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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요즘들어 부쩍 횟수가 늘고 있습니다.

 

밥은 먹었느냐, 오늘 끝나고 뭐 할 거냐 등등 사소한 일들을 물으십니다. 이렇게 자주 전화하시는 분이 아니신데, 이상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처음 발령을 받았을 때는 집 근처의 보건지소로 왔기 때문에 아버지를 자주 뵐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이것저것 하는 일도 많고 아버지도 바쁘시다보니 몇 달이 지났는데도 1-2번 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아버지를 뵙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많이 늙으셨더군요. 나름 경상도 사나이이신지라 크게 외롭다거나 아프다는 말씀을 하시는 분이 아니라서 몰랐는데, 아니 알고는 있었지만 괜히 눈치채고 싶지 않아서 모른 척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많이 늙으셨습니다.

 

' 요즘 심심해? 왜 이렇게 자주 전화를 하십니까--;' 하고 아버지께 물었더니 ' 아빠 심심해. 좀 놀아줘' 하십니다.

 

덜컥 하고 가슴 한켠이 내려앉습니다. 아버지도 외롭다는 것을 아버지도 심심하다는 것을 저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로 쭉 혼자 계셨을 아버지인데, 형이랑 누나랑 저 모두가 고향을 떠나서 일을 하고 있어서 고향에 혼자 계신 아버지인데 바쁘다는 핑계로 아버지도 외로워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모른척 하고 있었습니다.

 

외로워서 담배를 피우신다는 할아버지

 

보건지소를 자기 집처럼 드나드는 분이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꼭 보건지소에 오시는 분인데, 차트를 가득 매우고 있는 할아버지의 진료기록에는 갖가지 병들이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감기는 물론이거니와 관절이 아파서 오시기도 하셨고 입맛이 없다거나 머리가 아프시다거나 배가 아파서 오신 적도 있었습니다. 또 얼마 전에는 특별한 증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당뇨나 고혈압 검사를 받기 위해서 보건지소로 오시기도 하셨습니다.

 

환자가 많지 않은 보건지소이기 때문에 그렇게 바쁠 것도 없고 환자가 밀려있는 경우도 거의 없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오시면 이것저것 이야기를 들어드리고는 합니다. 물론 모든 이야기를 다 알아들을 수는 없습니다. 사투리도 심하고 가끔은 술도 드시고 오시기 때문에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끊으셨다는 담배를 다시 피운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건강을 생각해서 담배를 끊으신지 10년이 넘게 지나셨다는데 요즘 들어서 다시 또 하루에 2갑이상 담배를 피우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 담배를 왜 그렇게 많이 피우세요. 건강 생각하셔서 끊으셔야죠."

"끊었지. 근데 이제는 이거 외로워서 피우는 거야. 혼자 사는데 이거라도 있어야지. 우리 애들도 외로워서 피우는 거 아니까 끊으라고 못하더라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고향에 혼자 남아서 농사를 짓고 계신다는 할아버지에게 건강을 생각해서 담배를 끊어야 한다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조금 줄이시라고 할 수밖에요.

 

그러고 보면 작은 시골 마을인 이곳에는 젊은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대개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 둘이 사시거나 그마저 한 쪽이 일찍 돌아가신 분들은 혼자서 지내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분들에게도 저 같은 자식들이 있다지만 다들 저처럼 바쁘다는 핑계로 아니 실제로 멀리 살기도 하고 바쁘기도 해서 연락도 자주 못드리고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부모님께 얼마나 자주 연락하십니까?  노인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아마 외로움이 아닐까 합니다.

 

<참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조사한 자료를 보면 작년에 우리나라 우울증 환자의 34.5%가 60세 이상의 노인이었다고 합니다. 우울증이 있지만 우울증이라는 병 자체를 잘 모르거나 치료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이 없어서 병원을 찾지 않는 노인들까지 생각해보면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어르신들은 훨씬 더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부모님이 자꾸 외롭다거나 우울하다거나 식욕이 없다거나 하지는 않습니까? 잠을 설치거나 지속적으로 이곳저곳 통증을 호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노인들은 어린 아이와 같아서 스스로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옆에서 자꾸 챙겨주고 세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우울증 같이 치료가 가능한 질환도 치료시기를 놓쳐서 안 좋은 결과가 올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 


태그:#노인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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