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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6일. 그날은 베트남전 당시 최대의 한국군 민간인 학살 사건인 '빈안 학살' 이 일어난 지 42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학살 사건이 일어난 빈딩성 떠이선 현 떠이빈 사 고자이 촌에는 각기 계층의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들었습니다.

 

지역인민위원회 인사들은 물론, 지역 촌로와 청년들, 게다가 때묻지 않은 웃음을 가진 어린아이들까지 뙤약볕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았습니다. 오후 3시쯤 슬픈 내용의 음악이 연주됨과 동시에 위령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위령제 동안 저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고, 또 아무말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죄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시 제 삶의 터전으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지내고 있는 곳은 빈딩성의 성도(省都)인 뀌년(Quy Nhon)시 입니다. 과거 맹호부대의 주둔지가 있던 곳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전쟁을 기억하는 베트남 사람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대부분이 한국군에게 호의적이지는 않습니다. 내 입장이 난처해질 것을 아는 모양인지, 과거 한국군이 많은 민간인을 학살한 것을 알면서도 저에게 대놓고 이야기하지는 못하는 베트남 사람들입니다. 아마도 우리가 일본 친구들에게 일제강점기의 잘못을 따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겠지요.

 

 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이 굳이 따지지 않아도 저는 늘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1966년 학살이 일어난 그 자리에는 380명의 영혼을 위로하는 탑이 떡하니 서있고, 베트남 정부가 발간한 어느 자료집에는 여러가지 증거, 증언들과 함께 그것이 한국군의 죄악임이 명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정말 한국군이 죽인 것이냐고요, 베트남 정부의 음모가 아니냐고요, 혹여 맞다하더라도 우리가 먼저 사과할 필요가 있냐고요, 그리고 죽였다 하더라도 우리를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냐고요.

 

이 모두가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정확하다고도 말할 수도 없습니다. 한 때는 저도 이에 집착했으니까요. 분명한 것은 한국군에게 가족을 잃은 사람들, 죽음의 현장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 곳 베트남에는 꽤나 많다는 것입니다.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게다가 그분들은 베트남 사회에서도 약자라는 사실입니다.

 

 빈안학살이 일어난 고자이 마을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곳은 빈딩성 중심지 뀌년에서 1시간 넘도록 가야하는 곳입니다. 대중교통은 현 중심지로 들어오는 버스가 전부입니다. 그래서 택시기사들도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가는 곳이 그곳입니다. 
 

 고자이 마을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몸이 성한 곳이 없습니다. 게다가 아프더라도 진료받을 곳이 마땅찮습니다. 그렇다고 저멀리 뀌년으로 가는 것은 이분들에게는 일종의 큰일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앓고만 계십니다.

 

그런데 이번에 한 줄기 단비가 내렸습니다.

 

베트남평화의료연대란?

  

베트남평화의료연대는 치과의사, 취위생사, 한의사, 의사 등이 모인 단체입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사죄하고 이 땅의 평화를 염원하는 단체들과 연대하여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2000년부터 매년 학살이 자행되었던 베트남 지역에서 의료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베트남 청년 초청 사업'을 통해 베트남 청년을 한국에 초청하여 1년간 NGO 교육 및 한국어 교육을 하고 있으며, 베트남 '연락사무소'를 설치하여 상시적으로 베트남과 한국의 활동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활동을 도와주는 베트남의 '굿윌(GOOD WILL)'이라는 단체와 한국의 '나와우리','평화박물관' 등과 연계하여 평화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후로도 베트남을 넘어 평화를 위해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꾸준히 노력할 것입니다.

베트남평화의료연대(이하 '진료단')에서 이곳 빈딩성을 찾기로 한 것입니다. 24일부터 28일까지 5일간 54명의 일꾼들이 고자이 마을 근처의 지역 병원에서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진료합니다. 

 

치과의사를 비롯하여 치위생사, 치조무사, 치과기사 등과 함께 한의사 분들도 참여하여 각기 치과진료와 한방진료를 맡을 예정입니다.

 

 사실 진료단의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00년부터 매년 베트남 중부를 찾아 진료를 해오다가 2005년부터는 이곳 빈딩성 떠이선현에서 활동해왔습니다. 올해가 아홉번째로서 진료단 9기에 해당합니다. 

 

이 중에는 매년 자비를 들여서 베트남으로 진료를 하러 오시는 분들도 없지 않습니다. 150여 만 원을 들여 제대로 된 관광 한번 못하고 돌아가는 것이 억울하지 않겠습니까마는 그분들에게 진료단의 일은 꼭 해야하는 일이나 다름없습니다.    

 

작년에 왔던 진료단 참가자와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이 저의 뇌리에 남습니다.

 

"저희 선생님들은 이 일을 '봉사'라고 부르지 않고, '사죄'하러 왔다고 말합니다."

 

썩은 이 하나를 뺄 때마다, 혹은 침 한 번을 놓을 때마다, 이 곳 어르신들의 마음속에 있는 응어리와 한도 조금씩 풀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태그:#고자이마을, #민간인학살, #빈안학살, #떠이선, #맹호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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