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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후보 사퇴-야권의 기사회생

안철수의 후보 사퇴에 대해 이 사자성어를 쓰는 것은 당사자들이 들을 때 기분 나쁠 수도 있겠다. '기사회생'이라니. 이것은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났을 때 쓸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두 사람의 양보 없는 단일화 협상을 지켜보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단일화가 된다면 이 '기사회생'이란 성어를 써야겠다고 생각해왔다.

마침 그 때가 왔다. 지난 23일 밤 8시 20분, 안철수는 문재인에게 후보를 양보하고 문재인이 야권 단일 후보임을 천명하며 후보를 사퇴했다. 대단한 결단이 아닐 수 없다. 구 정치인에게서는 결코 기대할 수 없었을 일을 새 정치를 주창해온 안철수가 해냈다. 과연 안철수답다는 말들이 쏟아졌다. 사퇴에 뒤따르는 해설도 다양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아전인수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안철수의 사퇴를 긍정적으로 보든 부정적으로 보든, 그것도 아니면 중립적으로 보든 공통적인 화두는 정치 쇄신이었다. 안철수는 정치 변화를 요구하며 대선 후보가 되었고 대선에 나오겠다고 발표한 뒤 60여 일 기간 중 변함없이 주장한 것이 정치 쇄신이었다. 이대로의 정치는 정치인들을 위한 정치는 될지 몰라도 더 이상 국민을 위한 정치는 못 된다는 것이다.

문재인에게 넘아간 공-환골탈태하라

그래서 정치를 평론하는 사람들과 언론계에서는 안철수가 대선 후보를 사퇴한 만큼 이젠 공이 기존 정치권으로 넘어갔다고 했다. 기존 정치권이라고 했지만 당장은 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넘어갔다고 볼 수 있다. 민주당의 문재인은 안철수의 사퇴를 보고 미안하고 감사하다고 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젠 정말 민주당을 환골탈태해야 한다.

민주당은 지난 선거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4.11 총선 말이다. 주객관적 환경이 야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했음에도 인기 없던 여당에 참패하고 말았다. 그 때도 변화된 야당, 달라진 야당을 외쳤고 국민들은 기대했지만 공천 과정에서 보여준 것은 그것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구태 정치의 대명사와도 같은 계파정치의 나눠먹기식 공천으로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다.

명분은 멀고 실리는 가깝다는 사실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그들은 철저히 나눠먹기 공천으로 총선에 임한 것이다. 순진한 국민들은 총선 결과에 기대를 걸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 결과가 뻔히 보였다. 비례 대표만 해도 신구(新舊)를 가리지 않고 명망가만 있었지 정말 숨어서 국민을 섬기는 참신한 인물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사실에 국민은 눈을 다른 쪽으로 돌리게 된 것이다.

안철수가 대선에 출마하기로 결심하게 된 것도 이런 야당의 행태를 더 이상 바라만 봐서는 안 되겠다는 것에 기인한다. 그래서 정치 쇄신을 주창하며 국민들의 마음을 사기 시작했다. 안철수의 일거수일투족이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대선 후보 빅 3에 운위될 만큼 그의 인기도는 고공행진을 계속했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여당이자 보수 정당인 새누리당과 선을 긋고 야권 후보로서 이미지 각인에 정성을 쏟았다.

새 정치는 거스를 수 없는 국민의 요구

새 정치는 지금 국민이 바라는 요구 사항이다.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다. 이렇게 된 데는 안철수의 영향이 적지 않다. 무소속이면서 이렇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는 우리 정치사에 일찍이 없던 일이었다. 그래서 혹자는 무소속 대통령을 가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이 무리수인 줄은 안철수 자신이 너무나 잘 안다.

우리의 민주 정치사도 70년이 다 되어 간다. 세계 15위권의 강대국이자 OECD 회원국으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후진국에서나 있을 법한 무소속 대통령은 아무리 생각해도 발전된 민주주의 국가에 걸맞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안철수가 완주해서 대통령에 당선되어도 문제요 탈락해도 문제라는 자조 섞인 대화들을 하기도 했다.

그런 안철수가 사퇴했다. 나는 앞에서 문재인의 민주당에 대한 바람을 이야기했다. 다 바꾸라는 것이다. 선대위를 다시 짜야 한다. 안철수 캠프와 시민 사회단체를 포함해서 사람들을 광범위하게 참여시키는, 문재인의 표현을 빌리면 '용광로 캠프'를 다시 구성해서 대선에 임해야 한다. 거기에는 사퇴한 안철수에게도 적절한 자리를 마련해서 함께 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함은 물론이다. 다시 계파에 연연한다는 말이 조금이라도 나오게 해서는 안 된다.

안철수의 행보, 이래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사퇴의 결단을 내린 안철수의 행보는 어떠해야 할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국민을 위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인가를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안철수는 기존 정치인과는 확실히 다르다. 그는 무엇보다도 국민과의 약속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국민을 이용하는 구태 정치인들과는 구분되는 사람이다.

그는 정권 교체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소수를 위한 보수 정권은 더 이상 안 된다고 확신하고 있다. 이번 그의 사퇴도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권 교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그가 취할 정치 행보는 너무나 명확해진다. 문재인의 당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대선을 완주하는 것보다 더 힘든 길이 될지도 모른다.

안철수는 국민의 요구 사항을 잘 읽는 사람이다. 지난 10.26 서울시장 보선에서 그것을 잘 보여줬다. 지지율이 월등히 높았음에도 서울시장 후보로 자신보다 박원순이 더 적합하다며 후보를 사퇴했다. 그 때 만약 지지율만 믿고 서울시장 후보를 끝까지 고집했다면 그는 구태 정치인과 별반 다르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사퇴함으로 그는 일약 대선 후보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후보 사퇴는 안철수를 위해서도 유익한 일

그렇다면 이번 대선 후보 양보는 그에게 어떤 정치적 무게가 담길 것인가. 단언하건대 그는 차기 대선(2017년) 후보로 누구보다 앞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관계없이 그는 다음 대선의 유력한 후보로서 국민들의 뇌리에 각인될 것이다. 사실 이번 대선에 완주한다는 것은 그로서 대단한 모험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그는 적당한 시기에 타당한 방법으로 대선 후보에서 물러난 것이 된다.

이번 대선을 거치면 우리의 정치 지형이 바뀔 것이다. 5년 단임 대통령제에 대한 문제 제기도 많이 되고 있다. 그래서 4년 중임의 미국식 대통령제로의 환원에 대한 국민의 요구도 만만치 않다. 이것의 적합성과 타당성이 정치권에 받아들여진다면 다음 대통령 임기 때 실행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안철수에게는 더욱 좋은 환경이 조성되는 셈이다. 차기 대선 후보로서의 입지를 선점하고, 4년 중임의 가능성까지 가지고 있으니 이것보다 더 좋은 일이 있겠는가.

이렇게 되기까지 이번 대선 정국에서의 안철수 행보가 중요하다. 지금까지 국민의 바람을 오롯이 실천해 온 안철수였다. 대선 정국에서도 그 바람을 벗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정권 교체를 위해 최대한 야권 단일후보 문재인을 돕는 것이다. 그를 당선시키는 것이다. 백의종군을 선언한 만큼 장수로서 필요한 전장에 차출 받을 때, 나가서 몸을 아끼지 않고 싸우는 것이다. 그래서 이기는 것이다.

안철수의 사퇴를 놓고 설왕설래가 많다. 복잡하게 셈하기를 즐기는 듯하다. 안철수 지지자들이 누구에게 얼마의 표가 가서 유불리하다는 둥 말들이 많다. 그런데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럴 땐 단순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문재인-안철수 삼각 구도에서 여권의 박근혜와 야권의 문재인 안철수에서 문-안이 후보 단일화가 되어 여야 단일 구도가 되었다. 여기에서 안철수 지지자들 일부가 박근혜 지지로 간다고 해도 절대 다수가 문재인 지지로 흡수될 것인 만큼 박근혜에 유리한 구도가 될 수 없다. 안철수는 사퇴하면서 '야권 단일 후보는 문재인'이라고 선언하지 않았는가.

안철수, 야권 단일 후보를 적극적으로 도와야

안철수가 대선 완주를 했다면 야권으로서는 절대 불리한 대선이었다. 빅3 후보 중 야권이 두 명이라는 것은 여당 후보의 승리를 보장해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권 교체를 외치며 안철수가 후보를 사퇴했다. 야권으로서는 '기사회생'의 반전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안철수의 사퇴를 헛되이 하지 않으려면 문재인은 살을 깎아내는 아픔을 감수해야 한다. 국민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민주당을 변화시키고 선대위를 쇄신해야 한다. 그래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안철수의 적극적 도움을 견인해 내는 일도 될 것이다. 공이 문재인에게 넘어갔다는 말은 이런 뜻에서 하는 말이다.


태그:#야권후보 단일화, #안철수 사퇴, #문재인이 할 일, #정치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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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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