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06년 5월 12일부터 25일까지 전국 초등학교 5, 6학년, 중학교 1, 2, 3학년, 고등학교 1, 2, 3학년 2352명을 대상으로 건강사회를 위한 보건교육연구회(현재 사단법인 보건교육포럼) 등 교육시민단체가 학생 건강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2352명 중 무려 39.4%가 술을 마셔보았다고 답했고, 고등학생의 경우에는 68.2%가 마셔보았다고 답했다. 특히 술을 마신다면 그 장소가 어디였는지 묻는 질의에 우리집(39.5%), 친구집(35.3%), 술집(19.6%), 노래방(4.3%), PC방 및 비디오방(1.3%) 순으로 답하였으며, 이 응답자 중 초등학생은 무려 88.3%, 중학생은 59.9%가 우리집이라고 답했다. 맞벌이 부부 가정이 늘면서, 어른들이 없는 집에서 술을 마시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술을 마셔보았다는 고등학생의 32.9%는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고 답해 유해환경에 대한 접근성이 용이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주에 대해 배우는 보건 수업 시간, 1학년 남학생들을 상대로 술 문화를 알아보니, 더 큰 문제가 술을 어른들에게 배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명절 때, 가족 행사 때, 남자는 술을 마셔야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아버지께, 할아버지께, 집안 어른들께, 심지어는 선생님께 술을 배웠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단 한번이라도 술을 마신 적이 있는 학생을 조사해보니, 반마다 두 세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술을 마셔봤다고 답한다.

최근 2주내에 술을 마신 적이 있는지 물어보니, 학급마다 편차는 있지만, 대략 3-5명이 "예"라고 답한다. 아이들을 상대로 알콜 중독 자가 진단표를 가지고 즉석 조사를 해보았더니, 놀랍게도 학급에 1-2명 정도가 이미 알콜중독 위험 수준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술의 해로운 점을 물었더니 답변이 척척이다. 알콜 중독의 증세도 전문가처럼 세련된 언어로 포장할 줄만 몰랐지, 개념만 들으면 거의 완벽한 답안을 쏟아낸다. 그런데, 20살 이후 성인 대접을 받는 때가 되면, 술을 마시겠는지, 아니면 마시지 않겠는지 묻자 한 학급 대략 35명 중에서 4-5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술을 마시겠다는데  번쩍 손을 든다.

사회 생활에 이로울 것 같아서, 분위기를 좋게 할 수 있어서, 어색한 사이여도 금세 친해질 수 있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어서, 잊고 싶은 기억들을 지울 수 있어서 술을 마시겠다는 대다수의 아이들, 그리고 종교적인 이유로, 술이 건강에 해로우므로, 맛이 없어서, 술을 마시면 나를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극소수의 아이들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보건교육과정 고시>
O 2009년
- 초등학교 5,6학년, 중학교 1개 학년, 고등학교 1학년 연간 17시간 이상 의무적으로
  보건교육 실시
O 2010년 이후
- 초등학교 5,6학년 연간 17시간 이상 의무적으로 보건교육 실시
- 중학교, 고등학교 선택과목으로 보건교육 실시 
※ 개정 학교보건법은 2009.3.1부터 초·중·고 의무교육 강제

한 조사에 따르면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이  21조에 육박하고 있단다. 엊그제 발표한 4대강 살리기 사업에 약 22조가 투입될 것이라고 하여 비용만으로도 찬반 의견이 분분한데, 거의 동일한 비용을 술에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담배, 술 금지에 관한 여론이 높아지면서, 그동안 교과부는 관련 교과목에서 금연, 금주 교육을 강조해왔다고 했지만, 막상 학생들은  앞으로 술을 마시겠다는 데 힘을 싣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보건 교과목을 설치하여 체계적인 보건교육을 실시해온 미국의 경우, 보건교과서의 상당 부분을 자아존중감과 거절 등 의사소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제로 많은 연구 보고서에서 술, 담배, 마약 등을 상습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의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자아존중감이 낮다는 결과가 나타났는데, 보건교과서를 통해 자아존중감이 약할수록 술, 담배, 마약에 빠져들기 쉽다는 것을 가르친다. 술, 담배, 마약 앞에서 자신의 자아존중감을 생각할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안타깝다 못해 비극적이다. 어른들이 앞장서서 아이들의 자존감이 길러지기도 전에 술을 권하며, 술을 마셔야 할 당위성을 가르친다. 그러니 정중하게 거절하는 의사소통법을 가르치는 데도 미온적이다. 성적을 올리고, 좋은 진로를 결정하는 데는 집중하고 있지만, 막상 미래 세대를 짊어질 아이들의 건강은 제쳐두고 있는 것만 같다.

일부학교에서는 학교보건법과 보건교육과정 고시에 따라, 2010년부터 중․고등학교에 선택과목으로 설치되는 보건 과목을, 법을 무시하고, 아예 학생들에게 선택과목으로 소개도 안 하고 있고, 교육당국은 조사를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안하는 것인지, 손을 놓고 있는 것 같다. 학교 자율화로 교육과정이 탄력적으로 운영될 것이란 말만 되풀이하고 있으니, 할 말조차 잃는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학교보건, #보건교육, #보건교과, #보건교육포럼, #금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