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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 '부루마블'을 기억하는가? 사각판 위에 주사위를 던지며 세계의 도시들을 차지하던 추억의 게임이다. 셈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고 크게 유행했었다. 혹시 부루마블에 중국도시가 없다는 것을 눈치 챘나? 타이페이와 홍콩은 있지만 '상하이'는 없다. 이 게임이 만들어진 해가 1982년이고, 한중수교가 이루어진 해가 1992년이니 당시 정세상 이해가 가지만 현재의 도시경쟁력을 비추어봤을 때 격세지감이다.

1982년식 게임 규칙에 따르면, 홍콩은 5만원, 뉴욕과 런던은 각각 35만원이면 매입할 수 있다. 도쿄도 30만원이면 족하다. 2009년 오늘, '상하이'를 게임 판에 추가하려면 얼마면 될까?

중국이 세계경제의 주연으로 등극했다. 금융위기 속에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으로 나서면서 추락하는 세계경제의 '굄목' 역할을 했다. 외환보유액도 올 상반기 2조 달러를 넘었고, 미국 국채도 8000억 달러 가까이 사들였다. 중국이 미국 적자를 메우고 있다.

커진 경제력만큼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자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하지만 정작 정부 당국은 조심스러운 태도다. 원자바오 총리는 9월 다롄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 "위안화가 국제통화가 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며 몸을 낮췄다. '자신의 재능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인내하며 기다린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연장이다. 이번에 소개할 책 <화폐전쟁>의 저자 쑹훙빙도 한마디 보탠다.

"위안화가 기축통화로 가기 위해 담을 높이 쌓고, 양식을 축적하며 서서히 등극하라!"


쑹훙빙의 화폐전쟁
▲ 화폐전쟁 쑹훙빙의 화폐전쟁
ⓒ 랜덤하우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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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전쟁>은 미·영 금융제국에 대한 '벤치마킹서'다. 세계 금융재벌이 어떻게 등장했는지, 미국은 미연방준비은행(FRB)을 중심으로 어떻게 화폐발행권을 주도했는지 보여준다. 더해 IMF와 세계은행이 세계를 통제하는 프로세스를 설명한다.

저자 쑹훙빙은 미국 정부보증기관인 프레디맥과 페니메이의 부실을 예견해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국제금융재벌이 남북전쟁과 미국 대통령 암살, 히틀러 세력화의 배후였다는 과격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가려서 읽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은 현재 중국인의 대외자세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재미를 준다. 

"내가 한 국가의 화폐 발행을 관장할 수 있다면 누가 법을 정하든 상관없다"

메이어 암셀 로스차일드는 다섯 아들을 유럽 곳곳에 파견해 국제 금융그룹으로 키운다. 저자는 화폐전쟁의 출발을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찾았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19세기 초 프랑스 나폴레옹과 영국 웰링턴 사이에 벌어졌던 워털루 전투로 급성장했다. 1815년 6월 18일 전투 결과는 금융시장까지 영향을 미쳤다. 영국이 승리하면 프랑스 국채는 '껌값'이 되고, 프랑스가 승리하면 영국 국채가 바닥을 치기 때문이다.

메이어 암셀 로스차일드의 셋째 아들 네이선은 사전에 깔아놓은 정보망을 통해 프랑스군이 패배할 것이란 소식을 듣는다. 하지만 영국국채를 팔았다. 눈치를 보던 투자가들도 덩달아 영국국채를 팔았다. 이에 값이 바닥을 치자, 네이선은 다시 영국국채를 되사들였다. 다음날 영국군이 승리했다는 소식이 뒤늦게 전해졌고, 네이선은 20배가 넘는 차익을 남겼다.

쑹훙빙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영향력이 현재도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모건 가문, 록펠러 가문 등과 정치, 언론계의 엘리트들이 모여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고 전한다. 또, 현재의 미연방준비은행(FRB)을 탄생시킨 배후라고 주장한다.

알다시피, 미연방준비은행은 한국은행과 달리 '민영은행'이다. 연방제와 시장원칙에 따른 '분산화된 중앙은행 체제'를 가지는데, 워싱턴 본사에서 선출한 이사진과 12개 지역연방준비은행 중심의 지역 이사진들이 서로 견제하는 구조다.

민영은행은 국가가 직접 화폐를 발행하지 못하게 한다. 돈이 필요하다면 은행에서 돈을 빌려 국채를 발행하도록 한다. 유럽의 사설 금융재벌은 미국 정부가 화폐발행을 못하도록 부단히 막았다. 그 과정에서 정부가 화폐를 만들어 유통시킨 벤저민 프랭클린(제3대), 제임스 매디슨(4대), 아브라함 링컨(16대) 대통령 등이 암살당하거나 정치적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쏭훙빙, "IMF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조장했다"

저자는 국제통화기금(IMF)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IMF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조장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양털깎기' 전략이다. 아시아 국가에 신용대출을 확대해 거품을 일으키고, 사람들로 하여금 투기를 조장한 뒤,  갑자기 통화량을 줄여 재산 폭락을 유도했다. 다음, IMF가 들어가 해당 국가의 국유 자산을 사유화해 싼값으로 사들이고, 자본 시장을 자유화해 부동산과 주식 투기를 일으킨다. 세 번째로 생활필수품 가격을 올려 물가상승을 노렸다. 이 과정에서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 많은 나라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자유무역을 통해 시장을 완전 개방시킨다. 특히 지적재산권과 관세를 통해 비싼 약값으로 개발도상국들을 괴롭힌다.

쑹훙빙은 이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금'과 '은'을 확보하라고 강조한다. 금과 은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화폐라는게 요지다.

"금과 은은 화폐로서 자연 진화하는 진정한 시장경제의 산물이요, 인류가 신뢰하는 성실한 화폐다. 미래에도 금과 은만이 역사적 사명을 맡아 시민의 재산을 성실하게 보호하고 사회 자원의 합리적 분배를 해낼 수 있다."

쑹훙빙은 금·은을 기축으로 하면서 채무를 담보로 발행하는 채무화폐를 줄이고 은행의 지급준비율을 안정적으로 높이면서, 저축을 통해 실질 재산을 늘려야 건강한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지금 상태에서의 금융개방은 '중학생과 타이슨의 권투대결'이니, 금융 통제력을 키우고 선진 금융전략을 깨친 후에 개방하자고 한다.

금 확보에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한다. 전 세계의 황금 총량은 14만 톤, 그 중 유럽과 미국 중앙은행이 보유한 양이 2만 1000톤이다. 이를 온스 당 650달러로 계산하면 4000억 달러가 된는데, 중국이 무역 흑자로 사들이는데 필요한 시간은 고작 2~3년이다.

중국의 대량 금 매입에 다른 나라도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우려에 쑹훙빙은 속내를 드러냈다.

"사실 문제는 중국이 황금가격으로 달러 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지의 여부가 아니다. 중국이 정말 2000억 달러의 황금을 먹어치우지 않고 그와 비슷한 말만 꺼내도 미국의 재무장관과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고혈압에 발작할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중국을 괴롭혀 온 타이완 문제는 미국이 '타이완을 원할 것인가, 달러를 원할 것인가'의 문제로 바뀔 것이다."

'기축통화, 안 되도 그만'이라는 자세다. 금과 은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패권을 무너뜨릴 수 있고, 실리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실용'이다.

중국은 서두르지 않겠다는 자세다. 지나치게 여유를 부린다 하여, '만만디'라고 비판하기 어렵다. 중국의 느림은 오히려 단단해 보인다. 새로운 역사가 목전에 다가왔다. 한국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에 게재 합니다.



화폐전쟁

, 랜덤하우스코리아(2008)


태그:#화폐전쟁, #황상호, #저널리즘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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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트레블러17 대표 인스타그램 @rreal_la 전 비영리단체 민족학교, 전 미주 중앙일보 기자, 전 CJB청주방송 기자 <오프로드 야생온천>, <삶의 어느 순간, 걷기로 결심했다>, <내뜻대로산다> 저자, 르포 <벼랑에 선 사람들> 공저 uq261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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