르던 것을 이제 '저희들'의 회사라고 하지 않는가.

<차나 한잔>의 주인공은, 해고 사실을 알리기 위해 '차를 권하는' 행위는 위선이며, 일종의 추파라고 분노한다. 하지만, 내 경험을 놓고 주인공의 표현을 다시 빌려 말하자면, '차나 한잔'은 해고를 통보하기 위한 '회색빛 도시의 따뜻한 비극적' 소품이며, 한국적 인정이 담긴 최선의 배려이자, 최소의 상처입힘이 아닐까.

아, 그 때 내 상사도 김승옥의 소설에서처럼 못할 짓을 하고 있다는 몸짓으로, 어쩌다 악역을 맡게 된 나 역시 괴롭기는 마찬가지라는 듯 겸연쩍어하며 차 한 잔을 권해주었더라면.

실직으로 망연자실한 채 다시금 호구지책을 강구해야 하는 주인공은 취직 부탁을 하기 위해 그 길로 지인들을 찾아 나선다. 구차한 속내를 감추고자 주인공 또한 어쩔 수 없이 '차나 한잔' 하자는 말로 어렵사리 일자리를 부탁하는 운을 뗀다.

마치 직장문화의 코드처럼 구태여 '차 한잔'을 앞세우게 되는 것은 일자리를 잃거나 얻으려 애쓸 때 찻잔 크기의 온기가 머물 때까지만이라도 그 순간을 유예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그런 연유로 인해 다짜고짜 살벌한 해고를 당하고 난 지금, 차 한잔의 여운과 온기가 절실히 그리운지도 모르겠다.

태그:#김승옥, #차나 한잔, #해고, #회사,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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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1992년 호주 이민, 호주동아일보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을 지냈다. 시드니에서 프랑스 레스토랑 비스트로 메메를 꾸리며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부산일보 등에 글을 쓰고 있다. 이민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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