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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금오초 미니축구B팀 선수들이 감독인 시민영 교사와 축구골대 앞에서 승리의 ‘V’를 손가락으로 만들어보이고 있다
 지난 7일 금오초 미니축구B팀 선수들이 감독인 시민영 교사와 축구골대 앞에서 승리의 ‘V’를 손가락으로 만들어보이고 있다
ⓒ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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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체육교사도 아닌, 젊은 여자교사가 축구감독을 맡아 우승으로 이끈 것이 신기해서 시작한 인터뷰였다. 충남 예산의 금오초등학교 교사 시민영(31). 예산군 내에 딱 한 명뿐인 시씨이기도 하다.

지난 4월 30일 덕산초등학교에서 열린 제10회 예산교육장기 미니축구대회에서 역대 경기 최다득점의 기록을 세우며 우승한 금오초 축구B팀의 사령탑,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참, 열정적인 교사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스승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이 인터뷰는 '스승의 날에 만난 사람'이 됐다.


8년차 교사인 시 교사에게는 모두 262명의 제자가 있다. 2005년 첫 발령지였던 아산에서부터 삽교초, 금오초까지 그가 담임반을 맡은 아이들은 모두 '제자번호'를 받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시민영 제자번호'인데, 현재 262번까지 와 있다.

"1년만 가르치고 끝나는 게 아니라, 평생 나와 함께 할 동반자들이라는 의미로 붙여주는 번호입니다."

그의 제자들은 '스승의 날'보다는 시 교사의 생일이나, 각 '반의 날'에 연락을 더 많이 한다. '반의 날'이라 함은 해당 학년과 반이 월과 일이 되어 만들어진 기념일이다. 예를 들어 6학년 4반이었다면 6월 4일이 그 반의 날이 된다. 제자들과의 소중한 인연을 오래 간직하고픈 마음에 특별한 형식을 만들었고, 그 형식에 의미와 마음이 더해져 남다른 사제지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인연이 되다
시민영 교사가 운동장 축구골대 앞에 서 있다.
 시민영 교사가 운동장 축구골대 앞에 서 있다.
ⓒ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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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제자라는 이유만으로 이어쓰고 있는 제자번호는 서로 얼굴을 몰랐던 아이들끼리의 인연이 되기도 한다. 이번 축구대회 우승은 이 제자번호가 만들어낸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축구 보는 것을 매우 좋아하지만 막상 "운동신경은 전혀 없다"는 시 교사가 3주동안의 짧은 시간 동안 선수들의 특성을 파악해 전술을 구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산시청 축구팀과 천안에 있는 고교 축구팀에서 선수로 활약하는 제자 둘이 지원을 와줬다. 연습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보내면 평가를 해주기도 했다.

경기 당일에는 삽교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제자들이 응원을 왔다. 삽교초 재직 당시 가르쳤던 아이들이다. 중학생 형들이 "잘하라. 우리 선생님 속상하게 하면 안 된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며, 파이팅을 외치니 상대팀 홈그라운드라 기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선수들은 끝까지 잘 뛰어줬다.

같은 선생님의 제자라는 이유만으로 형, 동생 하는 아이들을 보며 그는 얼마나 가슴이 벅찼을까.

선수로 뛴 것도 아닌데, 이번 경기에서 시 교사는 발목 부상을 입었다. 원인은 넘치는 응원과 격려? 깁스를 한 시교사의 왼쪽다리.
 선수로 뛴 것도 아닌데, 이번 경기에서 시 교사는 발목 부상을 입었다. 원인은 넘치는 응원과 격려? 깁스를 한 시교사의 왼쪽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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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회에서 시 교사는 발목 부상으로 깁스를 했다. 하루 종일 수비와 공격 진영을 오가며 목이 터져라 선수들을 독려하다 접질린 모양인데, 얼마나 경기에 열중했는지 결승전이 끝나고 나서야 아픈 걸 알았다고 한다.
"제가 그랬거든요. 져도 되지만, 끝나고 나서 후회하는 경기는 하지 말자고. 우리 학교가 지금까지 한 번도 우승을 해본 적이 없어서 '우리가 한다고 되겠나' 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이번 대회를 통해 아이들이 '하니까 되는구나'라는 자신감을 얻게 돼 기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전체를 보는 눈을 키우고,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배웠다는 것도 큰 성과다.

"골을 넣으면 '우리'가 잘한 것이고, 잘못된 것은 '내' 잘못이니까 누구 잘못이라고 원망하지 말고 무조건 파이팅"이라는 그의 당부를 아이들은 잘 따라줬다. 시 교사가 8년째 쓰고 있는 '한 사람의 열 걸음을 열 사람의 한 걸음으로'라는 급훈과도 맥이 닿는 부분이다.

힘들 때 곁에 있는 교사

시 교사는 현재 학교에서 정보·과학 연구부장, 학력담당, 6학년 담임을 맡고 있다. 제 시간에 퇴근하지 못할 정도로 일이 많지만 그는 다음 축구대회에서도 감독의 기회가 주어지면 "당연히 하고 싶다"라고 말한다.

그는 이번 대회를 준비하는 내내 아침, 점심, 방과후 연습시간마다 아이들과 함께 흙먼지를 마셨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온종일 운동장에서 지내며, 점심값을 모두 책임졌다. 시 교사는 "친구 같은 교사보다는 언제나 아이들 곁에 있는 교사, 힘든 일 있을 때,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을 때 먼저 생각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한다.

온 국민의 근심거리가 돼 버린 대한민국 교육, 입 달린 사람은 다 한마디씩 보태 누가 교육전문가인지 알 수 없게 된 기막힌 교육현실 속에서도 많은 교사들은 열과 성을 다해 제자들을 길러내고 있다. 시민영 교사는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고 있는 <무한정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스스의 날, #시민영, #금오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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