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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앙의 샹송 악보와 CD.
 비앙의 샹송 악보와 CD.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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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영병

대통령 각하 / 편지를 드립니다 / 만약 시간이 있으시다면 / 읽으시리라 믿습니다.
수요일 밤까지 / 전쟁에 나가라는 / 징집영장을 / 받았습니다.

대통령 각하 / 난 전쟁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 난 불쌍한 자들을 죽이기 위해 / 이 세상에 있는 게 아닙니다.
화를 내진 마십시오. / 당신에게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 / 난 이미 결정을 내렸습니다. / 탈영하기로.
내가 태어난 이래 / 부친이 사망하는 걸 보았습니다. / 내 형제들이 전쟁터에 나가는 것도 보고 / 내 아이들이 우는 것도 보았습니다.
지금은 무덤 속에 누워 계신 / 저의 어머니는 수많은 고통을 당하셨는데 / 폭탄을 비웃으시고 / 제 시(기자 주 : '무덤 속의 벌레'라는 뜻도 됨)도 비웃으십니다.
내가 전쟁포로(기자 주 : 2차대전)로 있었을 때 / 난 아내를 빼앗겼고 / 영혼을 도둑맞았으며 / 나의 소중한 것들이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 / 문을 닫아걸고 / 죽은 세월과 이별하겠습니다 / 그러고는 길거리로 나서겠습니다
브르타뉴에서 프로방스까지 / 프랑스 전국의 도로에서 / 구걸이라도 하겠습니다 /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하겠습니다
복종하지 마시오 / 전쟁하는 것을 거부하시오 / 전쟁에 나가지 마시오 / 징집을 거부하시오
누군가가 피를 흘려야 한다면 / 당신의 피나 흘리십시오 / 대통령 각하 / 당신은 좋은 전도자이십니다
만약 나를 추적할 생각이라면 / 헌병들에게 알려주십시오 / 난 무기가 없으니 /쏘려면 쏘라고.

보리스 비앙이 생전에 쓴 460개의 샹송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반전가요로 알려진 이 곡은 1954년 2월에 쓰였는데, 당시 프랑스 정치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다.

1954년 2월은 7년 반이나 지속되었던 인도차이나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시기이자(1954년 7월에 전쟁 종료), 알제리독립전쟁이 발발(1954년 11월)하기 몇 달 전이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2차대전 병사였던 보리스, '탈영병의 편지' 쓰다

인도차이나전쟁은 직업군인 중 자원자들이 참가한 전쟁이긴 했어도 이 전쟁으로 프랑스는 2만명의 귀중한 목숨을 잃었다. 프랑스인 다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도차이나전쟁이 시작된 지 반 년도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새로운 전쟁인 알제리전쟁이 발발했다.

알제리전쟁이 징집체제로 치러지면서, 이미 군복무를 마친 젊은이들이 다시 징집영장을 받게 된다. 노래 '탈영병'의 주인공은 2차대전에도 참가했던 사람이다. 직접 전쟁에 참여하면서 전쟁의 허구성을 느낀 '나'는 다시 시작되는 새 전쟁에 나가기를 거부한다.

전쟁은 지배자들의 권력싸움에 지나지 않으며 국민이 거기에 목숨을 바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각성한 시민의 발언이 이 '탈영병'의 가사다. 그러므로 '나'는 용감하게 말한다. "누군가가 피를 흘려야 한다면 / 당신의 피나 흘리십시오." 여기서 당신은 대통령이다. '나'는 전쟁에 나가느니 길거리에서 구걸하면서 모든 이에게 전쟁에 나가지 말 것을 호소하겠다고 강경하게 말한다.

이 샹송가사는 당시 상황에서 문제를 일으킬 만한 소지가 다분했다. 더욱이 비앙이 처음에 발표한 이 노래의 마지막 구절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 구절은 다음과 같다.

만약 나를 추적하신다면 / 헌병들에게 알려주십시오 / 난 무기를 갖고 가고 / 쏠 줄 안다고.

당연히 이 구절은 검열 과정에서 삭제되었고, 비앙은 '무기를 갖고 가고 쏠 줄 안다'에서 '무기가 없으니 쏘려면 쏘라'로 정반대로 바뀐 현재 가사에 만족해야 했다. 자신을 보호할 줄 아는 적극적인 남자가 희생자로 변하게 된 셈인데, 가사 전반을 살리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프랑스 반전가요 중 가장 유명한 '탈영병'은 지금까지도 많은 프랑스인에게 사랑받는 곡이다. 그러나 이 노래의 파문은 끊이지 않고 있다. 1999년 5월 8일 2차대전 종전기념일을 기념해 한 초등학교의 여교장이 학생들에게 이 노래를 부르게 한 적이 있는데, 이 교장은 그 이유로 징계 처분을 당했다.

보리스 비앙의 소설.
 보리스 비앙의 소설.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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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비앙, 그는 누구인가

1920년생인 보리스 비앙은 다방면에서 재주가 탁월한 사람이었다. 비앙은 소설가·엔지니어·발명가·시인·작사가·가수·재즈음악가이자 평론가·트럼펫 연주자였다. 이에 더해 극작가·번역가·시나리오 작가로도 활약했다.

1939년 중앙공과학교에 입학한 비앙은 이후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1940년대에 사르트르, 보부아르 등의 지식인들이 자주 찾던 셍 제르멩 데 프레의 '플로르'와 '두 마고' 카페에 드나들면서 이들과 친분을 맺는다.

비앙은 1946년 <당신들 무덤 위에 침을 뱉으러 가겠소>라는 첫 소설을 베르논 쉴리반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다. 이 연애소설은 다음해인 1947년 베스트셀러가 되지만, 치정사건 현장에서 발견되는 등 발표되자마자 물의를 일으켜 2년 후인 1949년에는 판매금지가 됐다. 또한 이 소설로 인해 비앙은 1950년 미풍양속 훼손죄로 10만프랑의 벌금형을 받는다.

그러나 비앙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죽은 자의 피부는 모두 같다>, <그리고 모든 끔찍한 자들을 죽여야 한다> 등의 제목으로 선정적이고 어두운 소설을 계속해서 발표한다.

필명으로 발표한 이 소설들이 상당한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보리스 비앙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좀 더 문학적인 가치가 있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본명으로 발표된 걸작 <북경의 가을(1947)>, <물거품의 나날들(1947)>, <심장뽑개(1953)> 등은 이렇게 해서 빛을 보게 된다.

셍 제르맹 데 프레를 같이 드나들던 동료 소설가 레이몽 끄뇌가 "현대 연애소설 중 가장 감동적인 소설"이라고 평한 <물거품의 나날들>은 보리스 비앙의 걸작으로 손꼽히는데, 이 소설은 프랑스 20세기 문학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젊은 세 커플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이 소설에서 사랑과 관련된 장면에는 항상 재즈음악이 뒤따른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단순한 사랑소설이 아니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2차대전 후 성행했던 노동의 산업화를 상기시키면서 인간을 기계로 전락시키는 노동조건을 비판한다. 또한 구두쇠 기질이 있는 교회를 비판하는가 하면 당시 프랑스 문단도 가볍게 비판하고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철학자 장솔 파르트르는 작가가 당시 문단을 주름잡던 사르트르를 빗대 형상화한 것이다.

일종의 절망적인 유머 기질을 발휘한 작가는 독특한 언어 사용과 예기치 못한 우스꽝스런 상황 연출, 피아노칵테일이나 폐에 연꽃이 자라는 병 등 비현실적 모드를 삽입해 독자를 자신만의 소설의 세계를 이끌고 간다.

39년의 짧은 생, 그러나 길게 사랑받는 작품들

1950년대에 들어오면서 비앙의 삶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내 미셸과 이혼하고 혼자서 힘든 세월을 보내던 비앙은 1953년 일종의 자서전 형식의 소설인 <심장 뽑기>를 발표한다. 이 소설에서 비앙은 허약했던 어린 시절과 숨 막혔던 모친의 애정을 다루고 있다. 비앙은 12세에 심장관절 발작을 일으키고 15세에 장티푸스를 앓는 등 어려서부터 허약해 모친의 극진한 애정과 간호를 받았다.

그러나 이 소설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 소설의 실패가 비앙에게 준 충격은 컸다. 비앙은 이후 문학을 아예 단념하고 재즈에만 몰두한다. 비앙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더욱 트럼펫을 자주 연주하는데, 심장이 약한 비앙에게 트럼펫 연주는 사실상 자살행위와 같은 것이었다.

1950년대 중반에 들어오면서 비앙의 추락은 더욱 심해진다. 비좁은 하녀 방에서 번역생활로 겨우겨우 생활을 연장해야 했던 비앙은 1959년 자신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당신들 무덤 위에 침을 뱉으러 가겠소>를 고발하면서(책 내용에 충실하지 않고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이유에서였다) 영화 출연자 명단에서 자기 이름을 삭제해 줄 것을 요청한다.

1959년 6월 25일, 이 영화의 시사회장을 찾은 비앙은 영화 시작 후 몇 분 지나지 않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향년 39세였다.

비앙의 작품은 1960~1970년대에 들어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특히 68혁명 당시 영원한 청년을 연상시키는 비앙에게서 자신들의 모습을 찾은 젊은 층이 비앙의 문학을 대대적으로 환영하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비앙의 문학작품과 샹송은 사후 반세기가 넘는 지금까지도 많은 프랑스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비앙의 또 다른 샹송들
야단맞기 위해 있는 게 아니다

(앞부분 생략)…
2
쥘로 친구 녀석 축일날
최상급품인
진짜 보졸레를 마실 수 있는
조그만 술집에 초대했다.
기분이 알딸딸한 상태로 술집을 나왔을 때 갑자기
이 녀석을 집으로 데려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내가 든 과자 만드는 몽둥이를 보고서야 상황을 깨우쳤다.

…(중략)…
3
아내가 이번에는 얼마나 세게 쳤던지
그날 저녁에 나와 내 친구는 죽어 넘어갔고
밤이 되어 자정 무렵 우리는 천국에 도착했다
미스터 성 베드로가
몇몇 선택받은 자의 천국 입장을 허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제재를 당했고 성 베드로가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우리는 야단맞기 위해 있는 게 아니다
우리도 성인의 후광을 얻기 위해 왔다
우리를 되돌려 보내지 말아다오
우리는 이미 사자가 되었으니 지금 즐기지 않으면 언제 즐길 것인가
만약에 술주정꾼을 들여보내지 않는다면
천국에 남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소
잘 지내시오, 우리는 사라지겠소
그리고 우리는 사탄의 집으로 내려갔는데
거기는 아주 살만했다!...

…(아래 생략)

진보의 애가

옛날에는 여자의 환심을 사려면
사랑에 대해 얘기했고
사랑의 강렬함을 증명하기 위해선
자신의 심장을 제공하면 되었다
오늘날은 그게 아니다
변하고 또 변하는 상황
사랑하는 천사를 유혹하기 위해선
그녀의 귀에 대고
이봐... 언니!... 와서 키스를 해주어... 그러면 아래의 것들을 줄게.


냉장고
근사한 스쿠터
원자믹서기
돈로필로 메트
유리로 된 오븐이 있는
레인지
수많은 식기와
과자 푸는 삽
소스를 만드는
회전기
냄새를 잡아먹는
근사한 통풍기
따듯하게 데워지는 시트
와플형 권총
이인용 비행기
그러면 우리의 행복은 보장될 것이다.

…(아래 생략)

(샹송 번역: 한경미)


태그:#보리스 비앙,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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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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