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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연꽃 피어난 연못에 가을 하늘이 담겼다.
▲ 어리연꽃 어리연꽃 피어난 연못에 가을 하늘이 담겼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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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몸으로 느끼게 온다. 아침저녁 쌀쌀한 바람은 가을을 급격하게 느끼게 하지만, 눈을 들어보면 산과 들판의 변화는 거의 없는 듯하다. 단지, 하늘만 높을 뿐이다.

태풍과 폭우로 얼룩진 여름의 끝자락과 가을의 앞자락은 마음을 쓸쓸하게 했다. 이맘때쯤이면 아람 들어 떨어졌을 밤도 채 익지 못한 초록의 밤송이를 통째로 내려놓고 쉬는 중이다. 아직 황금빛이 되지 아니한 벼도 그냥 논에 누워 있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조금은 쓸쓸한 가을 풍경이다.

그 존재만 알고 있다가 오늘 처음으로 실물을 보았다.
▲ 물질겅이 그 존재만 알고 있다가 오늘 처음으로 실물을 보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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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에 노란빛이 완연하다. 간혹, 물결에 햇살이 반사되는 듯 하얀빛도 드문드문 보인다. 무엇일까 궁금해 연못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존재로만 알고 있던 물질겅이. 꽃은 이번에 처음으로 본다. 마침, 활짝 피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꽃이 크다.

언젠가는 그렇게 만나면 너무도 행복했는데, 그들에게서 마음이 떠난 탓인지 아니면 가을을 타는지 너무까지는 아니고, 그냥 기분이 좋다. 살다보니 이런 행운도 있는 것이구나 싶은 정도다.

폭우로 불어난 비에 꽃을 물 속에 반쯤 담그고 있다. 그래도 활짝 웃는다.
▲ 물달개비 폭우로 불어난 비에 꽃을 물 속에 반쯤 담그고 있다. 그래도 활짝 웃는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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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은 지난 폭우 때 내린 비를 다 배출하지 못했는지 그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있다. 수생식물이 그들도 폭우에 아연실색을 했는지, 아직도 꽃의 절반이 물 속에 담겨있는 물달개비가 가을 햇살에 제 몸을 온전히 내놓으려 힘쓰고 있다.

무엇이든지, 지나치던 모자람만 못한 법이다. 수생식물인 그들에게도 이번 물폭탄은 지겨웠는지 여기저기 상처를 안고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다. 상처가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 그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디에서 바라보는가에 따라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 어리연꽃 어디에서 바라보는가에 따라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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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 가슴에 품고 가을꽃 피워내는 연못, 그들의 마음은 바다의 마음이다. 평정심을 유지한 듯 바다처럼 흔들리지 않고, 강물처럼 흐르지도 않는다. 그냥, 고요할 뿐이다. 물론, 고요하다고해서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중동의 미(美), 그것이 연못이 가진 아름다움이다.

묵묵히 가을 꽃을 피워낼 수 있는 까닭은 가을 하늘을 품었기 때문이리라. 나는 무엇을 품고 있는가? 품고 있는 것이 그리 선한 것이 아니라서 내 삶이 그닥 기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싶다.

하얀 꽃이 연약한 듯 보이지만, 질겅이의 질긴 삶이 들어있을 것이다.
▲ 물질겅이 하얀 꽃이 연약한 듯 보이지만, 질겅이의 질긴 삶이 들어있을 것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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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겅이의 꽃잎은 여려보였다. 물에 잠긴 이파리들은 흐물거리며 썩어가고 있었고, 물에 닿은 꽃잎도 그냥 흐물거리며 물에 기대어 삭아가고 있었다. 오로지, 물에 살지만 물과는 일정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는 꽃들만 생생하게 피어있었다.

연악한 듯 보이는 물질겅이의 꽃, 그러나 이파리만 닮아 물질겅이라는 이름을 얻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속내에는 질겅이의 질긴 인내심 혹은 끈기가 들어있을 터이다.

오랜만에 만나 가을꽃, 내가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그들을 바라보지 않아도 여전히 그 곳에 그들은 피어나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태그:#어리연꽃, #물질겅이, #물달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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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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