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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해수욕장.
 대천해수욕장.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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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일(금)


10월 1일은 대천항 근처에서 하루를 머물렀다. 온몸에 피로가 누적된 데다 자전거도 손봐야 하고, 하루 동안 이것저것 재정비를 할 필요가 생겼다. 몸은 무릎과 엉덩이 통증, 그리고 어깨 결림 같은 것이 가장 걱정이 되었는데, 의외의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며칠 전부터 등 오른쪽이  결리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아침저녁 웅크린 자세로 기사를 작성하느라 몸에 무리가 온 게 아닌가 싶은데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하루 쉬고 나면 좀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자전거는 기어 변속 케이블이 늘어나 기어와 체인이 정확하게 맞물리지 않고 있다. 기어에서 계속 쇠를 깎아내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1000km를 넘어서면서 사람 몸뿐만 아니라, 기계에도 서서히 무리가 나타나고 있다.

케이블을 당겨서 기어 위치를 조정하며 되는데 나는 그 일에 자신이 없다. 오히려 조정이 잘못돼 더 큰 화를 불러온 적이 여러 차례라 이번에는 아예 전문가에게 내맡기기로 했다. 대천항 근처에는 자전거 수리점이 없어, 자전거를 타고 보령시까지 나갔다 왔다.

회사에 있을 때는 그렇게 시간이 안 가더니...

나갔다 오는 길에 도로지도 책자를 구입했다. <우리나라 해안여행> 책자에 있는 지도를 보완해서 사용할 요량이다. 앞으로는 산길이나 비포장도로 들어가는 일을 자제하고, 그런 길을 만나게 되면 가급적 해안선에서 조금 떨어진 우회 도로를 이용할 생각이다.

하루가 금방 가 버렸다. 회사에 있을 때는 그렇게 시간이 안 가더니, 요즘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지 모르겠다. 하루 쉬어가는 걸로 모든 게 여행을 떠나기 전의 온전한 상태로 되돌아올 리 없다. 이제부터는 길 위에서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 아프면 견디고, 무언가 부족한 물건이 발생하면 당장 몸에 지니고 있는 걸로 대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용두해수욕장. 오른쪽에 삼각형 그물을 들어올려 잡은 새우를 확인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용두해수욕장. 오른쪽에 삼각형 그물을 들어올려 잡은 새우를 확인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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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일(토)

전국에 비가 온다고 했다. 충청도 지역에는 10mm에서 40mm 가량의 비가 올 모양이다. 오늘 아침, 하늘이 조금 흐린 것 말고는 비가 올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 비가 내릴지 모르니 해가 떠 있을 때 서두르는 게 좋겠다.

대천해수욕장 앞을 지난다. 올 봄에도 공사 중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공사가 여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흔적이 남아 있다. 규모가 큰 해수욕장일수록 피서 철이 끝난 뒤에 찾아오는 황량함이 더 크다. '축제'를 즐기기 위해 만들어 놓은 구조물들이 그런 느낌을 더 강하게 만든다.

대천해수욕장에서 얼마 안 가 용두해수욕장이 나온다. 처음에는 대천이나 용두나 뭐가 다를까 싶어 그냥 지나칠 생각이었다. 용두를 특별히 기억할만한 요소도 없었다. 그런데도 핸들을 꺾었다.

무엇이 다른지는 가봐야 한다. 그리고 꼭 무언가 다른 것이 있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쉬엄쉬엄 쉬어가는 데 굳이 장소를 따질 이유도 없다. 일부러 어떤 목적을 가지고 찾아가는 여행이 아니라, 발길이 닿는 대로 가는 여행인데 너무 까탈을 부릴 이유도 없었다.

카메라를 꺼내들고 해변으로 내려서는데 멀리 바닷가 수심이 옅은 곳을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보인다. 몸에 물속에 반쯤 잠겨 있다. 해수욕을 하는 것도 아니고, 물장난을 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파란 그물을 끌거나 밀고 있다.

그물은 두 가지다. 뒤에서 끄는 넓적한 그물과 앞에서 미는 삼각형 모양의 그물이 있다. 가까이 다가갔다. 사람들이 끌고 다니는 것은 사람 하나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넓적한 아가리를 가진 그물이다. 그물 역시 반쯤 물속에 잠겨 있다. 그 놈을 이리 저리 끌고 다니면서 무언가 바닷물 속에 있는 걸 잡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물고기인지 조개인지는 알 수 없다.

그물을 끄는 속도가 너무 느려 물고기를 잡는 것 같지는 않다. 사람들이 해변으로 나오면 물어봐야지 하고 기다리는데 좀처럼 나올 생각을 않는다. 그물을 이쪽으로 끌고 갔다 다시 저쪽으로 끌고 가기를 수도 없이 반복한다. 도대체 뭘 잡기에 저렇게 열심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 촌놈은 입맛을 다셨다

자젓을 담그는 돗대기새우를 잡는 모습
 자젓을 담그는 돗대기새우를 잡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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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이 물가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서 있는 한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새우를 잡는단다. 새우를 허리밖에 안 차는 물속에서 잡는다는 게 좀 이상하다. 자젓을 담그는 새우란다. 새우가 바구니에 담겨 있다. 그 안을 들여다 보니, 실치보다 더 하얗고 작은 새우들이 바구니 속 그물 여기저기에 설거지를 하다 남은 밥알처럼 붙어 있다.

오늘은 얼마 잡지 못했단다. 원래는 바구니 하나 가득 잡히곤 했는데 오늘은 영 잡히는 게 없다며 나중에 사리 때 밤에나 잡힐는지 모르겠단다. 자젓은 잡히는 양이 워낙 적어 집에서 반찬으로 먹고 자식들에게 조금씩 나눠줄 뿐이다. 자젓이 맛있다는 말을 여러 번 되풀이하는데, 나 같은 서울 촌놈마저 입맛을 다시게 만든다.

마을 주민들이 바닷가에서 새우를 잡고 있는 광경을 보면서, 이 해변이 원래는 이곳 마을 사람들의 것이고, 생활의 터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우리들에겐 그냥 잠깐 머물다 가는 놀이터에 불과하지만, 그들에게는 생활과 삶의 일부인 셈이다. 그런 해변을 사람들이 없어 썰렁하다고 말하곤 했으니, 내가 평소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고 사는지 알 수 있다.

무창포해수욕장. 대하 전어 축제 현장.
 무창포해수욕장. 대하 전어 축제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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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창포해수욕장에서는 대하와 전어축제가 한창이다. 마침 토요일 점심 무렵이라 그런지 무창포 해변에 전어를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요즘 서해 지역에서는 해산물 축제가 한창이다. 백사장항과 남당항에서는 대하축제를 벌이고 있고, 오늘 잠시 후에 들르게 되는 홍원항에서는 전어 축제가 한창이다.

춘장대해수욕장
 춘장대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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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춘장대해수욕장은 지조가 있는 편이라고 해야 하나? 해수욕장 본래의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대자가 붙는 해수욕장들이 대개 그렇듯이, 춘장대 역시 대차게 큰 해수욕장이다. 백사장도 그렇고, 백사장 뒤의 소나무 숲 역시 규모를 짐작하기 힘들 만큼 넓다. 소나무들은 또 어찌나 큰지 마치 기골이 장대한 청년들이 뒤에서 든든히 버티고 서 있는 느낌이다.

춘장대를 떠날 무렵,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우산을 쓰고 백사장을 거니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아직 몸이 젖을 정도는 아니어서 크게 염려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홍원항에 도착하면서 사정이 달라진다. 몸이 젖는다. 그새 바지가 허벅지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홍원항 전어 축제. 간이 횟집에서 전어를 즐기는 사람들.
 홍원항 전어 축제. 간이 횟집에서 전어를 즐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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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항에서는 트로트 음악에 맞춰 밸리댄스 복장을 한 댄서들이 온몸에 비를 맞으며 정체불명의 춤을 추고 있다. 노래자랑 시간 막간에 춤을 선보이는 모양인데, 아무리 토속적인 행사라 해도 비오는 날 트로트에 밸리댄스는 너무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축제 장소 어디를 가나 노래자랑이 빠지질 않는다. 사람들이 축제에 관심이 있어 온 건지 아니면 노래자랑에 흥미가 있어 온 건지 알 수가 없다. 물론 둘 다인 경우일 수도 있다.

비가 퍼붓는 가운데, 노래자랑 무대 앞에 설치한 텐트 안으로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꽉 들어찼다. 토요일 오후라서 그나마 홍원항은 축제 분위기가 좀 나는 편이다. 노래자랑 텐트뿐만이 아니라, 주차장 역시 자동차들로 빈 공간을 찾아보기 힘들다.

마량동백나무숲 풍어제사당 곁에서 내려다 본 바다.
 마량동백나무숲 풍어제사당 곁에서 내려다 본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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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빗속을 달렸다

오후 3시 무렵, 빗방울이 점점 더 굵어지고 있다. 마량동백나무숲에 도착했을 때는 더 이상 빗속에 서 있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몸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진다. 이런 상태로 여행을 계속해야 할지 의문이다. 하지만 아직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 동백나무숲을 나와, 해돋이와 해넘이를 모두 감상할 수 있는 마량포구를 흘깃 엿보고 나서는, 오로지 달리는 데 열중한다. 어떻게든 해가 지기 전에 장항항까지는 가볼 생각이다.

비인면의 해안도로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갯벌이 온통 잿빛이다. 거기에 찬바람까지 불어 스산하기 짝이 없는 풍경이다. 몸이 약간 으슬으슬하다. 토요일인데도 도로 위에서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분위기가 공포 영화에 가깝다. 그래도 중간 중간 자전거를 멈추고 쉬어가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무서워도 몸이 고되긴 마찬가지다.

가는 길에 어촌체험마을 여러 개를 지나친다. 체험마을 앞으로 산책로도 잘 닦여 있고, 체험 시설도 잘 갖춰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비가 오는데도 우비를 쓰고 체험을 하러 나온 가족이 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비 때문에 서둘러 갯벌을 빠져 나오고 있다.

옥산리 부근을 지나치면서부터는, 빗물에 섞여 이마로 흘러내리는 땀 때문에 눈을 뜰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만다. 눈이 몹시 쓰라리다. 낭패다. 눈을 아무리 닦아내도 소용이 없다. 할 수 없이 두건을 꺼내 이마까지 내려 쓴다. 두건이 얼마나 버텨줄지 모르겠다. 가는 데까지 가보는 수밖에.

해가 떨어져서야 장항항에 도착했다. 숙소에 들어가서 살펴보니, 가방 안까지 젖어 있다. 이런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올해 들어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요즘 비가 와도 너무 심하게 온다. 카메라와 노트북을 꺼내 겉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고 드라이어기로 말린다. 비에 젖은 옷가지를 죄 빨아 널었다. 이것들이 밤새 마를 가능성은 제로다. 내일도 비가 계속 온다면, 장항항에서 발이 묶일 수밖에 없다. 오늘 달린 거리는 82km, 총 누적거리는 1235km다.


태그:#용두해수욕장, #무창포해수욕장, #홍원항, #마량동백나무숲, #춘장대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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