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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럼비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젊은 작가들이 모였습니다. 떼를 지어 구럼비 해안을 맴도는 남방 돌고래처럼 떼를 지어 시를 쓰고, 산문을 적으려 합니다. 구럼비가 다시 온전한 구럼비로 남을 때까지 글은 계속됩니다. 이 글은 '구럼비를 생각하는 젊은작가포럼'의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 기자말

제주 강정마을
 제주 강정마을
ⓒ 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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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존 던(Rev. John Donne, 1572~1636)


그 어느 누구도 저 혼자 온전한 섬이 아니다.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한 부분.
폭풍이 불어와 해변을 쓸어 가면, 씻긴 만큼
곶(岬)은 줄어들고 결국 대륙도 줄어드리라.
그대 친구와 그대 자신의 농토가 줄어드는 것.
누구든지 죽으면 내가 상처를 입는 것이니
나 또한 인류의 한 조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묻지 말지어다.
누구를 위하여 조종(弔鐘)은 울리느냐고.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므로.


동명의 헤밍웨이 소설과 영화 등으로 유명한 존 던의 시를 옮기며 글을 시작하려 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온전한 섬이 아니라고.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친숙한 정현종의 시를 빌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고.

우리는 지금 한 섬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섬을 둘러싼 수많은 관계들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이는 울고, 어떤 이는 분개하며, 또 어떤 이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이 모든 이해관계가 자아내는 혼란들에 대하여.

끝없이 푸른 바다가 있고, 또 끝없이 푸른 바다가 있고, 끝없이 어두운 해안선이 있는 이곳에서, 폭발음이 울려 퍼지고, 누군가가 끌려 나가고, 끝없이 어두운 해안선이 있는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까. 이것을 '무엇'이라고 당신은 명명할 것입니까.

구럼비 바위 깨질 때 우리 몸도 깨집니다... 잊지마세요

제주 강정마을
 제주 강정마을
ⓒ 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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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당신에게 생각을 강권하는 글입니다. 한 섬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모든 혼란과 참혹에 대해 생각해볼 것을 요청하는 글입니다. 생각이라니. 당신은 약간의 피로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약간의 피로를 느끼며 이 모든 일에서 눈을 돌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의 땅이 조금씩 깎여 나가고 있음을. 당신의 곶이 줄어들고, 당신의 대륙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영국의 옛 시인이 말한 것처럼 당신은 하나의 온전한 섬이 아닙니다. 당신은 대륙의 한 조각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당신의 한 조각입니다. 우리는 지금껏 너무 많은 조각들을 잃어왔습니다. 새만금에서, 대추리에서, 용산과 두리반에서, 너무 많아 언급하지 못할 지상의 곳곳에서. 우리는 그 무수한 조각들을 잃어버리고도 그것을 잃은 줄 모릅니다.

통각을 잃어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신체는 급격한 속도로 무너져 내리고 맙니다. 그러니 우리는 느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생존을 위해,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이 우리 자신의 고통임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느끼기 위해 우리는 생각해야만 합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그 일로 인해 진정으로 죽어가는 이는 누구인지. 이 생각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이 생각을 멈춘다면 언젠가 우리 또한 멈추고 말 테니까요.

상상은 큰 힘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구럼비 바위가 발파될 때, 그곳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들이 사라질 때, 그 고통을 우리의 것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상상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비극을 공유하고, 그것을 나눌 수 있습니다. 상상하세요. 눈을 돌리지 마세요. 구럼비 바위가 깨져나갈 때, 우리의 몸 또한 깨져나갑니다. 카약을 타고서라도 구럼비를 향해 가는 이들, 그들은 우리가 흘려야 할 눈물을 대신 흘리고 있습니다. 저는 다시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끝없이 푸른 바다가 있고, 또 끝없이 어두운 해안선이 있는 곳에서, 지금 무엇인가 부서지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 종은 누구를 위한 종입니까. 지금, 당신을 위하여 종이 울리고 있습니다. 들립니까. 들리지 않습니까. 이 글은 당신이 이 종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간곡히 부탁하는 글입니다. 들린다면, 우리는 함께 움직일 수 있습니다.

구럼비살리기 십만 명 서명운동
 구럼비살리기 십만 명 서명운동
ⓒ 행동하는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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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황인찬 시인은 201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해 현재 첫 시집을 준비하고 있는 한국문단에서 가장 젊은 시인입니다.



태그:#구럼비바위, #젊은작가포럼, #황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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