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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엔 바다였던 바람부는 갈대숲 들판의 우음도 주변 풍관
 수년 전엔 바다였던 바람부는 갈대숲 들판의 우음도 주변 풍관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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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 늦가을에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우음도가 그곳. 왠지 이름부터가 늦가을과 잘 어울리는 섬 아닌 섬이다. 경기도 안산과 화성 사이의 갯벌과 바다를 땅으로 메우기 위해 시화 방조제가 생기면서 육지가 돼버린 곳. 섬의 운명마저도 쓸쓸하고 으슬으슬한 이 계절과 맞닿아있다.

서해의 수많은 간척사업으로 섬 아닌 섬이 돼버린 곳이 어디 한두 곳이 아니겠느냐마는 우음도는 그곳에서 대대로 살아가다가 쫓기듯 정든 고향을 떠나야 하는 주민들의 억울한 삶을 잘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인터넷에 보이는 우음도 사진들은 육지가 된 바다 위로 피어난 갈대와 풀로 드넓은 초원의 풍경으로 가득하다. 지도에서도 짤막하게 우음도 표시외에 주변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몇 년 전부터 사진가들의 주요 출사지가 될 만하고, 요즘 같은 계절에 누구나 가 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특히 내겐 우음도 주변의 끝없이 펼쳐진 갈대숲과 바람을 느끼며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싶게 하는 곳이다.

바닷가에 가까이 왔음을 알게 해준 사강리 횟집들
 바닷가에 가까이 왔음을 알게 해준 사강리 횟집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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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작은 우음교회, 순한 개 한마리가 몸부림을 치며 여행자를 반긴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작은 우음교회, 순한 개 한마리가 몸부림을 치며 여행자를 반긴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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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나는 동네 사강리 

애마 자전거와 함께 수도권 전철 1호선 수원역에 내렸다. 역 앞 오른편에 있는 종합 환승 버스정류장에 우음도에서 가까운 송산면에 가는 버스가 (400번 400-1번) 다닌다. 제부도, 전곡항, 궁평항 같은 경기도 화성의 좋은 여행지들도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찾아갈 수 있다. 차곡차곡 접은 자전거를 옆구리에 들고 올라타는 여행자가 이채로운지 버스 기사 아저씨가 제부도에 가느냐며 말을 건넨다. 우음도에 간다고 하자, "거긴 왜?" 하는 표정으로 다시 내 얼굴을 힐끗 쳐다본다.

우음도에 가려면 송산면 중에서도 사강리에 내려야 한다며 기사 아저씨는 바지락 칼국수를 무한리필 해 준다는 '부산횟집'도 귀띔해주었다. 매 2일, 7일 날 오일장도 열린다는 송산면 사강리는 말이 리(里)지 시장과 가게, 횟집들이 북적이는 큰 동네다. 특히 일렬로 늘어선 횟집들 앞에 놓인 굴, 각종 생선, 조개, 게들은 짭조름한 서해가 가까이에 있음을 알게 해 준다.

오랜만에 바지락 칼국수 한 그릇 먹으며 가게 아주머니와 담소를 나누던 중, 시화호 방조제가 들어서면서 해산물이 많이 줄어들고 그러다 보니 가격도 비싸졌다고 하신다. 코앞에 펼쳐져 있던 천혜의 바다와 갯벌을 잃어버린 후 가까운 영흥도나 궁평항에서 굴이나 물고기, 낙지 등을 들여온다고.  

사강리에는 화성시 온 동네를 다니는 작은 사강 버스 터미널도 있다. 지금껏 본 가장 작은 버스 터미널이 아닐까 싶다.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한 터미널 대합실에 남녀노소 주민들이 앉아 버스를 기다리며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정답다. 그 앞에서 해산물이며 채소를 땅바닥에 내놓고 팔고 있는 할머니는 버스 터미널 주변 청소까지 겸임 중이다. 우음도는 물론 우음도 가는 길에 있다는 고정리 공룡알 화석지에 가는 버스노선도 있다.

공룡알 화석지와 우음도(음섬) 모두 육지가 아닌 바다의 품속에 있었다. 빨간 동그라미 안이 고정리 공룡알 화석지
 공룡알 화석지와 우음도(음섬) 모두 육지가 아닌 바다의 품속에 있었다. 빨간 동그라미 안이 고정리 공룡알 화석지
ⓒ 화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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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모양새의 바위와 돌들이 정말 공룡들이 살았음직한 곳이다.
 기묘한 모양새의 바위와 돌들이 정말 공룡들이 살았음직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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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의 땅, 고정리 공룡알 화석지

이제 사강리에서 우음도를 향해 북쪽으로 농촌풍경 가득한 305번 도로를 따라 한 길로 달려가기만 하면 된다. 우음도를 알리는 이정표가 따로 없어서 걱정이 좀 됐는데 길가에 작고 아담한 우음교회가 나타나 안심시킨다.

추수가 끝난 논과 가지만 남은 송산 포도밭 사이 도로엔 지나가는 차량도 거의 없다. 야트막한 언덕길이 나타날 때마다 숨이 가빠오고 다리와 옆구리가 콕콕 쑤신다. 가을비와 이른 추위에 움츠리며 몸 쓰길 게을리했더니 여지없이 애마 자전거는 주인의 나태함을 경고하며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육체'에 있음을 새삼 일깨워준다.    

밭에서 큼직한 무를 뽑고 있는 농부와 눈을 맞추며 달리는데, 길가의 안내판에 써 있는 이름들이 재밌다. 도로 이름이 '공룡로'요, 고정리 주변 마을 이름은 '화성 쥬라기 마을'. 커다란 모형 공룡 두 마리가 서 있는 곳에 도착하면 어느새 도로는 사라지고 마침내 고대하던 갈대숲 무성한 좁은 흙길이 나타난다. '배머리'라는 지명으로 보아 수년 전엔 갯벌이요 바닷가였을 것이다. 이제부턴 과거엔 출렁이는 바다였을, 지금은 너른 초원의 갈대숲 길이다.    

탐방로를 걸으면서 많이 볼 수 있었던 공룡알의 화석들
 탐방로를 걸으면서 많이 볼 수 있었던 공룡알의 화석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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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이 과연 제대로 가는 길일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이정표 없는 갈대들만 무성한 흙길엔 사람은커녕 지나가는 차도 안 보인다. 바람을 악기 삼아 부르는 갈대들의 휘파람 소리와 자전거 체인 소리만이 고요한 들판에 퍼진다. 못 보던 금속 말의 출현에 놀란 새들이 이따금 후두두 날아오른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속으로 흘러들어온다'던 김훈 작가의 표현이 공감되는 풍경.
       
갈림길도 없는 드넓은 갈대숲 길 저 앞에 이윽고 커다란 건물이 나타난다. 말로만 들었던 화성 공룡알 화석지의 안내센터. 2000년 천연기념물 제 414호로 지정된 곳으로 시화 방조제로 바다를 가로막으면서 발견된 곳이다. 주변의 작은 무인도들에서 공룡알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나무데크로 만든 탐방로를 따라 걸으면서 공룡알의 화석과 작은 무인도들, 기묘한 바위들을 볼 수 있고, 정말 공룡들이 살았음 직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풍경이 펼쳐진다.

갈대숲 벌판 저 너머로 우음도(음섬)가 보인다.
 갈대숲 벌판 저 너머로 우음도(음섬)가 보인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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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땐 바다였던 갈대숲 들판 사이에 난 길을 따라 우음도를 향해 달려간다.
 한땐 바다였던 갈대숲 들판 사이에 난 길을 따라 우음도를 향해 달려간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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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고 있지만, 지도에선 사라진 섬

갈대숲 위로 나지막히 보이던 우음도를 향해 가는 길은 오가는 공사차량을 위해 닦아놓은 벌판 사이의 울퉁불퉁한 흙길이다. 섬의 모습이 저 앞에 보이지 않았으면 달려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 그런 길. 이제 더 이상 섬이 아닌 우음도엔 높다란 전망대가 한창 공사 중에 있고 내년엔 생태공원으로 바뀔 예정이란다.

차를 몰고 이곳까지 사진 출사를 나온 사람들이 둔중한 카메라를 들고 낚시꾼마냥 사진 포인트를 찾아 우음도 주변 바람부는 갈대들판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닌다. 시화 방조제 덕택에 생긴 드넓은 초원은 좁은 땅덩이에 부대끼며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게 있긴 있나 보다. 말을 몰고 다니며 초원위를 달리던 우리 조상들의 유전자가 아직도 우리 몸 속에 남아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지도에는 사라졌지만 우음도 마을엔 아직 사람들이 살고 있다.
 지도에는 사라졌지만 우음도 마을엔 아직 사람들이 살고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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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지도엔 '우음도'라고 따로 검색하지 않은 이상 우음도라는 지명은 사라지고 대신 송산그린시티라는 글자로만 표시되어 있다. 지도에서도 사라진 섬엔 그러나 아직도 주민들이 살고 있다. 우음도(음섬)에 주민들이 아직 살고 있다는 말은 송산면 사강리 버스 터미널에서 운전기사 아저씨에게 들었는데 정말 마을 언덕길 초입에 할머니가 강아지 옆에서 곡식을 타작하고 있다.

사람은 떠나도 살던 집터를 지킨다는 고양이 한 마리가 파란색 동그라미로 빈집 표시가 된 집 담벼락 아래에서 따스한 늦가을 햇볕을 쬐고 있고, 어느 집 앞을 지키고 서 있던 개 두마리는 자전거가 지나가자 물 만난 고기마냥 짖고 날뛴다. 전망대와 공원을 만든다며 바쁘게 오가는 공사 인부들과 트럭의 분주한 모습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공사장 관리자인 듯한 직원 한 분은 여기까지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은 처음 본다며 우음도와 그 주변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개발 계획을 얘기해 주었다.

비었지만 아직도 집, 가게 건물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마을 언덕길을 오르다 만난 일흔이 넘은 어부였던 할아버지와 중년의 아저씨는 사업자인 수자원 공사의 터무니없는 보상금과 이주비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도 살 곳이 없어 여태껏 고향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신다. 젊은 사람이 이런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웃음 짓는 할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이 가슴을 아릿하게 한다.  

집은 물론 조상들의 무덤까지 있는 고향을 떠나지 못하는 우음도 주민 할아버지는 어부로 평생을 살아왔다.
 집은 물론 조상들의 무덤까지 있는 고향을 떠나지 못하는 우음도 주민 할아버지는 어부로 평생을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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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넓은 땅의 택지개발로 셀 수 없는 수익을 남길 수자원 공사의 탐욕은 공기업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지경이다. 현재 열 가구 정도의 주민이 아직도 살고 있으며 한전에서 전기는 쓰게 해주는데 수자원 공사에서 물은 한 달에 한 번 공급해 준단다. 이런 어려움에 처한 주민들을 도와줘야 할 화성시 당국은 주민 대책위원회 기구만 만들어 놓았지 아직까지 별 뾰족한 도움을 못 주고 있다니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며 책까지 낸 박노자의 주장은 '서민을 위한 한국 정부는 없다'가 더 정확하고 사실적인 표현일 거다.

갈대숲 사이로 바람이 머무는 섬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우음도는 멋진 풍경과 서정만을 이야기하기엔 주민들의 사정이 참 가슴 아프게 하는 곳이다. 섬엔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떠나지 못하는 주민들의 아픔이 함께 머물고 있었다. 섬 생김새가 소(牛)를 닮아서, 혹은 육지에서 소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이름 지은 우음도. 섬엔 이제 더 이상 소는 살지 않지만, 대신에 주민들의 슬픔이 들려오는 섬이 되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1월 15일에 다녀왔습니다.



태그:#우음도, #화성 고정리 공룡알화석지, #송산면 사강리, #시화호, #자전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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