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김용익 서울대 교수(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가 29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앤서니 기든스의 <이제는 당신 차례요 Mr. 브라운>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김용익 서울대 교수(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가 29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앤서니 기든스의 <이제는 당신 차례요 Mr. 브라운>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복지에도 성장과 활력 있는 시장이 필요하다. 시장을 인정하자."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시장만능주의를 신봉하는 보수주의자로 불릴 것이다. 진보주의자가 이런 말을 했다가는 진보진영으로부터 시장만능주의에 투항한 인물로 낙인찍힐 게 뻔하다. 그럼에도 이 같은 주장을 내놓은 진보주의자가 있다.

바로 영국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앤서니 기든스다. 영국 '신노동당'의 경제·사회정책에 대한 이론적 틀을 마련한 그는 '제3의 길'로 불리는 시장친화적 진보주의를 주창했고, 이는 다른 나라의 진보진영에 큰 영향을 끼쳤다. 참여정부의 여러 정책의 방향 역시 기든스의 생각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기든스가 좌우 양쪽에서 비판을 받았듯, 참여정부도 가시밭길을 걸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기든스의 책 <이제 당신 차례요, 미스터 브라운>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기든스에게서 발견한 '제3의 길'은 무엇이었기에 그는 그 어려운 길을 가려 했을까?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사회정책수석비서관을 지낸 김용익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29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여덟 번째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노 대통령이 간 길이 어디인지 찾아 나섰다. 70여 명의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회원과 함께였다.

진보의 재구성... "고기 잡는 법 가르치는 진보가 되어야"

김용익 서울대 교수(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
 김용익 서울대 교수(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이제 당신 차례요, 미스터 브라운>은 2007년 토니 블레어 총리 후임으로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의 선출이 임박했을 때, 기든스가 브라운 장관에게 영국 노동당의 정치 이념과 정책 변화를 권유한 글을 모은 것이다. 이 책에는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진보가 필요하다는 기든스의 주장이 담겼다.

김용익 교수는 "단순히 옛날 진보를 따라가지 말고, 철저하게 국민들에게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되는지를 중심에 두고 진보를 원점에서 재구성하자는 것"이라며 "시장이 도움 된다면, 시장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든스는 전통적 사민주의적 복지방식인 부의 재분배보다는 일자리 창출을 포함하는 적극적 노동정책이 국민에게 더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고기를 나눠주는 게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복지정책을 사후관리에서 사전예방의 개념으로 바꿔야 한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김 교수의 설명이다.

"현재 복지정책에서는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는 후에 실업수당을 받고, 병이 나면 건강보험을 통해 치료받는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이 직업능력 훈련을 통해서 시장에서 더 잘 고용될 수 있도록 하고 병이 나기 전 질병을 예방하는 것 아닌가. 빈곤한 이들을 돕기 이전에 노동자들이 일을 해서 소득을 올려 빈곤해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결국, 이는 합리적이고 풍요로운 진보가 되기 위해서는 활력 있는 시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또한 기든스는 관료주의와 중앙집중화 문제 등으로 정부가 시장의 불평등 구조를 바꾸지 못하는 '정부 실패'가 일어날 수 있다고도 말했다.

물론 이는 시장만능주의를 옹호하자는 게 아니다. "시장이 생활수준을 높이는 데 효과적임을 인정하는 동시에 시장의 부정적 측면을 제거하기 위한 규제 역시 필요하다는 게 기든스의 주장"이라고 김 교수는 전했다.

기든스는 또한 시민들이 책임성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국민들이 스스로 더 배우고 학습하는 쪽으로 라이프스타일을 바꿔야 하고, 진보는 결국 진보주의자가 아니라 일반 국민 생활의 변화 속에서 이뤄질 것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제3의 길'에서 저출산·양극화 문제에 대한 답을 얻다

노 대통령이 시장친화적 진보주의에서 발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김 교수는 저출산·양극화 문제에 대한 해답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위해 복지를 일자리 창출 등 경제적인 측면에서 다뤄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며 "대한민국의 복지정책이 나아가야 할 청사진을 밝힌 '비전2030'도 이러한 토대 위에 세워졌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과 함께 참여정부 복지정책의 토대를 닦은 김 교수는 "보건·교육·보육·노인 요양 등을 단순히 복지의 문제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인적 자원을 키우는 동시에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로 인식했다"고 전했다.

그는 "보건 분야만 하더라도, 앞으로 병원에서 가족 대신 간호사가 환자를 간병하게 되면, 간호사를 몇 배 더 채용해야 한다"며 "노인요양이나 장애인 서비스 쪽에서도 굉장히 많은 일자리가 생길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김 교수는 "학교 선생님뿐만 아니라 다양한 보조교사를 더 채용하고, 박물관·도서관·숲속·길거리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탐구·학습할 수 있도록 보조교사가 돕는다면 '창의력 교육'에 큰 도움이 된다"며 "이는 결국 인적자원을 키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2050년 65세 이상 연령층이 전체 인구의 38%가 되는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장친화적 전략을 쓰는 게 필수적"이라고 김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또한 "영국은 조세부담률에 따라 복지제도의 수준이 높기 때문에, 영국의 상황을 우리나라에 100% 적용하기 힘들다"면서도 "기든스의 생각이 우리에게 주는 함의는 크다"고 덧붙였다.

"강바닥 뒤집지 않아도 토목공사 할 데 많다"

김용익 서울대 교수(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
 김용익 서울대 교수(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이날 강연에서 김 교수는 '비전2030'을 무력화시킨 이명박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최근 이명박 정부는 친서민 정책을 표방하고 있지만 예산의 상당 부분을 4대강 살리기 사업 등 토목사업에 쏟아 붓고 있다.

그는 "강바닥을 뒤집는 것은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토목공사를 하더라도 장애인·노인이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도로·인도·신호체계 등을 다시 만들고, 창의력 교육을 위해 도서관·박물관·미술관을 짓는 등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김 교수는 "지금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야근·접대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야근하고 술 먹고 늦게 들어가는 문화 때문에 남성의 가사노동 절대시간이 여전히 적다"며 "이런 상황에서 보육정책 지원이 늘어나도 여성들의 가사노동 부담이 줄지 않는 한, 출산은 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앤서니 기든스, #이제 당신 차례요 미스터 브라운, #제3의 길 , #노무현 강독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