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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마을로 걸어 들어가는 길. 마을은 조용하다.
 구암마을로 걸어 들어가는 길. 마을은 조용하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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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처럼 생긴 마을은 비행장으로

여수에서 율촌면으로 가는 시내버스에 올라탄다. 오늘 찾아갈 곳은 애양원이다. 한센병 치료를 위해 개원한 근대 병원유적과 더불어 한국전쟁 격동기에 순교한 손양원 목사 기념관이 있는 곳이다. 시간이 된다면 애들과 함께 들판을 가로질러 덕양역까지 걸어볼 생각이다.

여수공항 앞 신풍삼거리에서 내렸다. 이곳은 국도 17호선이 지나가고, 전라선 철도가 나란히 지나간다. 거기다가 여수공항이 들어서있다. 바로 앞에 광양항까지 있으니 모든 교통수단을 다 이용할 수 있다.

여수공항이 자리잡은 곳은 예전에 학서마을이 있었단다. 새가 날기 좋은 곳이고, 마을 모양이 학 모양이라고 하여 학서라 칭했다는데, 1972년 비행장이 형성되면서 사라졌다. 이름 값을 하는 걸까? 학 대신 큰 비행기가 수시로 내리고 오른다.

공항 활주로를 옆으로 끼고 걸어간다. 2차선 좁은 길로 차량들이 지나간다. 갓길이 없어 위험하다. 애들에게 흰 선을 넘지 말라고 주의를 주면서 걸어간다. 철조망을 이고 있는 높은 담을 따라 걷는다. 활주로는 의외로 길다. 담을 보면서 걸어가는 길은 시작부터 지치게 한다. 긴 활주로는 모퉁이를 돌면서 바다와 만난다.

구암마을은 바닷가 마을이다.
 구암마을은 바닷가 마을이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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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갯벌 위로 하얗게 살짝 얼었다. 그 위로 오리가 떼 지어 내려앉는다. 이 바다도 머지 않아 매립될 모양이다. 바닷물 드나들 곳만 놔두고 물막이 공사가 진행 중이다. 활주로 끝을 돌아설 무렵 비행기가 내려온다. 기분이 좋다. 비행기가 내리는 걸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다니….

애양원과 함께 형성된 마을 신흥촌

다시 활주로를 끼고 걸어가는 길. 바닷가를 따라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선다. 구암마을이다. 마을은 조용하다. 폐가도 여기저기 보인다. 겨울 시린 날씨에 사람은 흔적은 멈춰지고, 개들이 한가한 오후를 깨우는 듯 짖어댄다.

신흥촌에서 여수공항이 마주 보인다.
 신흥촌에서 여수공항이 마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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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촌에 있는 여인숙. 간판이 무척 오래되었다.
 신흥촌에 있는 여인숙. 간판이 무척 오래되었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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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마을길을 벗어나니 다시 큰 마을이 나온다. 신흥촌이다. 1925년경 신풍 애양재활병원이 설립되면서부터 목사관사, 병원 근무자들의 사택, 기타 각지에서 이주하여 온 주민들이 입주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단다. 마을이 꽤 크다.

마을을 가로지르며 좁은 골목길을 걷다보니 병원과 만난다. 골목 끝에는 식당과 여인숙이 있다. 여인숙 이름이 재미있다. 시골 마을답게 '조씨댁 여인숙', 이씨집 여인숙' 이라고 달았다. 예전 교통이 불편할 때는 이 먼 곳까지 하루 만에 다녀가지 못했을 게다.

근대 한센병 치료 병원과 선교 유적이 남아있는 애양원

돌담을 따라 가다 병원으로 들어선다. 하얀 건물에 커다란 십자가를 단 병원건물이 보인다. 병원 광장에는 나비 조형물이 허공을 향해 마음을 비우고 있다. 아래로 애양원을 만들고 봉사했던 선교사 동상 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국의 낮선 땅에서 종교적 신념 하나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았던 분들….

애양원 병원. 한적한 시골 속에 병원이 자리잡고 있다. 피부과와 정형외과로 유명하여 멀리서 찾아온다.
 애양원 병원. 한적한 시골 속에 병원이 자리잡고 있다. 피부과와 정형외과로 유명하여 멀리서 찾아온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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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양원은 1909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한센병 환자를 치료하기 위하여 광주 봉선리에 설립되었다가 1926년 이곳 여수로 이전하였다. 1967년부터 소아마비환자를 위시한 일반 장애자를 수술하기 위한 재활병원이 되었으며, 현재는 정형외과와 피부과 환자를 위한 특성화 병원으로 이름나 있다.

한적한 길을 도란도란 걸어 올라가면 애양원교회도 있고, 등록문화제로 지정된 초기 애양원 건물이 있다. 바닷가를 둑을 따라 걷다가 숲길로 올라서면 여순사건과 한국전쟁 중에 순교한 삼부자 묘가 나오고, 그 뒤로 손양원 목사 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거치른 겨울 들판을 걷는다.

기념관 아래로 마을이 무척 크다. 마을이름이 피득촌. 미국 피득목사가 원조하여 지어진 마을이란다. 마을을 가로질러 가렸더니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애들과 아내가 냄새가 너무 심해 돌아가잖다. 마을은 대부분 돼지 축사와 양계장으로 돼있다. 큰 아들은 "호기심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고 한다.

도성마을 피득촌. 가축 축사건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도성마을 피득촌. 가축 축사건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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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양원을 벗어나 들판으로 내려선다. 들판을 가로질러 덕양역까지 걸어갈 생각이다. 네모진 논들 사이로 농로를 따라 걸어간다. "거치른 들판으로 달려가자." 노래구절이 생각난다. 벼를 베어낸 논은 회색빛으로 황량하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농로는 시멘트 포장길이다. 길옆으로 갈대가 갈 빛으로 단장하고서 햇살을 즐기고 있다. 황량한 겨울 들판을 걸어가는 길. 지루하다. 길가에 버려진 깡통, 플라스틱 병을 하나씩 찾아내서 차고 간다. 어린 시절 깡통차기 많이 했는데….

들판을 걸어가는 길. 갈대가 겨울을 보내고 있다.
 들판을 걸어가는 길. 갈대가 겨울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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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을 가로지르는 겨울길을 걷는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겨울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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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길다. 가까운 듯 보이지만 한참을 걸어간다. 애들은 수로에 언 얼음 위로 올라가본다.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놀잇감이 된다. 어린 시절이 그랬다. 요즘같이 컴퓨터 오락이 없어도 들판에만 나가면 하루 종일 보낼 수 있었다.

마을을 지나고 다시 들판을 가로질러 간다. 요즘 이곳은 공사가 한창이다. 철도도 새로 놓고 길도 다시 놓는다. 천변을 따라 역으로 향한다. 멀리 기차역이 보인다. 겨울 천변 풍경이 나름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얀 얼음과 갈대가 어우러져 운치 있는 풍경을 만들어 낸다.

곱창으로 유명한 덕양시장... 새끼보가 뭘까?

천변길은 철길과 만나고, 철길을 따라가니 덕양역이다. 덕양은 곱창으로 유명하다. 예전에 우시장이 열리던 덕양시장 주변으로 곱창하는 집들이 즐비하다. 많은 집들 중에서 어디로 들어갈지 고민이다. 큰 애가 간판 이름이 좋아야 한단다. 간판에서 반가움이 넘쳐나는 식당으로 들어선다.

한때 우시장이 열렸던 덕양시장
 한때 우시장이 열렸던 덕양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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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양시장에 덕양곱창. 소곱창은 7천원, 돼지곱창은 6천원이다. 매콤하고 맛있다.
 덕양시장에 덕양곱창. 소곱창은 7천원, 돼지곱창은 6천원이다. 매콤하고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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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곱창을 시킨다. 작은애가 새끼보가 뭐냐고 물어온다. 짐작은 가지만 정확히는 모르겠다. 식당 아줌마에게 물어본다. 이름 그대로다. 단지 새끼를 밸 수 있는 보란다. 새끼를 배기 전에 잡은 돼지에서 나온 것이라 그렇게 혐오스러운 음식은 아니란다.

곱창이 나왔다. 매콤한 국물에 간이 적당히 밴 곱창이 맛있다. 곁들인 시금치도 달다. 작은애가 안 먹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잘 먹는다. 큰 놈은 막창구이도 먹고 싶단다. 다음에 와서 먹어보자며 식당을 나선다.

덧붙이는 글 | 애양원 가는 길은 여수에서 35번 시내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운항되며, 율촌가는 버스는 수시로 운행 중. 순천에서는 96번 버스가 40~5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여수공항에서 애양원 유적지 들렀다 덕양역까지 걸어간 거리 13km. 한나절 걷기에 적당한 거리다.



태그:#애양원, #여수공항, #덕양곱창, #들판, #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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