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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에게는 환자 또는 그 보호자에게 '알리고 그 동의를 받을 의무'가 있다. 반대로 환자와 그 보호자는 환자의 상태와 치료의 내용과 방법에 대해서 자세히 알 권리가 있다. 현대 사회가 복잡하고 전문적이고 직업적으로 세분화되어 있어,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직업인이 이를 설명하지 않으면 그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일반 고객은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생긴 제도이다. 입법과 행정 작용도 마찬가지로 복잡하고 다양해져서 전문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능률'로 포장된 권력의 횡포 

 

한나라당은 최근 제출된 법안을 자동으로 상정하는 제도를 도입하려고 한다. 이런 시도를 선의로 보면 입법의 능률성을 기하려는 것이지만, 비판적으로 평가하면 결국 민주주의를 누에가 뽕잎 먹듯 먹어치워 훼손시킬 가능성이 아주 크다. 대규모 예산이 드는 4대 강 사업 추진과정을 보면 국회를 정부와 거대 여당의 하부 기관으로 만들 가능성은 더 분명해진다. 이것은 입법의 효율성도 아니고, 정치적 민주성도 아니다. 법률 자체가 난해하기도 하지만, 입법과정에서 국민에서 알리고 국민적인 동의를 받으려는 이른바 '알리고 나서 동의'(informed consent) 원칙을 철저히 무시하는 것이다. 이런 발상에는 국민의 뜻을 묻고 국민의 뜻에 따라 정치를 행하는 민주주의보다는 국민을 대리해서 권력을 행사는 과두제를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공화제에 대한 도전이 '입법 능률'이라고 포장된 사례이다. 

 

그나마 이런 다수 힘의 횡포를 막으려고 만든 제도가 '인사청문회' 제도이다. 얼마 전 정운찬 총리와 몇몇 관료들의 인사청문회 과정을 보면서 국민은 누구나가 분노를 경험했을 것이다. 하나같이 불법적으로 전입하여 '주거'나 '교육'에 유리하게 섰던 인사들이다. 그런 인사들이 정말 국민과 서민을 이해할 수 있을까? 대법관으로 임명된 자가 불법을 저질렀는데도 업무 수행을 못 할 만한 비리가 아니라는 논리에서는 말문이 막힌다.  

 

정운찬 총리가 추석을 맞아 용산참사 유가족들을 만나 위로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건의 중요한 근거가 되는 '수사기록 공개'는 못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검찰의 비공개를 총리도 어쩔 수 없다는 얘기다. 검찰은 원래부터 그런 조직이었다고 그냥 넘어가야 할 문제가 아닌 대목이다. 결국, 검찰은 국민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검찰 개혁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국가인권위원장이 인권경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인권에 대해서 무지함을 속속 드러내고 있다. 법에 명시된 '인권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자'를 임명하지 않고, 그들의 어법으로 말하면 이른바 '좌파'를 제거하고 국가인권위원회를 '행정기관'으로 만들어 인권에 대한 전문성과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을 무력화하려는 작전을 수행할 자를 임명한 것이다.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은 국회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행정기관'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으며, 또 행정안전부의 요구에 따라 아무개 인사를 퇴출했다. 인사에서 독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된 사례이다. 현 위원장은 또 인권경력이 전혀 없는 사무총장을 제청했다. 결국, 법은 무력하고 민주주의는 권력 앞에 굴복하고 있다. 

 

국민에게 알리고 동의받아야 

 

우리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권력의 불투명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권력의 투명성과 이를 통제하는 것에서 개화된다. 알리고 동의받지 않고 이런 경향을 더 강화하려는 여당, 불법행위를 한 자를 '과거지사'로 간주하고 넘어가려는 정부, 자신의 권력행위에 대해서 명쾌하게 설명하지 않는 검찰, 인권을 무시하고 뻔뻔하게 권력의 두둔세력이 되고자 하는 국가인권기구 수장들이 원하는 권력은 이제 국민 위에 군림하려 할 것이다. 

 

입법, 행정, 사법의 모든 권력에도 국민에게 충분히 '알리고' 반드시 '동의받아야 할' 책임이 있다. 우리 국민은 한 가지라도 하자. 처음부터 무자격이었고 법을 위반해 임명된 국가인권위원장을 퇴진시키자. 불투명한 권력 행사에 투명한 민주권력을 실현하기 위해서 국민이 나서자. 

덧붙이는 글 | 이글은 경남도민일보(2009년 10월 6일 http://www.idomin.com)자에 실렸습니다. 이창수 기자는 새사회연대(www.nsociety.org) 대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국가인권위, #새사회연대, #국민통제, #부패, #투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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