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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사업단 정문에선 매일 강정주민과 경찰의 대치가 이어졌다.

천주교 사제들은 미사를 열고, 저녁이면 촛불집회가 열렸다. 서울과 경기 경찰부대가 입도했고 경찰의 공권력 투입이 임박해 왔음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러던 8월 24일, 중단되었던 공사를 재개하는 날 해군은 기자들을 대동하고 강정을 찾았다.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은 공사 재개를 막기위해 저항했고 경찰들이 활동가들을 제압했다. 대치가 계속 되던 중 한 주민이 던진 김밥 한줄이 서귀포경찰서장의 뒤통수에 명중했다. 이후 경찰은 아무런 폭력행위도 하지 않았던 강동균 마을회장을 이날 연행하여 구속했다.

주민들은 강동균 회장을 태운 경찰차를 7시간동안이나 잡아두었고 다음날 이 김밥사진은 '참담한 공권력 무력화 7시간'이라는 기사와 함께 일간지 1면을 장식했다. 당시 검찰은 2년만에 공안대책회의를 열었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서귀포 서장을 즉각 경질하고 충북경찰청 차장을 급파하여 테스크포스팀(TFT)를 꾸렸다. 그리고 일주일 후, 경찰은 유례없는 공권력투입으로 38명을 연행하고 해군기지 예정지에 대한 펜스작업을 마무리했다.

26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열릴 예정인 '한미FTA 국회 비준 날치기 무효를 위한 야5당 합동연설회'가 경찰 원천봉쇄로 세종문화회관앞에서 열린 뒤 참석자들이 광화문네거리로 자리를 옮겨 집회를 이어갔다. 경찰과 시민들이 대치하며 해산 경고방송이 나오는 긴장되고 격앙된 분위기 속에 정복을 입은 박건찬 종로경찰서장이 갑자기 사복형사들에 둘러싸인 채 폴리스라인을 넘어와서 국회의원들이 있는 무대를 향하고 있다.
▲ 종로서장의 무리한 행동, 결국... 26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열릴 예정인 '한미FTA 국회 비준 날치기 무효를 위한 야5당 합동연설회'가 경찰 원천봉쇄로 세종문화회관앞에서 열린 뒤 참석자들이 광화문네거리로 자리를 옮겨 집회를 이어갔다. 경찰과 시민들이 대치하며 해산 경고방송이 나오는 긴장되고 격앙된 분위기 속에 정복을 입은 박건찬 종로경찰서장이 갑자기 사복형사들에 둘러싸인 채 폴리스라인을 넘어와서 국회의원들이 있는 무대를 향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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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날치기 처리'로 국민들의 저항이 날로 거세지고, 촛불문화제에 모이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었던 지난 26일, 만여명이 모인 서울광장에 시위대 앞으로 정복을 입은 종로경찰서장이 나타났다. 흥분한 시민들은 그에게 매국노라고 욕을 하고 그의 계급장을 뗐다.

종로서 관할에서 10년 넘게 시위를 해 본 나이지만 종로경찰서장이 정복을 입고 시위대 앞에 자진해서 나타난 것은 처음보았다. 아무리 야당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관할서장의 자격으로 나섰다고 하지만 상식밖의 일이다. 다음날인 일요일, 인터넷 포털을 비롯한 모든 뉴스의 가장 선정적인 기사는 종로경찰서장의 구타소식이 차지했다. 한미FTA 날치기 통과 이후 울부짖으며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요구하던 '선량한' 시민들은 한순간에 '폭도'가 되었다.

왜 국민들은 경찰을 혐오하고 무시하는 걸까

지난여름 제주강정과 26일 서울광장에서 일어난 두 사건은 너무 닮았다. 경찰서장 한명이 희생양이 되어 국면 전환을 도모했다. 의도했는지, 안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모든 폭력은 용납될 수 없다"라는 말로 강정의 평화활동가들과 서울의 시민들을 질책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기묘하다.

물론, 독재를 무너뜨리려는 분노의 힘이 아니라, 분풀이성 욕설과 고함, 폭력과 무질서를 습관적으로 행사하며 사안의 본질을 흐리고 쟁점을 바꾸어 버리는 '자충수' 투쟁이 언제까지 계속 될 것인가하는 답답한 심정은 들지만 말이다. 본질은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부당하다는 것과 한미FTA 날치기가 국민을 우롱한 처사라는 점이다.

그런데 8월의 서귀포 경찰서장은 즉각 경질이 되었지만 11월의 종로경찰서장은 오히려 격려를 받는 모양이다. 물대포도 쫙쫙 쏘고 망설임없이 연행도 잘 했던 종로경찰서장이 맞은 것은 안타까운 모양이다. 서귀포 경찰서장은 7시간이나 망설인 벌을 받은 것이고 말이다.

경찰들의 대부분도 서민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고 있지만 그만큼 잘 살지는 못한다. 경찰들이 공무원노조원이 되었으면 좋겠고 이들의 처우나 근무환경도 좀 더 나아졌으면 하고 바란다. 경찰들이 범죄자도 잡고, 교차로에서 꼬리무는 자동차 단속도 하고, 급할 때 파출소 화장실도 쓰게 해주고 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경찰이 없는 세상을 사람들은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국민들은 경찰을 혐오할까? 왜 경찰들을 '짭새', '견찰'이라고 부르며 무시하고 싫어할까?

난 항상 전의경들이나 말단 직원중대 뒤에 숨어서 이름도 감추고 부당한 공무집행에 항의하거나 질문을 해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며 무전기 두대씩 들고 지시만을 하는 경찰간부들이 정말 진저리나게 싫었다. 그렇다고 해도, 경찰서장들은 정복입고 시위대 앞에 나서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도 달라질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태그:#한미FTA, #해군기지, #경찰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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