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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0일 교과부 이주호 제1차관이 '2009년 개정교육과정'시안을 확정 발표하는 모습을 KBS뉴스로 보았습니다.
▲ '2009년 개정교육과정'시안을 발표하는 이주호 차관 9월 10일 교과부 이주호 제1차관이 '2009년 개정교육과정'시안을 확정 발표하는 모습을 KBS뉴스로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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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0일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안병만, 아래부터 '교과부') 이주호 제1차관은 '2009 개정교육과정(시안)'을 확정해서 발표했습니다. 그동안에는 '미래형 교육과정'으로 불러왔던 것을 이번에 처음 이름을 바꿔서 '2009 개정교육과정'이라는 말을 사용해서 발표한 것인데, 이 '2009년 개정교육과정' 시안은 각계 의견 수렴을 거쳐 12월에 확정 고시한다고 합니다.

동네 친목회규약만도 못한 우리나라 국가교육과정

교과부가 이번에 발표한 대로라면 우리나라 국가교육과정은 제7차 교육과정을 부분 개정한 '2007년 개정교육과정'을 고시한 이후 2년 만에 다시 개정하는 셈이 됩니다. 2007년 개정교육과정은 올해 처음 초등학교 1, 2학년과 중학교 1학년이 적용 중입니다.

초등학교 3, 4, 5, 6학년과 중학교 2, 3학년은 아직 개정교육과정 체제에 아예 들어서지도 못한 상태입니다. 현재 3, 4, 5, 6학년과 중학교 2, 3학년 교과서를 실험 중이거나 한창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교육과정을 개정한다고 합니다. 교과부는 올해 고시를 해서 2011년부터 초등학교 1, 2학년과 중학교 1학년부터 적용하겠다고 합니다.

'2007년 개정교육과정'을 이제 막 현장에 적용하기 시작했는데, 3년 넘게 공들여서 만들어 놓은 교육과정을 제대로 써보기도 전에 다시 교육과정을 개정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한 나라 국가 교육과정을 2년 만에 다시 개정한다는 것인지 현장교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아마 동네 친목회 규약도 이렇게 자주 개정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9월 10일에 발표한 이주호 제1차관 간담회 자료입니다. 그러나 이 발표 소식도 공지가 되지 않았고, 이날 발표했다는 자료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KBS 화면 갈무리)
▲ '2009년 개정 교육과정 추진' 자료 9월 10일에 발표한 이주호 제1차관 간담회 자료입니다. 그러나 이 발표 소식도 공지가 되지 않았고, 이날 발표했다는 자료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KBS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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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교육과정 개정은 보도블록 교체 공사가 아닙니다

학교교육과정은 국가교육과정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국가교육과정이 바뀌면 바뀐 교육과정에 따라 학교의 모든 교육시스템이 바뀝니다. 교과서도 새로 집필해야 하고, 그에 맞는 교육자료도 새로 연구해서 만들어야 합니다. 새로운 교육과정이 학교에 정착하려면 그러고도 몇 해가 걸립니다.

2년만에 다시 교육과정을 개정하게 되면, 몇 해 동안 연구해 만든 2007년 개정교육과정은 물론이고, 그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연구해서 만든 교과서도 2년만 쓰고 폐기처분하게 됩니다.

지금 만들고 있는 교과서도 있는데, 2년만 쓰고 버릴 교과서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만드는 사람들이 얼마나 맥이 빠질까요? 혹시 교과부가 국가 교육과정을 하루 아침에 뚝딱 만들면 끝나는 보도블록 교체 공사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교육과정이 새로 바뀌면 그에 맞게 교육시스템을 갖추는 데 비용 또한 만만치 않게 듭니다. 간단하게 따져서 교과서만 해도 그렇습니다. 교육과정이 바뀌면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것이 새 교육과정에 맞는 교과서입니다. 초중고 전체 교과서와 교사용 지도서가 바뀌어야 합니다. 교과서 연구와 집필, 제작, 실험하고 적용하는 과정에 엄청난 비용이 듭니다.

예산 낭비와 낭비 생활 태도 강화 및 저탄소 녹색성장 저해에 앞장서는 교과서

그런데 교과부는 지난 5월에 단지 아이들에게 주는 교과서 값을 줄여보겠다고 '교과서 대여제'를 야심차게 시작했습니다. '교과서 대여제'로 인한 기대효과로 '예산 절감은 물론, 검약 생활 교육 강화 및 저탄소 녹색성장에 기여, 교과서 질 제고를 위한 가격상승 부담 절감'을 내세웠습니다. 이런 교과부 방침에 따라 2학기 교과서부터는 교과서 밖에 이름쓰는 란을 아예 없애고 안쪽 표시에 '교과서 물려주기 기록표'를 넣어 인쇄를 하게 했습니다.

교과부 '교과서 대여제' 정책에 따라 2학기 교과서부터 이름쓰는 란이 표지 안쪽에 다섯 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깨끗하게 써서 5년동안 계속 물려주어 교과서 비용을 절약하자는 뜻인데, 정책이 무색하게 2년만 쓰고 쓰레기로 버리게 됐습니다.
▲ 교과서 표지 안쪽에 있는 '교과서 물려주기 기록표' 교과부 '교과서 대여제' 정책에 따라 2학기 교과서부터 이름쓰는 란이 표지 안쪽에 다섯 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깨끗하게 써서 5년동안 계속 물려주어 교과서 비용을 절약하자는 뜻인데, 정책이 무색하게 2년만 쓰고 쓰레기로 버리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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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 2학년 교과서는 워크북 형태로 '재활용 불가'인데도 1, 2학년 교과서까지 획일적으로 모두 이렇게 표시하게 했습니다. 교과서에 이름을 잘 보이는 밖이 아닌 찾기 힘든 안쪽에 쓰면 얼마나 사용하기 불편한지 현장 교사가 아니고는 정말 아무도 모릅니다.

기록표를 보면 칸이 다섯이나 됩니다. 기록표만으로 보면 앞으로 5년은 쓸 계획인데, 이 교과서는 올해 2009년 개정교육과정이 고시되면 단지 올해와 내년까지만 쓰고 폐기됩니다.

교과부는 '예산 절감은 물론, 검약 생활 교육 강화 및 저탄소 녹색성장에 기여, 교과서 질 제고를 위한 가격상승 부담 절감'시킨다고 하더니, 오히려 '예산 낭비와 낭비 생활 태도 강화 및 저탄소 녹색성장 저해에 앞장'서고 있는 꼴이 되었습니다.

졸속, 비밀연구, 여론과 토론회 횟수 조작으로 탄생한 '2009년 개정교육과정' 

국가 교육과정, 꼭 바꾸어야 한다면 바꾸어야 하지요. 이미 2007년 개정교육과정 제정 당시에 급변하는 사회변화에 발맞추기 위해 교육과정을 수시 개정체제로 전환했기 때문에 교육과정을 바꾸는 것은 그전보다 쉬워졌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수시개정 체제라 하더라도 2007년 교육과정을 개정하자마자 한 번도 써보지 못한 채 다시 개정한 사회과교육과정조차도 또다시 폐기하고, 이번에는 전체 교육과정을 2년 만에 다시 개정하는 것은 한 나라의 국가교육과정개정 절차로만 봐도 절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미래형 교육과정'이라고 불러왔던 '2009년 개정교육과정'은 이미 국가교육과정 연구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순수 연구기간이 고작 3, 4개월 정도로 학교 현장교사는 물론 관련 학계 교육전문가들조차 모르게 비밀로 진행해 왔습니다.

5월 즈음 드러난 시안을 보니 학교 현장은 물론 교육전문가들도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이어서 지금도 교육과정 내용에 논란이 많이 일고 있는 상태입니다. 지난 7월에 서울지역에서 열린 '미래형 교육과정 구상안 토론회'에서도 토론다운 토론을 할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연구 책임자조차 나오지 않은 채 진행되어 그 어떤 답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2009년 개정교육과정'으로 탄생한 '미래형교육과정'이 탄생하기까지 문제가 많아서, 지금도 현장교사는 물론 학계 교육전문가들조차도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 지난 7월 24일에 있었던 '미래형 교육과정 구상한 토론회' 장면 '2009년 개정교육과정'으로 탄생한 '미래형교육과정'이 탄생하기까지 문제가 많아서, 지금도 현장교사는 물론 학계 교육전문가들조차도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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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수많은 교육전문가들이 반대하고 있고 내용에 논란이 많은 '미래형 교육과정'을 교과부는 학교 현장과 관련교육전문가들의 의견은 듣지 않은 채 '2009년 개정교육과정'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학교 현장 교사로서 수 년 동안 교육과정 공부를 해 오면서 교육과정 정책에 관심이 많은 저도 '2009년 개정교육과정' 소식을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들었을 정도입니다. 뉴스로 이 소식을 들은 이후에 뉴스에서 보여준 '이주호 제1차관 간담회 자료'는 물론 '2009년 개정교육과정(시안)' 자료를 찾아보려고 해도 교과부 홈페이지 그 어느 곳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교과부는 2009년 개정교육과정 시안에 대한 의견 수렴을 통해 12월에 확정 고시하겠다고 하는데, 대체 이 시안은 어디에서 볼 수 있으며 이에 대한 학교 현장의 의견은 어떻게 제시해야 하는 것인가요?

학교 현장은 귀 막고 입 막고 잠자코 있으면서 교과부가 시키는 대로 따라하기만 해야 하는 것인가요? 이것이 이번 '2009년 개정교육과정' 개정 취지인 '미래사회가 원하는 창의적 인재양성 방법'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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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07년 개정교육과정이 올해 처음 초등학교 1, 2학년에 적용되기 시작했는데, 교과부는 이를 송두리째 버리고 다시 국가교육과정을 개정하겠다고 합니다. 그것도 연구과정에서 학교 현장과 교육전문가들의 의견 수렴없이 정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문제가 큽니다.



태그:#2009년개정교육과정, #미래형교육과정, #국가교육과정, #교육과학기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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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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