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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상여조차 1회용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상엿소리를 할 때마다 요령이 하나씩 늘어나 필자가 갖고 있는 요령만 해도 10개가 넘습니다.
 요즘은 상여조차 1회용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상엿소리를 할 때마다 요령이 하나씩 늘어나 필자가 갖고 있는 요령만 해도 10개가 넘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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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하늘을 가르는 요령 소리는 이승을 떠나 저승문으로 가 닿기라도 할 듯, 떨리면서도 구슬프게 울려퍼진다. 애절하고도 비통한 곡소리와 담담한 듯 구성진 그의 상엿소리에서 산 자와 죽은 자 모두가 위로받는다. 그 시간만큼은 그들 모두, 하나의 소리를 듣고 한 사람을 기억하고, 그렇게 한 사람을 떠나보낸다. 그 길의 시작과 끝에 오충웅 옹이 있었다. - <이제 가면 언제 오나> 212쪽 -

전남 강진 상엿소리꾼 오충웅 옹의 이야기

김준수 지음, (주)알마 출판의 <이제 가면 언제 오나>는 전남 강진의 조그마한 마을에서 25년간 이장을 하다가 3년간 쉰 후 다시 이장을 보고 있는 상엿소리꾼 오충웅 옹의 이야기입니다.

77세, 1936년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한 오충웅 옹이 살아 온 77년의 세월은 우여곡절 많고 파란만장한 인생입니다. 비슷한 연배의 어르신들 역시 일본 강점기와 동족상잔의 6·25, 산업화와 현대화를 거치는 격동의 세월을 홍역처럼 치르는 것이 보편적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오충웅 옹의 삶은 여기에 일본에서 태어나 9살까지는 일본에서 살아야 했던 곡절을 더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남다른 '끼'의 연장으로 1976년부터 지금껏, 37년째 상엿소리꾼 노릇을 해가며 상엿소리의 한 자락을 붙잡고 계시는 소리꾼입니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표지
 <이제 가면 언제 오나> 표지
ⓒ (주)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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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지만, 그는 고향으로 돌아온 일을 인생에 있어 '첫 번째 후회되는 일'로 꼽는다. - <이제 가면 언제 오나> 53쪽 -

팔순이 다된 오충웅 옹은 해방이 되어 일본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을 인생에 있어 첫 번째로 후회되는 일로 꼽고 있습니다. 참으로 서글프고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돈 잘 벌고 처세술에 능했던 아버지 덕에 오충웅 옹의 유아시절은 나름 좋았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조선인(조센징)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멸시에 가까울 정도로 차별을 받으며 살아야 했던 것이 일본에서 조선인들의 삶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도 귀국해서 산 고국에서의 삶을 가장 후회되는 일로 꼽고 있으니 참으로 서글플 뿐입니다.   

끼 많던 오충웅 옹은 유랑극단을 따라다니고 약장사를 따라다니며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선천적인 끼를 발산하다 41살이 되던 1976년부터 상엿소리를 하는 선소리꾼으로 살아갑니다.

상엿소리의 유래는 '해로가'와 '호리가'

상엿소리의 유래는 사마천의 <사기><전담열전(전담열전田儋列傳)>과 진晉나라 최표崔豹의 <고금주古今注><음악音樂>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자신의 조카를 중국 제나라의 왕으로 옹립하고 실질적 권력을 행사했던 전횡田橫은 한나라의 유방이 중원을 차지하자 군사 오백 명과 함께 바다를 건너가 섬에서 살았다. 유방은 이 소식을 듣고 전횡이 비록 도망가기는 했으나 한때 제나라를 평정하고 그 영향력이 남아 있어 나중에 반란을 꾀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면해주고 불러오게 했다.

한나라의 낙양으로 향하던 중 전횡은 포로가 되어 다른 임금을 섬기는 것이 부끄러워 '유방을 섬길 수 없다'며 자결했다. 그후 사람들이 전황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해로가薤露歌'와 '호리가蒿里歌'를 지어 불렀다.(박진옥 옮김). 대개 이것을 상엿소리의 시작으로 본다. - <이제 가면 언제 오나> 88쪽 -

2011년 통계에 따르면 요즘은 사람이 죽으면 70%가 화장을 한다고 하지만 예전에는 오충웅 옹이 한 달에 여덟 번이나 상엿소리를 할 정도로 사람이 죽으면 응당 상여가 꾸며졌기에 수입도 좋았다고 합니다.

요즘은 70% 이상이 화장을 한다고 하지만 예전에는 사람이 죽으면 응당 꾸려지던 것이 상여였습니다.
 요즘은 70% 이상이 화장을 한다고 하지만 예전에는 사람이 죽으면 응당 꾸려지던 것이 상여였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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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 곱배기 한 그릇 값이 500원, 쌀 한 가미가 6만 원, 대기업 신입사원 월급이 20여 만 원 하던 1980년도 쯤 오충웅 옹이 상엿소리를 하고 받은 돈이 120만 원이 될 때도 있었다고 하니 오충웅 옹에게 있어서 상엿소리는 생계를 위한 수단이자 일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요즘은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상엿소리를 하고 있다고 하니 장례문화의 변천과 동행하였을 오충웅 옹의 삶이 어림됩니다. 

필자 역시 30대 후반의 나이부터 요령잡이를 했으니 15년쯤 상엿소리꾼 노릇을 했고, 일 년에 8번을 한 적도 있지만 올 들어서 요령을 잡은 건 딱 한번 뿐입니다. 오충웅 옹처럼 보수를 받는 것도 아니고, 명함을 돌리며 홍보를 하는 것도 아니지만 상여가 꾸려지는 횟수가 확연하게 감소하는 것에는 동감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에 비춘 세 여자 순자, 집사람, 그 여자

김준수 지음, (주)알마 출판의 <이제 가면 언제 오나>는 오충웅 옹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시대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팔순을 앞둔 어르신이 어떻게 살아 왔고, 상엿소리는 무엇이고 어떻게 사라지고 있는가를 한지 창에 비춘 그림자처럼 흑백의 그림으로 투영하고 있습니다.

상여에 앞서 상엿소리꾼이 흔드는 요령
 상여에 앞서 상엿소리꾼이 흔드는 요령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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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충웅 옹의 여생에서는 첫 번째로 후회되는 일이 해방이 되어 일본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게 아니도록 <이제 가면 언제 오나>가 여생의 반환점으로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수되는 상엿소리만큼이나 맑은 하늘을 가르는 요령소리가 듣고 싶어지는 건 <이제 가면 언제 오나>에서 보았던 오충웅 옹의 세 여자, '첫사랑 순자'와 '집사람' 그리고 '그 여자'와 함께한 애틋한 사람이 어른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덧붙이는 글 | <이제 가면 언제 오나>┃지은이 김준수┃ 펴낸곳 (주)알마┃2012.09.25┃값 15,000원



이제 가면 언제 오나 - 전라도 강진 상엿소리꾼 오충웅 옹의 이야기

김준수 글.그림, 알마(2012)


태그:#이제 가면 언제 오나, #김준수, #(주)알마, #상엿소리꾼, #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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