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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검찰은 국민의 근심거리를 넘어 분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는 검찰개혁운동을 벌였고 몇 가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제 다시 시민들과 함께 제2의 검찰개혁운동을 시작할 때입니다. 많이 알면 알수록 검찰개혁운동은 더 풍성해지지 않겠습니까? 대검 중앙수사부를 비롯해 과거 검찰의 잘잘못을 되돌아보고, 검찰개혁을 둘러싼 시도와 검찰(법무부)의 저항의 사례를 하나씩 하나씩 소개합니다. 그 두 번째는 대검 중수부의 '굴욕' 중의 하나입니다.

'깃털'만 건드렸다는 1997년 대검 중수부의 '한보그룹 수사'

대검 중수부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소리를 듣는 곳이다. 요즘은 덜 그렇지만 과거 대검 중수부의 위세는 대단했던 것 같다. 과거 일간지 기사 중에는 어느 고위 공무원이 대검 중수부 소환 조사를 받다가 바지를 실례를 했다는 일화까지 소개된 적도 있다.

그러나 대검 중수부에도 '굴욕'은 있다. 정치권의 눈치를 보아 수사를 세칭 '말아먹은' 것은 흔한 '굴욕'이지만, 수사잘못 때문에 중수부장이 중간에 교체되어버리는 보기 드문 '굴욕'도 있었다. 바로 1997년 연초에 중수부가 수사한 '한보그룹 사건' 때문이다.

IMF구제금융 사태의 포문을 연, 즉 대기업 연쇄부도 사태의 출발은 한보그룹(회장 정태수)의 부도였고, 그 배경에는 수 조원에 이르는 부당-특혜 대출이 있었다. 정상적인 대출심사였다면 은행으로부터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수 년 동안 대출받아 기업을 확장하던 한보그룹이 무너졌다. 1997년 1월 부당대출, 특혜대출의 배경을 수사하기 위해 대검 중수부가 나선 것이다. 부당특혜대출의 배경으로 수많은 정치인, 특히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가 지목되고 있었다.

당시 중수부장은 지금 한나라당 국회의원인 최병국씨다. 대검 중수부의 수사결과 발표에서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가 쏙 빠져있다는 점, 그리고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의 진술에 거의 의존하는 수사로 인해 부정한 돈을 주고받은 정치인에 대한 수사가 반쪽짜리였다는 점, 여권과 야권 정치인에 따라 적용 법률이 달라 야권 인사에게 중한 범죄혐의를 적용했다는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1997년 1월 27일 시작해 2월 19일에 한보그룹 정태수 총회장 등 9명을 구속기소한 이 사건에 대해 당시 <국민일보>의 기사를 일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한보' 사건 24일만에 일단락
<국민일보> 1997-02-19
의혹의 「몸통」 못 벗긴 「미완의 수사」/정권실세·야 부총재·장관 등 구속 불구 "미흡" 여전/정태수씨 「입」 너무 의존… 주연과 조연 바뀐 형량 의문

지난달 27일 시작된 한보수사는 24일만인 19일 정태수 총회장 등 9명을 구속기소하는 선에서 일단락됐다. 단군 이래 최대의 비리의혹을 불러일으킨 이 사건은 그러나 정·관계에 대한 수사성과가 기대에 못 미쳐 「미완의 수사」로 불릴 수밖에 없게 됐다.

수서택지특혜분양 사건처럼 다음 정부에서 다시 불거질 소지가 남아있는 셈이다. 특히 이른바 「깃털론」을 제기해 자신의 억울함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신한국당 홍인길 의원의 경우에서 보듯 깃털의 배후에 대한 수사가 미진한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검찰은 이번 사건의 최대 배후라고 야권에서 줄기차게 주장해온 김현철씨가 18일 오후 뒤늦게 야권인사들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시키자 이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구속한 정치권 인사들은 모두 검찰 자체 수사에서 「인지사건」으로 처리한 반면 현철씨의 경우 굳이 고소장을 접수하고 수사하는 자체가 미덥지 못하다. (중략)

검찰수사의 가장 큰 맹점은 무엇보다 50여 박스에 이르는 막대한 분량의 장부 등을 한보로부터 압수하고도 이를 수사에 적절하게 활용하지 못한 채 정태수 총회장의 입에 의존하는 수사를 진행한 것이다. 이 때문에 정씨로부터 미운털이 박힌 인사들의 경우 「표적진술」의 대상이 되는 등 수사가 전체적으로 균형을 잃었다는 지적이다.

부실수사 비판 받던 최병국 중수부장 교체, 새 중수부장이 재수사해

이 사건 수사를 비판한 용어였던 '깃털론(몸통은 수사하지 않고 깃털만 수사했다)'은 한동안 유행어가 되었다. 2월 말 수사결과를 발표한 최병국 중수부장은 1개월 후 '잘렸다'. 검사의 보직임명권을 가진 청와대에서 그를 자른 것이다. 최 중수부장은 인천지검장으로 가고 인천지검장으로 있던 심재륜 지검장이 중수부장으로 발탁된 것이다.

국민들과 야당에서는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씨 등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계속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기존 중수부가 맡아서 제대로 될 수 없다는 비판을 당시 임기말 레임덕에 빠진 청와대의 상황에서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수부장 교체를 보도한 1997년 3월 22일자 <경향신문>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갈다.

새 칼로 '소산 암초' 돌파... 대검 중수부장 왜 바꿨나
<경향신문> 1997-03-22
"현 수사팀은 신뢰회복 불가" 판단/김 검찰총장 거취도 주목 대상

정부가 한보수사 책임자인 대검 중앙수사부장을 전격 교체한 것은 국민적 신뢰를 상실한 현재의 수사팀으로는 김현철씨 수사를 매듭짓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청와대의 한 당국자는 21일 『수사검사가 PK(부산·경남)이고 공안출신이라고 못 미더워하는 만큼 국민신뢰를 얻기 위해 교체가 불가피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정부의 고위인사도 『지금은 김현철씨에 대한 수사를 빨리 매듭짓고 경제살리기에 나서야 하는 시점』이라고 강조하고 『국민적 의혹을 남지기 않고 수사를 매듭짓기 위해서는 수사팀의 교체가 선결조건』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수사팀에 대한 누적된 불신을 그대로 둔 채 김현철씨라는 덫을 극복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또 김현철씨 의혹을 사실 그대로 적나라하게 밝힌다는 정면돌파 방침을 세운 만큼 구태여 신뢰성을 상실한 현재의 수사팀에게 다시 맡기는 「부담」을 안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이하 생략)

중수부장 교체는 지금 더 필요한데...

이렇게 1997년 대검 중수부는 '굴욕'을 겪었다. 중간에 수사진이 교체되는 흔하지 않은 굴욕이었다. 이웃 일본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일본에서 '미스터 검찰'이라 불린 요시나가 유스케라는 이가 있다. 그는 일본 검찰 특수부의 얼굴로, 1976년 록히드 사건 당시 도쿄지검 특수부 주임검사를 맡아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를 구속시킨 인물이다.

그런데 1993년 일본 검찰이 정치뇌물사건인 사가와규빈(佐川急便)사건에 연루된 정치실세 가네마루 신(金丸信)을 약식기소하는 데 그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자 일본 국민들은 검찰의 수사를 비판하면서 '미스터 검찰' 요시나가를 검사총장(한국의 검찰총장)으로 불러냈고 결국 가네마루는 구속기소됐다.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한 수사일 경우, 재수사를 위해서 새로운 수사진을 구성하고 기존 수사책임자를 경질하는 것은 지금도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천신일 회장 등 세무조사무마로비 사건, 기획세무조사 등 각종 의혹이 산적해 있지만, 이를 전혀 건드리지 않은 이인규 중수부장 체제를 대다수 국민들이 신뢰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태그:#대검중수부, #이인규, #검찰개혁, #앗검찰에게이런일이,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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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는 정부, 특정 정치세력, 기업에 정치적 재정적으로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합니다. 2004년부터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 특별협의지위를 부여받아 유엔의 공식적인 시민사회 파트너로 활동하는 비영리민간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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