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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과 로마의 신예 스키피오가 격전을 치룬 자마(Zama)회전은 전쟁사에서 빠지지 않는 결투다. 자마 지역에서 마주친 두 전쟁 영웅의 병법은 후세에 많은 교훈과 지혜의 모태가 되기 때문일 터.

한니발은 명장답게 카르타고군의 문제점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전체적인 병사의 수는 로마에 비해 우월했지만 기병이 로마군에 비해 절반 수준인 데다가 용병으로 채워진 보병도 로마군에 비해 약했다. 한니발은 이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맨 앞에 80마리의 코끼리를 배치했다.

당시 전쟁 수준으로 볼 때, 코끼리의 위용은  매우 위협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게다가 한니발은 전쟁터에서 뼈가 굵을 대로 굵은 명장 중의 명장. 전장에서 한니발을 마주친 적장들이 한니발이 만든 전법의 틀을 깨기란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런데 스키피오는 한니발이 만든 전법의 틀을 뒤틀어 생각한다. 로마군의 강점을 하나하나 따져본다. 병력은 약해도 기병의 수가 월등하고, 보병도 오랫동안 훈련을 함께 해 탄탄하다. 코끼리만 없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 그는, 코끼리 제거 작전으로 기상천외한 발상을 내놓는다.

코끼리와 싸워 이겨야한다는 생각 대신 코끼리를 쫓아내기로 작정한다. 달려오는 코끼리와 마주한 로마군은 코끼리와 정면으로 승부하는 대신, 병력의 간격을 넓혀 그 사이로 코끼리가 지나가도록 했다. 한번 달리기 시작한 코끼리는 멈추거나 방향을 바꾸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돌진하는 코끼리를 피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나서 나팔 등을 불면서 시끄럽게 하여 코끼리를 당황케 했다. 코끼리는 적군 아군 가릴 것 없이 짓밟기 시작했고, 아수라장이 되자, 스키피오는 기병을 이용,  카르타고 군을 순식간에 포위해버렸다. 스키피오가 한니발이 만든 전법의 틀을 철저히 부셔버린 것이다.

우연히 2007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애릭 메스킨 교수의 메커니즘 경제학 이론에 대한 기사를 읽게 됐다. 메커니즘을 조성하여 시장 참여자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최선의 결과를 얻도록 한다는 것이다. 즉 두 아이에게 케익을 공평하게 나눠주려면 한 아이가 케익을 자르고 다른 아이는 자른 케익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제공된 케익 나누기의 틀이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아이들은 어떻게 하는 게 지혜로운 것일까? 그냥 그 누군가 만들어준 틀 안에서 대강 만족스럽다고 생각하면서 케익을 먹는 것일까? 아마 주어진 그 틀이 아니라, 새 틀을 스스로 만드는 것, 즉 기존의 틀을 깨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미래형 교육과정이 착착 진행 중이다. 그런데, 막상 펼쳐보니 국어, 영어, 수학 등 기존의 주요 과목은 그대로 두고, 결국은 군소 과목끼리 나눠 먹기식의 교육과정이 될 가능성이 커져버렸다. 학교에서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권한이 커졌는데 일견 반길 만한 대안이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제대로 정착할 수 있을지, 사실 걱정이 앞선다. 기존의 교육과정 틀은 그대로 두고 그 안에서 대안을 찾다보니, 결국 교과목 간 수업 시수 싸움만 치열해질 판에 몰렸다.

어린이 청소년의  성문제, 우울 및 자살, 흡연, 음주 문제 등이 지속적으로 사회적인 문제가 되자, 2009년 3월 1일부터 초중고 모든 학생이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보건 교육을 받도록 하고, 그 도서와 시수를 교과부 장관이 정하도록 해, 사실상 보건 과목이 학교보건법 법률로 신설됐다. 그러나, 앞으로 적용될 미래형교육과정에서, 법률이 정한 보건 과목 및 보건교육은 소외되어 있다시피 하다. 법이 정한 필수 과목이 아니라 선택 과목으로 정해졌고, 게다가 고등학교 교육과정에는 아예 보건 과목 및 보건교육은 언급도 안 되어 있다. 

지난 2008년 공표된 보건교육과정 고시는, 2009년부터 초등학교 5,6학년, 중·고등학교에서도 1개 학년을 지정해 각각 17시간 이상, 창의적 재량활동 시간에 보건교육을 실시하도록 정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 단 1명 있는 보건교사-그나마 보건교사가 없는 학교가 전국 35%에 이른다-가 다수의 교과 교사들로 구성된 학교 단위 교육과정위원회에서, 혼자서 보건 과목 및 보건교육을 사수(?)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과목의 수업시수와 과목의 존폐가 연계되어 있는 현 교육과정 속에서 어느 교사가 법률에 있다고, 보건 과목 및 보건교육을 순순히 반길 수 있겠는가. 보건 과목 및 보건교육만 그럴까. 시대와 사회적 요구가 아무리 높아도 현재의  교육과정의 틀 안에서는 교육과정 안에 법률, 아니 그 무엇으로 선언하였다고 해도,  현장에서는 오롯한 교육과정으로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

학교 단위의 교육과정 결정 과정은, 다수결의 원칙이 때로는 엉뚱한 결론으로 귀결된다는 교육 현장의 사례로 손꼽힐 정도다. 초중고 학생에 대한 의무 보건교육을 정한 법률이, 사실상 교육 현장에서 합법적으로 폐기되는 순간이라며 불편한 직언을 듣기도 했다. 다수결로 정했다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틀은 그대로 두고 전법만 바꾸는 방법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어느 사이트에서, 절대왕정을 무너뜨리고, 시민혁명의 새로운 역사를 써낸 프랑스 대입 시험, 바칼로레아 문제를 봤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 지금의 나는 내 과거의 총합인가? 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진리가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할 때 진리 대신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환상을 좇아도 좋은가? 의무를 다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자유는 주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싸워서 획득해야 하는 것인가? 틀을 바꾸는 생각에 대한 질문들을 읽어내려 가면서, 조였던 마음만 더욱 답답해진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보건교육, #학교보건, #미래형교육과정, #보건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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