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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냉장고에 있던 멜라민 검출 과자. 다 먹고 얼마 안 남은 상태다.
 우리집 냉장고에 있던 멜라민 검출 과자. 다 먹고 얼마 안 남은 상태다.
ⓒ 김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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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중국산, 이제는 지겹습니다. 예전엔 몇 달에 한 번이던 것이, 이제는 며칠에 한 번씩 중국산 제품에서 건강 위험 물질이 검출됐다는 뉴스를 보게 됩니다. 어제(30일)는 매년 우리집 제사상에 올렸던 과자에서 멜라민이 나왔다고 합니다.

"아빠, 뉴스 봤어? 그 과자 말야! 우리가 항상 제사상에 올리던 거잖아."
"응, 아빤 얼마 전까지 먹었던 건데! 아직도 냉장고에 있어."
"빨랑 버려~!"

좀 잠잠하다 싶으면 다시 한 번씩 터져서 가슴 철렁이게 만드는 중국산. 하지만 그렇다고 중국산과 영영 이별할 자신은 없습니다. 집에 있는 물건 반은 버려야 하고, 시장에서 살 수 있는 물건도 얼마 없기 때문이죠. 원산지를 꼼꼼히 따져서, 중국산은 되도록 먹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싼게 비지떡, 중국산 의류서 발암물질 검출

그런데 얼마 전, 저를 또 한숨 쉬게 만든 뉴스가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중국산 의류에서도 발암 물질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인터넷 쇼핑몰 제품 중에 중국산이 무척 많다는 보도도 함께였습니다.

지난 10월 7일 <한겨레>가 AFP를 인용 보도한 것에 따르면 중국에서 수입한 짝퉁 명품 이탈리아 구두에서 발암물질인 '6가 크롬'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이에 앞서 9월말엔 프랑스 가구 수입판매업체인 '콩포라마(Conforama)'가 수입해 프랑스와 스위스 등에 판매한 중국산 소파에서 알레르기성 피부질환을 일으키는 항균성 화학물질이 발견돼 이 소파를 사용한 수백명의 유럽인들이 피부질환에 걸리기도 했고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산 옷이 더 많은 제게는 과자에서 멜라민이 검출됐다는 뉴스보다 더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음식처럼 여태 잘 입던 옷을 그냥 버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소비자들이 인터넷 쇼핑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저렴한 가격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인터넷 쇼핑몰은 10대~20대 소비자들이 주로 애용합니다.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88만원 세대인 제게도 가격은 중요합니다. 싼 물건이 많다는 인터넷쇼핑몰 2군데만 들어가 봐도 티셔츠 하나에 천원도 안 하는 곳이 부지기수입니다. 싸다고 샀는데 싼 게 비지떡이다 못해, 건강까지 위협할 줄은 몰랐습니다.

원산지? 중국산이 질이 좀 떨어진다는 생각했던 것이 전부입니다. 때문에 일부러 원산지를 찾아보거나 중국산을 꺼리는 일도 별로 없었습니다. 최근 '패스트 패션(fast fashion : 유행에 따라서 빨리 바꾸어서 내놓는 옷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 유행이라던데, 아마도 몇 번 입으면 늘어나거나 유행 타는 옷을 파는 저렴한 쇼핑몰들이 한 몫 했을 것입니다.

원산지 미표시 의류들, 너흰 어디서 태어났니?

왼쪽 두줄과 그 위의 겉옷은 원산지 미표시 상품, 가운데는 국산, 오른쪽의 코트와 옷 두 개는 중국산이다.
 왼쪽 두줄과 그 위의 겉옷은 원산지 미표시 상품, 가운데는 국산, 오른쪽의 코트와 옷 두 개는 중국산이다.
ⓒ 김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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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고난 며칠 후, 쌀쌀해진 날씨 탓에 옷장 정리를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과연 내 옷에 중국산이 몇 개나 있을까?'

옷장 속 옷들 중 온라인에서 산 옷들만 골라서 세어봤습니다. 전체 의류 35벌 중 국산 12벌, 중국산 2벌이었습니다. 생각보다 중국산 옷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럼 나머지는? 21벌 모두 원산지 표시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옷들은 대부분 저렴하게 샀기 때문에, 중국산이라는 의심이 떨쳐지지 않았습니다.

'이래도 되는 거야?'라는 의문이 퍼뜩 들더군요. 그러고서는 전화기를 들어 소비자원에 문의해 보았습니다. 소비자원에서는 지식경제부에, 지식경제부에서는 기술표준원에 문의하랍니다. 계속 돌아가는 전화에 지쳐갈 무렵, 다행히 기술표준원 생활제품 안전과에서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담당 직원의 답변은 놀라웠습니다.

국내산이든 외국산이든 의류에 대한 원산지 표시는 필수라고 합니다. 그리고 직원이 알려준 대외무역법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이를 위반하는 자는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담당 직원에게 '어느 곳에 고발을 할 수 있는지'를 물었더니, "관할 구청이나 관련기관에 고발은 가능하다, 시청과 구청에 관련 과들이 다 있다 문의해 봐라"라고 답변해줄 뿐, 구체적으로 어떤 과가 이 일을 맡고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또 '사례가 있느냐'란 물음엔 "있겠죠"라고 답해, 한동안 제 말문을 막히게 했습니다.

이번엔 지인들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모두 온라인 쇼핑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산 물건 중에 중국산과 공산품, 미표시 상품을 조사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한 친구(홍현진·25)는 인터넷에서 구매한 옷 40벌을 살펴본 결과, 국산 17개, 중국산 2개 표시 없는 것들이 21개였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친구의 옷장도 저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음식에 원산지 표시가 잘 되는 것과 비교해보면, 의류의 원산지 표시 관리는 엉망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의류 또한 음식만큼 우리와 떨어질 수 없는 생활필수품인데 말이죠. 게다가 중소형 온라인 쇼핑몰 중에는 원산지 표시를 해놓은 곳은 거의 없습니다. 소비자가 쉽게 중국산을 가려낼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다행히 대형 온라인 쇼핑몰은 대부분 표시를 해놓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지인(김자영·26)은 인터넷으로 원산지 품목을 확인한 결과, 자신이 산 36개 가운데 국산은 총 29개, 중국산 7개였다고 합니다.

조금이라도 싼 걸 찾을 수밖에 없는 서민들

대형 쇼핑몰에는 이와 같이 원산지 표시가 되어있다.
 대형 쇼핑몰에는 이와 같이 원산지 표시가 되어있다.
ⓒ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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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옷을 살 때도 원산지까지 꼼꼼히 따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아픕니다. 물건 사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기사가 나간 후에도 정부에서는 아무런 대응 방안을 내놓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불안하기만 합니다. 그렇다고 지천에 널린 중국산 옷을 안 살 수도 없고요. 아마 나중에는 그러려니 하고 아무 것이나 사버리게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중국산 의류 전부가 발암물질이 함유된 것은 아닙니다. 발암물질 함유 양이 치명적인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앞으론 중국산 옷을 살 때마다 꺼림칙한 기분을 떨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사자마자 세탁기로 직행해 한번 빨고 난 후에 입어야겠지요.

예전에 KBS <미녀들의 수다>에 나왔던 중국인 채리나의 말이 생각납니다. 그녀는 중국산 제품은 왜 자꾸 말썽을 일으키는지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사람들이 싼 것만 찾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중국에도 비싼 물건은 좋다면서 말이죠.

하지만 건강을 위협하는 제품이 판매되고 있으면 정부가 앞장서 막아야 합니다. 소비자는 구매 선택권의 폭이 크지 않고, 서민들은 어쩔 수 없이 조금이라도 더 싼 것을 찾게 마련이기 때문이죠. 소비자들에게 최소한의 건강을 보장해줘야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 아닐까요?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저는 오늘도 어쩔 수 없이 원산지보다 가격을 따져가며 옷을 사고 있습니다.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듭니다.


태그:#중국산 , #의류, #온라인 쇼핑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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