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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7월 1일부터는 개, 고양이와 같은 동물들이 받는 진료비용에 대해 부가가치세가 부과될 예정이다. 이미 아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원래부터 받는 거 아닌가라고 반문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동물관련단체, 수의사 단체, 그리고 동물을 키우는 분들이 적극적으로 이 정책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없던 세금을 새로 걷겠다고 하니 관련된 사람이나 단체가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보기엔 요즘 이슈화되고 있는 반값등록금 문제, 서울대 법인화 문제 등에 비해 어찌 보면 너무 사소한 문제이고 지엽적인 문제일 것이다. 본인은 현업 수의사이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문제는 과거 의약분업이나 약사법 개정 등과 같은 결국은 밥그릇 싸움 또는 이권 싸움이 아닌가?

잠시 여담이지만 얼마 전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아들이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한 마리 사왔다. 하지만 대개의 그런 병아리가 그렇듯 이틀을 채 못살고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아들은 밤새 슬픔에 겨워 눈물을 흘렸고 다음날 아침 퉁퉁 부은 눈으로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공룡 카드 한 장에 '잘가 친구야, 튼튼하게 다시 태어나'라는 글을 적어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며칠이 지났지만 지금도 가끔 들꽃을 꺾어다 무덤가에 두곤 한다. 비록 작고 힘없는 병아리지만 우리 아들에겐 자신이 이름 붙여주고 함께 정을 나눈 너무도 소중한 친구였던 것이다. 동물은 그런 존재다. 동물을 키우는 대부분의 보호자들에게 동물은 여유있어 키우고 내게 즐거움이나 주는 대상이 아니라 정과 사랑을 함께 나누는 가족이자 친구이다.

세금은 누구나에게 불편함과 거부감을 준다. 그래서 세금을 깎아주면 환호하고 없던 세금을 새로 부과하면 반발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이다. 하지만 국가가 운영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 또한 세금이다. 사용할 곳이 있으면 그에 맞게 세금이 필요하고 좋든 싫든 그 세금은 바로 우리 국민들에게서 걷어야 한다. 특히나 국가의 역할이 점점 더 커가는 현대사회는 세금이 더욱더 필요하게 되고 특히 선진국일수록 그 세금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이 모든 점을 인정함에도 왜 우리는 반려동물 진료비에 부과되는 부가가치세가 부당하다고 주장하는가?

선진국일수록 세금은 직접세를 더 중심으로 걷는다. 즉, 소득세든 양도세든 법인세든 경제주체가 직접 내는 세금을 세수의 중심으로 하고 그 세율에 있어서도 누진세를 적용하여 부유하고 경제적인 이득을 많이 취한 집단이나 개인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는다. 이에 비해 부가가치세는 쉽게 걷을 수 있지만 누진세 개념이 부족한 간접세이기에 그 전체 비중이 더 낮게 잡혀 있다. 이런 세금의 원칙이 자본주의 국가가 흔들림없이 지금까지 건강하게 발전해가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 정부는 이런 국제적 발전 방향과는 반대로 종합부동산세, 법인세, 소득세, 양도세 등 부자들이 내는 직접세는 대폭 감면해 버렸다. 4대강이 아니더라도 당연히 세수는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는 그 부족해진 세수를 채우기 위해 일 년에 채 70억밖에 예상되지 않는 세금을 걷기 위해 반려동물 진료비에 대해 부가세를 부과하겠다고 한다. 통상적으로 부가가치세는 용역과 재화에 부과하지만 생활필수품이나 농수산품, 그리고 진료비, 교육비와 같은 생활에 밀접한 관계가 있는 서비스와 물건에 대해서는 부가세가 면제되고 있다. 그동안 동물 진료비도 이 품목과 더불어 면세 대상이었다. 하지만 현 정부 당국은 동물 진료비가 이런 면세항목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부가세를 부여하게 된 것이다.

즉, 동물을 키우는 것은 여유롭고 사치스러운 행위라는 당국자의 판단 하에서 부가세 부과가 시행되게 되었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 아들에게, 그리고 동물을 키우는 모든 가족들에게 동물은 가족이자 친구다. 그런 친구와 가족을 여유와 사치의 행위로 바라본 그 시각 자체에 우리는 크게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동물병원에서 행해지는 동물의 미용이나 사료 등의 개 용품에 대해서는 모두 부가가치세가 부과되고 있다. 이 점에 대해 어떤 보호자도 면세해달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료행위는 다르다. 이는 너무 원초적인 행위이다. 우리 가족이 아파서 진료 받는데 이 행위에 세금을 부과한다는 것은 상식으로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것이다.

동물 애호가들의 엄청난 반발과 분노에도 불구하고 재정기획부는 '세금 부과 대상은 가급적 넓게, 세율은 가급적 낮게' 유지한다는 세정 원칙을 내세우고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도 이 행위에 대해 부가가치세가 부과되고 있다는 논리로 애완동물 진료에 대한 부가세 부과를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세금은 필요한 만큼 걷어야 한다. 그리고 그 범위는 직접세가 먼저, 간접세는 보조적이어야 한다. 굳이 말하면 이게 세계적 추세고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다. 정부당국자에게 정말 묻고 싶다. 왜 그렇게 선진국의 세수정책을 따라가고자 하면서 선진국이 부과하고 있는 부유세는 우리나라에 시행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왜 기존에 있던 각종 직접세는 대폭 감면해 버렸는가? 정녕 정부에서 말하듯 선진국처럼 애완동물 진료비에 세금을 부과하고자 한다면 선진국 형으로 부유세를 신설하고 직접세도 선진국 수준으로 걷어라. 그리고도 각종 복지를 위해 부족한 세수가 있다면 우리도 당당하게 애완동물 진료비에 대해 선진국처럼 세금을 낼 의향이 있다. 그런 선행 행위가 없이 이런 궤변으로 애완동물진료비에 대해 부가세를 끝까지 부과한다면 우리와 같은 동물애호가나 동물관련 단체를 비교적 소수이자 단결된 힘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행해지는 밀어붙이기식 탁상행정이라고 결론낼 수밖에 없다.

이제 이 시행령이 시행되는데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태도로 보았을 때 정부당국에서 스스로 이 시행령을 철회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현재 국회에는 애완동물 진료를 면세로 하는 법안이 발의되었지만 지금까지 관례상 쉽게 통과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대로 부가세 방침이 시행되어 버린다면 동물을 가족으로 생각하며 키우는 천만 반려동물 가족과 지금까지 생명에 대해 진료 행위를 한다고 스스로 믿는 수많은 수의사들은 큰 좌절과 분노를 겪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이에 반대하는 관련 단체와 시민들은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부가세의 부당함을 널리 알리는 데 힘써왔다. 다수의 언론과 인터넷에서 핫이슈가 될 만큼 많은 이들이 호응하였고 동의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끝내 진지한 답변을 외면한 채 늘 동일한 답변만을 반복하고 있고 결국 동물 진료의 중심이 되는 동물병원이 6월 21일 총파업을 예고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많은 동물단체와 동물 가족 그리고 수의사들이 모여 부가세철회를 요구하는 궐기대회를 하기로 한 상황이다.

부가세 문제는 단지 세금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 정부는 동물관련 정책에 있어 어떤 선진적인 정책도 적극적으로 고민하거나 시행해 오질 않았다. 유기 동물이 길거리에 방치된 채 돌아다니지만 선진국처럼 국가적으로 이를 관리하지도 않고 있으며 동물이 학대되는 현장에 대해서도 낮은 처벌과 수수방관으로 일관해 왔다. 늘 이런 일들은 동물보호단체, 수의사단체 등의 몫으로 방치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당국이 내놓은 동물 진료비 부가세 부과는 얼마나 생명존중에 대한 기본 철학이 부재한 지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환경과 동물을 포함한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려는 철학이야 말로 정부가 그렇게 가고 싶어 하는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는 길임을 정책당국자들은 알아야 한다.


태그:#동물진료 부가세, #부가가치세, #동물병원, #반려동물, #애완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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