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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좌익으로 몰려 국군과 경찰에 학살된 국민보도연맹의 이른바 '오창창고 사건' 희생자와 유족에게 국가가 손해를 배상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확정됐다. 사건 발생 62년 만이다.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정부가 좌익 관련자들을 전향시키고 관리·통제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대외적으로는 전향자들로 구성된 좌익전향자 단체임을 표방했으나 국민보도연맹의 총재는 내무부 장관이, 고문은 법무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이 맡았다. 또 검찰과 경찰 간부들이 하부 지도위원장 또는 지도위원을 맡아 조직을 관리해 실제로는 관변 단체 성격을 띠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내무부 치안국장은 전국 각 도의 경찰 국장에게 전국 요시찰인과 국민보도연맹원 등을 즉시 구속하고 형무소 경비를 강화할 것을 지시했다.

당시 충북 청원군 오창면과 진천군 진천면 지역에서는 보도연맹원 400여 명이 오창면 장대리 양곡창고에 구금됐고, 오창지서·진천경찰서 사석출장소에는 주동자로 분류된 사람들이 구금됐다.

그런데 진천경찰서 사석출장소 소속 경찰들은 1950년 6월 30일 출장소에 구금됐던 10여 명을 총격 살해했고, 오창창고(오창면 양곡창고) 주변에 경계를 선 군인들은 열흘 뒤 구금된 연맹원 중 주동자 및 도주자로 분류된 14명을 살해했다.

또한 7월 11일 새벽에는 이곳을 지나던 헌병대와 군인은 오창창고에 구금된 보도연맹원 대다수를 총격으로 살해했다. 뿐만 아니라 국군 수도사단의 요청에 의한 미군 전투기의 폭격으로 생존자들 중 대부분이 현장에서 살해당했다. 오창면·진천면 지역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사건을 '오창창고 사건'으로 불린다.

"정부의 소멸시효 항변 배척, 수긍할 수 있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오창창고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신청을 접수해 조사를 개시했고, 2007년 11월 13일 오창창고 사건 관련 희생자 315명을 확정했다.

그러자 희생자의 유족 492명은 "정부 산하 군과 경찰이 단지 국민보도연맹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불법 구금한 뒤 살해해 이들의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생명권·적법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인해 희생자들 및 유족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소송을 냈다. 반면, 정부(소송수행자 법무부 장관)는 소멸시효가 경과했다며 맞섰다.

지난 2010년 10월, 1심은 "정부의 소멸시효 주장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경우로서 권리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으나, 항소심인 서울고법 제13민사부(재판장 문용선 부장판사)는 지난 4월 1심 판결을 뒤집고 정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이에 재판부는 "정부는 오창사건 희생자에게 각 8000만 원, 그 배우자들에 대해서는 각 4000만 원, 그 부모와 자녀들에 대해서는 각 800만 원, 그 형제자매들에 대해서는 각 4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가는 본질적으로 국민을 보호할 절대적 의무를 부담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적법한 절차 없이 국민의 생명을 박탈할 수는 없다는 점과 전시 중에 경찰이나 군인이 저지른 위법행위는 객관적으로 외부에서 거의 알기 어려워 원고들과 같은 희생자들의 유족이라고 하더라도 국가에 의해 진상이 규명되기 전에는 국가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것은 좀처럼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오창창고 사건에 대해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이 있기 전까지 가해자가 소속된 국가가 구체적으로 진상을 규명한 적이 없었던 점, 전쟁이나 내란 등에 의해 조성된 위난의 시기에 개인에 대해 국가기관이 조직을 통해 집단적으로 자행하거나, 또는 국가권력의 비호나 묵인 하에 조직적으로 자행된 기본권 침해에 대한 구제는 통상의 법절차에 의해서는 사실상 달성하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춰 보면, 오창창고 사건에 대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이 있었던 2007년 11월 13일까지 객관적으로 원고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결국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시효완성으로 소멸됐다는 피고의 항변은 현저히 부당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손해배상책임 범위와 관련해 재판부는 "희생자들 및 유족들이 오창창고 사건으로 인해 겪었을 극심한 정신적 고통, 한국전쟁을 치르고 난 후 우리 민족이 겪게 된 남북분단의 현실과 이념 대립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말미암아 그 유족들이 받은 차별과 경제적 궁핍, 불법행위일로부터 60년 이상 오랜 세월이 흘러 우리나라의 물가와 국민소득수준 등이 크게 상승한 점 등을 참작해 정했다"고 말했다.

사건은 정부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올라갔으나, 대법원 제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국민보도연맹 희생자 유족 492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7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가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정부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한 원심 판단은 수긍할 수 있고, 거기에 상고 이유의 주장과 같은 소멸시효 환정이나 권리남용에 관한 법리오해·심리미진의 위법도 없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오창창고, #국민보도연맹,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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