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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16일 사극 <대조영>에서 대조영은 마침내 안시성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며 감동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다. 시청자의 호평이 이어진 그 감동스러운 장면을 만들어낸 중심적인 이들은 고구려 유민들이었다.
 
변변한 무기 하나 없이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고구려 유민의 모습이 한껏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고구려 유민의 손에는 하나 같이 몽둥이가 들려 있었는데,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몽둥이가 아니라 죽창이었다. 얼핏 사극에서는 많이 본 장면이어서 문제 될 것은 없는 듯했다. 많은 사극에서 봉기한 백성이나 민란군이 들고 있는 것은 항상 죽창이기 때문이다. 죽창의 의미를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 너무나 익숙해서 그냥 지나칠 만 하다. 다른 사극이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요동의 안시성 전투에서 이러한 죽창이 등장한 것은 낯설다. 요동은 대나무가 자랄 수 없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유민들이 사용한 대나무는 식대(해장죽)가 아니라 왕대나무다. 아니 기후변화로 대나무의 북방 한계선이 많이 올라갔다는 풍문도 있지만, 원칙적으로 대나무는 차령산맥을 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나무는 최고 추운 달(1월)에 영하 3도인 이남지방에서만 자란다. 이전에는 대개 북방 한계선이 북위 35도에서 형성됐으나, 현재는 북위 36도까지 올라갔다는 연구도 있다. 100년 사이에 50~100㎞ 북진했다. 그래도 여전히 대나무는 휴전선을 넘지 못한다.

 

그렇다면 당시에 전략상 몰래 남부 지방에서 백성들이 대나무를 가져다가 죽창을 만들었을까? 대조영의 책사 미모사가 백제 지역의 대나무를 가져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드라마 상에서 그러한 설정은 없었고, 개연성도 약하다. 아무런 고민 없는 도식화된 연출 탓이다. 이러한 분별없는 대나무의 등장은 <대조영>만은 아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무수히 등장하는 '역사 왜곡'

 

<요코이야기>의 내용에 대한 진위논란이 있을 때 이미 그 책제목에서 허구적임을 알 수 있었다. 원래 제목이 'so far from the bamboo grove'인데, 우리말로 옮기자면 '대나무 숲 저 멀리서'다. <요코이야기>의 배경인 청진에는 대나무가 자랄 수 없다.

 

이순신 장군의 젊은 시절을 그린 영화 <천군>에서 압록강 가에 있는 대나무밭을 묘사했다. 무과에 낙방하고 방황하던 이순신(박중훈 분)이 상업에 뛰어들었는데, 명나라 교역에 나서며 인삼을 압록강 가 대나무 밭에 숨기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압록강에 대나무 밭이 있을 리 없다.

  

드라마 <주몽>에서 죽간(竹簡)이 빈번하게 등장했다. 종이는 AD 105년 후한의 채륜이 만들었다. 고구려 건국은 BC 37년이다. 시대적 배경으로 볼 때 아직 종이가 나타나지 않았을 시점이다. 죽간은 목간의 하나로 길게 쪼갠 것을 줄로 연결하고, 그 위에 글을 써 연락을 취하던 것이다. 목간이 고대 동아시아에서 보편적인 기록 수단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보통 책의 모습은 대나무판을 끈으로 연결시킨 목간 형태였다. 목간에는 대나무 ‘죽간(竹簡)’과 버드나무 등을 사용한 ‘목독(木牘)’ 이 있다.

 

그러나 중국과는 달리 한반도에서는 죽간이 쓰이지 않았다. 국내에서 1975년 경주 안압지에서 처음 발견된 뒤 지금까지 400점이 나왔지만, 죽간은 없다. 2002년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고유어가 향찰로 기록되어 있다고 밝혀진 백제 부여 능산리 출토 사면 목간도 죽간이 아니었다.

   

30여만 점의 목간이 출토된 일본에서도 죽간은 없다. 일본이 고구려, 신라, 백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때, 이는 죽간이 중국과는 달리 만주, 한반도, 왜에서는 쓰이지 않았음을 추측하게 한다.

 

더구나 고구려 강역과 같이 북쪽 지방에서 식대(해장죽)도 아니고, 그렇게 많은 왕대나무를 구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중국에서 죽간이 많이 등장한 것은 아무래도 아열대의 환경 때문일 수 있다. 사극이나 영화에서 잘못 등장하는 죽간은 부여나 고구려가 모두 중국 문화권이라는 인식을 주기에 알맞다. 더구나 드라마에서는 목독(木牘)이 하나도 등장하지 않았다.

 

드라마 <대조영>에서 유민들의 전투 장면에는 고구려나 발해의 위치를 생각할 때 대나무가 아니라 다른 나무를 사용하는 것이 타당했다. 물론 조선시대 성벽에서 고구려 혹은 발해 사극을 촬영하고 있는 상황보다는 별거 아닐 수 있지만 사소한 대나무 관련 소품에도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드라마 <주몽>과 <요코 이야기>, <대조영>은 문화적 왜곡 면에서는 같다고 한다면 지나칠까? 

덧붙이는 글 | 데일리서프라이즈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대조영, #주몽, #죽창, #목간, #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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