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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지난 23일 미국 뉴욕에서 제65차 유엔총회에서 '진정한 중국을 알자(認識一個眞實的中國)'는 제목의 연설을 했다.

 

원총리는 세계 최강 미국의 심장부인 뉴욕에서 몸을 낮게 낮추며 중국이 감추고 싶어 하는 빈부격차, 부패문제 등 아킬레스건까지 하나하나 언급하며 중국은 아직 개발도상국이며 지속적인 개혁개방을 통해 평화로운 발전을 추구하되 패권국가가 되지 않을 것임을 거듭 강조하며 과거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외교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급성장한 중국을 경계하는 세계 각국의 <중국위협론>을 의식한 듯 베이징올림픽 이후 고무된 중화민족의 자부심도, G2로 성장한 경제대국으로서의 그 어떤 권위적인 면모도 찾아볼 수 없는 겸손과 절제로만 버무려진 연설문을 최대한 유화적인 제스처로 낭독한 셈이다.

 

세계를 이끄는 대국으로서의 책임과 그에 상응하는 역할을 비켜가지 위한 전략임에 분명한데도 원자바오의 겸손과 온화함으로 잘 포장된 중국의 야망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두 얼굴의 중국 교묘하게 활용하며 견제와 책임 비켜가

 

중국은 여러모로 이중성을 많이 갖고 있는 나라이다. 한 발은 사회주의에 걸치고 다른 한 발은 자본주의에 들여놓고 있는 것이나 한 발은 세계 대국의 지위에 들여 놓고도 다른 한 발은 개발도상국에 걸치고 있는 것 또한 그러하다. 이런 두 얼굴의 중국 어디를 보느냐에 따라 중국의 모습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원자바오총리는 올해 2분기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가 된 GDP규모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며 중국의 GDP규모가 세계 3위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선진국의 1/10에 불과하다고 소개했다. 총생산량은 세계 2위지만 1인당 소득은 100위권 밖인 바로 그 두 얼굴의 모습을 적절히 이용하며 '중국은 아직 멀었다'는 느낌을 갖게 하며 세계의 견제를 느슨하게 한다.

 

또한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세계경제를 주도하며 고속성장을 이어가는 중국경제의 저력에 대한 얘기는 쏙 빼고 중국생산품의 품질이 낮고 지역별 발전정도의 차이와 극심한 빈부격차를 말한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 소비국이 되며 점점 살아나는 중산층에 대한 얘기는 빼고 세계은행 기준 하루 1달러 미만의 절대 빈곤층이 1.5억이나 된다고 엄살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세계경제를 견인하는 주도국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부담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고 보다 장기적인 경제적 실리를 챙기겠다는 전략이다.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 곧 자신을 높이는 일!

 

중국 내에서는 최근 런민르빠오(人民日報)에 '중국이 대국으로 등장하는데 미국은 준비됐느냐(美國準備好中國作爲大國登場了嗎?)'며 중화민족주의에 한껏 고무돼 호기를 부리기도 했지만 중국을 대표하는 총리는 막상 국제무대에서 중국은 아직 민주법제체제, 사회복지제도가 완성되지 못했고 선진성과 후진성이 뒤섞인 사회주의 초급단계로서 아직 개도국의 처지에 놓여 있다고 커밍아웃을 한다.

 

평화롭게 우뚝 서겠다는 '화평굴기(和平崛起)'가 세계인들에게 중화패권주의로 인식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원자바오총리는 연설의 마지막 부분에 많은 공을 들였다. 다른 선진국들이 국력이 강해지자 바로 패권주의 길에 들어섰지만(國强必覇) 중국은 그 길을 가지 않을 것이며 변함없이 평화로운 발전노선을 견지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중국의 발전은 전 세계의 기회이며 중국은 영원히 개발도상국의 좋은 동반자이자 형제라고도 역설한다. 이는 최근 미국이 이라크전쟁, 이란 제재 등으로 중동지역에서의 지배력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중국이 미국의 일방주의, 패권주의에 염증을 느낀 나라들을 규합하는데 구심점으로 서겠다는 의지로도 읽히는 대목이다.

 

원자바오의 이번 유엔연설은 중국이 갖고 있는 취약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경계심을 풀고 만만한 상대라는 인식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경제대국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 보다는 스스로 빛을 감추고 묵묵히 실력을 더 키워야 하는 처지라는 것을 충분히 강조하였다.

 

얼핏 유소작위(有所作爲)에서 다시 도광양회로 회귀한 듯하다. 그러나 이 또한 중국의 전략 감추기임이 분명할 테고 중국은 앞으로도 자신의 필요에 따라 변검(變臉)을 하듯 그들이 가진 두 얼굴을 충분히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중국은 스스로 자신을 높이지 않아도 세계가 그 힘과 저력을 인정해야 하는 단계에 이미 와 있기 때문이다.


태그:#원자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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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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